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동과 남산동을 이어주는 작은 도로, 하정로. 이 길의 가운데를 지나는 작은 차로가 황산도 금정장원길이다.
위 지도에서 '소산역'이라고 표시된 곳이 이 황산도 금정장원길 중간에 있는 소산역터다.
회동수원지 입구에서 길을 건너가면
도보와 차도가 같이 나온다. 2023년 3월에도 황산도 금정장원길의 입구는 현재 공사 중이다. 조심해서 이 길로 내려가면 된다.
이정표를 보면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되는데, 여기서 지도에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제실(祭室, 제사를 지내는 집)이 하나 나오는데, 임진왜란 때 동래 지역에서 처음 의병을 일으킨 김정서(金廷瑞)와 이조 참의를 지냈던 김선(金瑄)을 모시는 상현사(尙賢祠, 부산광역시 금정구 상현로105번길 91)다. 지도에서도 나오지 않고, 역사의 작은 한 부분을 배울 수 있을 것 같아, 위치와 거리를 지도에 표시해 뒀는데, 후에 기회가 된다면 답사해보려 한다. 답사기를 위 '상현사' 키워드에 링크걸어두었다.
마을 입구에서 선두구동을 지키며 그 주민의 안녕과 건강을 기원하는 솟대들이 맞아준다.
경부고속도로를 지나는 터널로 지나가자.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된다.
저 멀리 이전에 금정구자활센터였던 황산도 금정쉼터가 보인다.
소산역(蘇山驛) 문을 현대적으로 복원해 뒀다. 뷰가 이뻐서 찍어봤다.
황산도 금정쉼터((구) 금정구 자활자립센터). 월~토는 아침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열며, 일요일은 아침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 연다. 그리고 공휴일은 휴무라고 하는데, 여기선 일요일을 제외한 공휴일을 말하는 듯하다. 그리고 처음 오면 이 건물이 바로 소정역이 있던 곳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실제 소정역은 여기가 아니라 골목으로 들어가야 볼 수 있는 하정경로당에 위치했었다.
건물 변천사 | ||
선동 동사무소 (~1997) |
금정구 자활자립센터 (1997~2021) |
황산도 금정쉼터 (2021~) |
건물 뒤편에는 조선의 수도 한성에서 현재의 부산지역의 중심지 동래를 잇는 영남대로의 대략적인 지도가 그려져 있다. 그 지도를 토대로 좀 더 자료를 찾아 대략적인 영남대로의 구간을 지도에 표시해 봤는데, 서울 기준 경부고속도로-평택제천고속도로-중부내륙고속도로-경부고속도로-중앙고속도로로 연결되는 구간과 어느 정도 맞물린다.
지도 옆에는 2개의 비석이 세워져 있다.
수의상국(繡衣相國) 이공만직(李公萬稙)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 금정구 향토문화재 제8호 이 비석은 1878년(고종 15년)에 암행어사 이만직(李萬稙)이 황산역에서 위천역(渭川驛, 양산시 상북면), 무흘역(無屹驛, 밀양시)을 거쳐 '소산역'에 와서 민생 복지를 위한 기금을 조성하여 베푼 은혜를 잊지 않기 위해 소산역의 감관(監官, 돈, 곡식의 출납을 감독하던 관리)과 색리(色吏, 곡물 출납 및 간수를 맡던 구실아치)가 세웠다. 송덕시는 다음과 같다. 아폐주구(我弊疇捄) [우리의 폐단을 누가 구원하랴.] 대시이혁(待時而革) [때를 기다려 개혁하였네.] 파균학철(派均涸轍) [메마른 구덩이에 혜택을 고루 미치고] 병진적맥(病診的脈) [또렷하게 병의 맥을 진단하였네.] 유존구규(猶存久規) [오래 갈 규범을 더욱 보존하여] 기유점소(期有漸甦) [점차 소생함을 이에 기약하였네.] 명은체덕(銘恩體德) [은혜와 덕을 몸에 새겨서] 영시무투(永矢毋渝) [길이길이 잊지 않기로 맹세하네.] 이만직은 부산포의 실상을 파악한 보고서(1878년)에서 관세를 부과하는 '해관 설치'를 고종께 건의하여 윤허를 받았던 통상정보의 선구자였다. |
황산(黃山) 이방(吏房) 최연수(崔延壽) 애휼역졸비(愛恤驛卒碑) 금정구 향토문화재 제5호 이 비석은 1697년(숙종 23년)에 이방(吏房) 최연수(崔延壽)가 역졸(驛卒)을 지극한 정성으로 보살필 뿐만 아니라 청렴하기 이를 데 없는 성품으로 덕망이 높아 이방 관리에 그친 것이 아깝다는 고마운 뜻에서 상급 관리들이 세운 송덕비이다. 송덕시는 다음과 같다. 심성봉공(心誠奉公) [공무를 받드는데 정성을 다하여] 지절무자(志切撫字) [어루만져 돌보는 뜻이 간절하였다.] 청여한담(淸如寒潭) [청렴하기가 차가운 연못과 같아서휴산] 가석위리(可惜爲吏) [관리에 그친 것이 가히 애석 하도다.] 비석 뒷면에 휴산(休山), 소산(蘇山)이라는 두 역명이 있어 여기가 조선시대 황산도(黃山道, 영남대로의 종착노선 <동래~밀양>. 속역 16개역) '소산역'이었음을 말해주며, 선동 하정마을이 역촌임을 실증하는 중요한 비석이다. |
황산도 금정쉼터에서 서쪽으로 약 100m를 걸어오면 소산역터 안내판이 보인다. 안내판에 따르면 현재의 하정경로당 자리에 황산도에 속한 소산역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산역터 소사역은 영남대로 황산도에 위치하였으며 조선시대 역참이다. 역참이란 '말을 바꾸어 타는 곳'으로 오늘날의 기차역, 우체국, 숙박시설 등을 합친 역할을 했다. 당시의 역에는 역마가 배치되어 국가의 공문서 전달, 진상 공납물의 수송, 공무 여행자를 지원했다. 암행어사가 제시하는 마패에 따른 말도 역에서 제공했다. 현재 하정마을 경로당 자리가 과거 역참 자리이다. |
이제 다시 남산역 쪽으로 쭉쭉 가면 된다.
가는 길에 1943년에 조성된 하정소류지도 보인다. 이 하정마을 남쪽에는 동래 베네스트 골프 클럽이 들어서 있다.
소정소류지 쪽에는 하정마을과 인근 지역에 대한 간략한 지도가 그려져 있다. 여기서도 (구) 소산역(소산역참)이 현재 하정경로당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남산동에서 걸어왔다면 볼 수 있는 풍경일 것이다. 이쪽으로 들어왔다면 황산역 터(현 하정경로당)를 살짝 보고, 황산도 금정쉼터를 방문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남산동 쪽으로 쭉쭉 올라가면,
이런 으슥한 터널이 나온다.
작은 터널을 벗어나 내려가보자.
황산도 금정장원길을 알려주는 작은 휴식터가 나온다.
여기 가운데는 이렇게 소원마패가 땅에 박혀 있는데, 여기서 원하는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단다~ 믿거나 말거나~
그렇다네요~
옷이 좀 이상해 보일지 모르겠는데, 호주머니 안에 무선 이어폰을 넣어놓아서 그렇다..ㅎㅎ.. 어쨌든! 딱 이렇게 서서 소원을 빌었다! 뭐 빌었는지는 비밀~
길을 건너서 아스팔트길을 내려가고,
또 길을 건너서 나뭇길을 통해 내려가면 탐방은 끝~
다왔다!!
뒤돌아서 황산도 금정장원길은 남산동에서 왔다면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대로변을 건너와서 찍은 사진. 차로 왔다면 이쪽으로 올라가면 된다~ 이 길은 결국 회동수원지로 이어지기 때문에 회동수원지로 걸어서 산책을 가보고 싶다면 이 길을 이용하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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