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대 대학본부 앞의 경암 송금조 선생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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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대학본부 앞의 경암 송금조 선생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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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암 송금조 선생 동상

경암(耕岩), 숭고한 사표(師表)

경암(耕岩) 송금조(宋金祚) 선생(1924~2020)은 1924년 경남 양산군 철마면 송정리에서 태어났다. 역사의 격동기에 신산(辛酸)한 청소년기를 보내던 선생은 약관(弱冠)의 나이 열입골이 되던 1942년에 독립하여 사업의 길로 투신하였다. 생래의 근면성과 몸에 벤 검약, 영명한 판단력으로 그 뒤 여러 새로운 사업의 영역을 확장해나갔다. 땀과 눈물로 혼신의 힘을 다 쏟는 노력의 덕에 날로 창성해나가던 사업은 마침내 하늘의 뜻까지 얻어 (플라스틱 사출업) '태양 그룹'의 기업 신화를 창출해내기에 이르렀다.
선생은 그 부와 명예로 흔히 세상 사람들이 걷는 길을 걷지 않았다. 지친 육신의 안일을 위한 호사스런 휴식에 침혹(沈惑)할 수도 있었고, 향유하고 과시하고 군림하는 영달에 탐닉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선생은 분연히 또 다른 길을 찾아 영웅적 거보를 내디뎠다. 배움에 목말랐던 청춘 시절의 열망을 한시도 잊지 않았던 선생은 생애동안 땀과 눈물로 쌓아온 재산을 후세 교육에 과감히 쾌척하기로 결단하였던 것이다. 학교 법인 '태양 학원'을 설립하여 중등교육에 매진하고 부산대학교에 한국 개인 기부금 사상 최고액인 305억을 헌납하여 양산 캠퍼스 부지를 매입케 해준 것도 그 실천행의 일환이다.
예로부터 가르침에 두 가지 길이 있으니, 하나는 문자로 가르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행동으로 가르치는 것이다. 한푼 한푼이 그의 영고를 낱낱이 증언해주는 저 소중한 재산들을 아낌없이 후세 교육에 헌납함으로써 그 가르침을 실천해보인 선생의 숭고한 행장은 우리에게 불후의 사표로 남으리라. 우리는 이것을 잊지 않기 위해 여기에 표석을 세워 그 뜻을 기리고자 한다.
인간은 숭고하게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숭고하게 만들어저갈 뿐이다. 효원문에 들어선 학도들이여, 경암 선생이 행동으로 보여준 이 가르침 앞에서 잠시 옷깃을 여미고 경의를 표하자.

2004년 11월 23일

2. 부산대에 기부금의 3분의 1을 현금으로 출연하다.

그와 부산대의 이야기의 시작은 2000년대 초반으로 올라간다.

송금조 부부 (출처 : 조선일보)

2002년 6월, 부산대학교는 한국토지공사와 양산캠퍼스 부지 112만 3972㎡(약 34만 평)에 대한 매매계약을 체결했다. 이 계약은 송금조 회장의 부인 진애언 이사에 따르면 510억 원짜리 계약이었는데, 그중 130억 원은 부산대학교와 한국토지공사의 토지 맞교환으로 해결되었고, 계약보증금이 38억 원이었다. 이에 남은 342억 원 중 37억 원은 대학병원이 부담하기로 되어 있어 최종적으로 부산대학교가 내야 하는 돈은 약 305억 원이었다고 한다.

제16대 부산대학교 총장 박재윤 (출처 : 부산일보)

2003년 초, 박재윤 전 부산대 총장이 (주)태양의 설립자였던 송금조 부부에게 편지를 보내 '양산캠퍼스 부지대금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 도와달라'는 부탁을 했고 고심 끝에 305억 원을 기부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제17~18대 부산대학교 총장 김인세 (출처 : 의학신문)

그러나 2003년 9월 1일, 6월에 열린 총장 선거에서 김인세 교수가 제17대 총장으로 당선되면서 이전 총장과 구두상으로 합의했던 기부 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2003년 10월 8일, 김인세 당시 부산대 총장이 1차 기부약정서를 들고 송금조 부부에게 찾아왔는데, 진애언 이사에 따르면 당시 기부금 용도가 '부산대학교 열림캠퍼스(제2캠퍼스) 부지대금 잔금'이라고 쓰여있었다고 한다.

 

이후 2003년 10월 13일, 이전 약정서에 학교 로고가 없어 무효하다고 주장한 김인세 당시 총장이 들고 온 2차 기부약정서에는 기부금 용도가 '부산대학교 캠퍼스 건설 및 연구지원기금'으로 바뀌어 있어 머뭇거렸지만 그 자리에 같이 있었던 김상훈 전 부산일보 사장을 증인으로 믿고 서명했다.

 

그렇게 2003년 10월 15일 오전 11시, 부산대학교 본관 3층의 대회의실에서 발전기금 출연식이 열렸는데, 이때 현금 100억 원을 김인세 당시 총장에게 전달했고, 나머지 205억 원은 2004년부터 2009년까지 분할 출연하기로 약정했다. 이에 경암 송금조는 '부산지역을 기반으로 성장한 기업가로서 지역 인재를 육성하는데 조금이나마 기여하고 싶었다'라고 밝혔다.

 

이러한 일을 기리기 위해 2004년 11월 23일 오전, 부산대학교 대학본부동 앞에서 지난해 305억원의 대학 발전기금을 주기로 약속했던 부산향토기업 (주)태양의 경암 송금조 씨의 동상이 제막되었던 것이다. 이에 김인세 당시 총장은 '소중하게 모은 재산을 아낌없이 대학발전을 위해 헌납한 숭고한 뜻을 누대에 알려 불후의 사표로 남기려 한다'라고 밝혔다. 한편 그는 2004년 2월, 자신의 재산 1000억원을 출연해 경암교육문화재단도 출범시키며 교육을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한겨례신문에 따르면 2006년 말부터 2007년 초까지 송금조 회장이 기존의 부산대학교 캠퍼스 부지대금 명목으로 기부한 기부금 가운데 75억원을 교수들의 학술연구 조성비 및 BK21 대응자금 등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3. 채무부존재확인소송의 시작과 송 회장 부부의 패배

2007년 3월, 최종 기부약정서를 주고받은 뒤, 송금조 회장 부부는 김인세 당시 총장에게 "그동안 지급된 195억 원의 사용 내역을 밝혀달라"라고 요청했다.

 

이에 2007년 4월 23일, 대학교 측은 송 회장 부부에게 공문을 보내 "2007년 9월 말까지 195억 원을 확보, 별도 계좌로 관리하겠다"라고 약속하기도 했으며, 5월 18일에는 (재)부산대발전기금 이사회를 개최하고 "송 회장 부부의 기부금은 양산캠퍼스 부지대금임을 확인한다"라고 의결했다. 의결서엔 이밖에도 '이미 지급된 기부금이 당초 용도와 다르게 사용된 데 대해 도의적으로 적절치 못했음을 인정한다'는 내용과 '2007년 9월 30일까지 사용된 기부금이 충당되도록 이사장(김인세 전 총장)이 최대한 노력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후 송금조 회장 부부가 지속적으로 부산대에 연락을 취했으나 직접 답변을 받지 못했다는 주장을 했는데, 한편 부산대는 이미 직접 만나 뵙고 상의드리고자 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러던 중 부산대학교 내부에서는 2007년 6월의 총장선거에 재출마한 김인세 당시 총장은 "송 회장이 '캠퍼스 건설 및 연구지원 기금'으로 약정했는데 '양산캠퍼스 부지대금'으로 이해한 것 같다"라고 기존에 일어났던 일련의 일들과 다르게 주장했고, 그래서 바로 2달 전 송금조 회장과 약속했던 부산대발전기금 이사회의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그는 18대 총장으로 당선된다.

 

어찌 되었든 시간이 지나도 답변을 받지 못한 송금조 부부는 2008년 7월 3일, '총 305억 원의 기부금 중 아직 지급하지 않은 110억 원을 부산대에 지불할 의무가 없음’을 요청하는 채무부존재확인청구 소송을 부산지방법원에 제출했다. 당초 약속한 양산캠퍼스 부지대금으로 사용하지 않고 다른 용도로 사용하자 나머지 기부금은 줄 수 없다며 소송을 낸 것이다. 하지만 재판 결과는 처참했다.

1심 재판부 판결
(2009.05.07)
단순히 증여의 목적인 재산의 사용방법 등에 관해 일정한 약속을 한 경우는 부담부 증여로 볼 수 없다
2심 재판부 판결 송 회장이 반드시 양산캠퍼스 부지대금이어야만 기부를 하고 부산대 캠퍼스 건설 및 연구지원기금이었다면 기부를 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기 어렵다

 

이후 송 회장 부부에게 마지막 3심의 날이 다가왔다. 그러는 한편, 부산대에선 재판이 진행될 동안 여러 일들이 있었다.

2009년 2월 준공된 경암체육관(출처 : https://ilshinarch.co.kr/untitled-294)

2009년 2월 준공된 체육관의 이름을 그의 호를 붙여 경암체육관이라고 붙이며 그를 기리는 한편, 김인세 당시 총장은 뇌물 혐의와 기부 관련 의혹으로 퇴임하게 되고 그 자리엔 2012년 1월부터 김기섭 제19대 부산대학교 총장이 당선되기도 했다.

 

2012년 10월 25일, 대법원 1부는 송 회장 부부가 국가를 상대로 낸 채무부존재확인소송에서 원고 패소라고 판결한 이전의 심판(원심)을 확정했다. 이에 송금조 부부는 기부키로 한 총 305억 원 중 이미 지급한 195억 원을 제외한 나머지 110억 원을 기부해야 하는 상황이 닥쳤다. 이 판단을 직접 목격한 부인 진애언 이사는 "법이 항상 정의롭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다시 확인하게 돼 유감이며 진실을 밝히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심정을 토로했다.

 

4.산대의 사과 의사, 그러나 경암의 별세

법정다툼에선 부산대학교가 이겼지만, 경암교육문화재단과 벌여졌던 갈등에 대해 사과의 뜻을 밝히고 나섰다.

제19대 부산대학교 총장 김기섭 (출처 : 한국일보)

이미 2013년 5월 25일, 김기섭 당시 총장이 송 이사장 부부와 함께 식사를 하기도 했으며,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다고 한다.

 

이윽고 2013년 5월 31일, 대학 측은 (당시) 총장 김기섭의 이름으로 경암교육문화재단의 송금조 이사장과 진애언 상임이사 부부에게 재단 측에서 요구하는 일간지 광고나 김 총장의 기자회견, 일간지 기고문 게재 중 하나의 방식으로 사과를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러나 이런 부산대학교의 사과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경암 송금조 이사장의 마음을 완전히 돌리지는 못한 듯했다.

송금조 경암교육문화재단 이사장 영결식 (출처 : 부산대, 노컷뉴스)

결국 2020년 7월 21알 향토 사업가 송금조 경암교육문화재단 이사장은 향년 98세로 별세하셨다. 법적으로 지급해야 한다는 110억 원은 그렇게 부산대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그는 마지막으로 부산대를 떠올릴 때 마지막으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언론에서는 그 상징성 때문인지 '305억 기부'라는 타이틀을 종종 사용하고 있으며, 이는 처음 305억 원을 기부를 하겠다는 의견을 피력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지어진 경암 송금조 동상에도 그렇게 적혀 있다.

2023년 2월 28일 열린 부산대학교 경암의학관 명명식 (출처 : 파이낸셜뉴스)

경암체육관에 이어 2023년 2월 28일, 부산대학교 내에선 기존 의학관의 명칭을 경암의학관으로 명명하며 그를 또 다시 기렸다. 사실 기부의 원래 목적을 따져보면 '경암'이라는 이름은 기존의 경암체육관보단 양산캠퍼스의 '경암의학관'이 더 적절해 보이긴 한다.

 

어쨌든 처음 이 동상을 봤을 땐 단순히 '와! 305억원을 부산대에 기부한 부산 향토 회장님 대단하시다'라고 생각했는데, 곧 몇몇 뉴스를 보곤 '응? 305억이 아닌 195억만 기부했다고? 뭐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더 찾아보니, '기부 협약 당시 부산대의 약속 변경'이라는 사건을 알게 되었고, 다시 이 이야기를 제대로 정리해보자라고 다짐했다.

자료를 찾아보며, 어쩌면 부산대의 정치적 암흑기 안에서 일어났던 '기부금 사용 논란'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고, 그러한 부산대의 역사도 부끄럽지만 모교의 역사라는 것을 불편하지만 자꾸 쳐다보려고 했다. 어찌보면 '아니 그 기부금 어디 사용한게 뭐 어쨌다고?'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래도 기부하려는 사람의 의중이 그러하면 어느 정도 해주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싶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었다.

이 이야기보다 더 깊숙하게 그 윗분들만 아는 이야기들도 생략되었을 거고, 그렇게 어른의 사정으로 인해 무언가가 또 있었으리라 짐작은 해볼 수 있겠다. 동상을 지나다니다 보면 또 어떤 생각이 들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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