부산대학교 중앙도서관 앞 2개의 동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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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원과 표로 보는 역사 시리즈/어원과 표로 보는 한국사, 한국문화

부산대학교 중앙도서관 앞 2개의 동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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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처럼 교내 도서관의 으뜸이라고 할 수 있는 부산대학교 중앙도서관의 뜰에는 2개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우선 좌측에 장영실로 추정되는 옛날 인물이 서있다. 장영실이 맞다면 그가 현재의 부산 지역에서 천한 신분으로 태어나 왕이 직접 등용해 과학적으로 큰 성공을 이룩한 인물이었던 것처럼, 결국 '이곳에서 수학하는 학생들의 끝은 창대해지길' 바라는 마음에 세운 것은 아닐까 한다.
 
그 오른쪽에는 강처녀 여사의 흉상이 있다.

흉상 앞면흉상 뒷면
강처녀(姜處汝) 여사

 사람평생이 길다 해도 고작 백년에 머물지만 누백년을 더 넘게 고귀한 이름으로 생존할 분도 있나니 남안(南安) 강처녀(姜處汝) 여사가 바로 그 임자이시다.
 여사께서는 가난한 가정에 태어나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가시밭길을걸어오면서 근검절약하여 거금의 재산을 이루는 한편, 친인척들을 돌보고 어려운 이들을 보살피는 데에 평생이 바쁘셨다.
 이 나라 등량을 키워야겠다는 신념에서 전 재산을 남안장학기금(南安奬學基金)으로쾌척하시었으니 이 배움터에 모인 이들은 이분의 거룩한 뜻을 길이길이 받들지어다.
약력

1928.10.12 경남 진주시 옥봉동 493번지 부(父) 강수영(姜守永)씨와 모(母) 김순이(金順伊)여사의 2녀로 출생.
1996.7.11 본인의 재산을 남안장학기금(南安奬學基金)으로 부산대학교에 기증.
1996.10.5 제12회 자랑스런시민상 대상 수상.
1996.11.5 지병으로 별세.
조각 : 김정혜
글 : 임종찬
1997년 11월 5일
재단법인 부산대학교 발전기금
고 강처녀 여사 (출처 : dhnews.co.kr)

원래 진주 출신에 부모님을 일찍 여읜 강처녀(姜處汝) 여사는 성인이 될 때쯤 부산에 정착해 식당업에 종사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1962년 부터 부산 남포동에서 곰탕집을 운영하며 돈을 아끼고 아껴 모으기 시작했다. 그 돈으로 어려운 조카들 대학도 보내고, 맛있는 것도 사맥이고 그러셨다고 한다.

전재산 50억을 부산대학교에 기부했다는 강처녀 할머니에 대한 KBS 뉴스(출처 : 1996년 7월 20일자 KBS 뉴스)와 관련 경향신문 기사(출처 : 1996년 7월 22일자 경향신문)

그러다 1996년 7월 11일, 그렇게 아끼고 아껴 모아 샀던 남포동의 54평짜리 3층 건물과 북구 구포동의 965평의 부동산 등 총 당시 시가로 55억 원에 달하는 재산을 부산대학교에 기증했다. 그렇게 큰돈을 가지고 있었던 할머니는 동래 온천동의 작은 전세방에서 그해 겨울 사망하셨다.
 
할머니의 이야기를 되새기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의 소원은 돈을 많이 모아서 누군가를 돕는 것이다. 지금도 그래서 다양한 판로를 통해 저금을 하고 있다. 누군가는 내게 호구라고 부르지만, 가끔 그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다. 나의 간이나 쓸개를 빼서 그 필요한 상대가 더 생명을 연장할 수 있다면 난 그게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이 동상 앞에서 발걸음을 뗄 수 없었던 이유도 단순히 그가 기부를 해서 부산대에서 등록금 걱정 없이 공부할 수 있는 학생들이 늘어서만이 아니었다. 난 할머니와 대화를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할머니는 내게 그 꿈 꼭 이뤄서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라고 하시는 듯 했다.

이 적은 돈은 학생 장학금의 일부로 쓰일 것이다ㅎ

한 때 우연히 한국 주식으로 8만원을 딴 적이 있었는데, 그 중 5만원을 기부한 것이 생각나서 캡쳐해봤다.

추가) 아까 에타에 누구는 50만원을 따서 기부했다는 글을 봤는데 나도 그 사람처럼 되고싶다ㅠ

어찌되었든 하루 빨리 돈을 많이 벌어서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 나눠주고 싶다는 다짐을 강처녀 여사님의 흉상 앞에서 되새기며 발걸음을 뒤로 했다.

흉상을 뒤로하고 돌아보면 이렇게 중앙도서관 입구가 나온다. 공휴일과 일요일은 휴관하기 때문에 들어가보진 못했다. 이렇게 부산대학교 중앙도서관 앞에 있는 동상들을 살펴보고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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