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금호아시아나본관앞 정류장 부근의 훈련도감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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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원과 표로 보는 역사 시리즈/어원과 표로 보는 한국사, 한국문화

광화문.금호아시아나본관앞 정류장 부근의 훈련도감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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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금호아시아나본관앞 정류장이다.

광화문.금호아시아나본관앞 정류장 앞에 바로 보이는 KC타워(종로구 신문로1가 57).

광화문.금호아시아나본관앞 버스 정류장과 구세군회관, 훈련도감터의 위치

이쪽에서 서쪽으로 조금가면 있는 구세군회관쪽에는 조선시대의 육군 수도방위사령부 본부에 해당하는 훈련도감 본영이 있었다. 다만 이 비석은 어떤 이유인지 몰라도 KC타워 앞에 세워져 있는 점이 조금 아쉽다.

훈련도감 터
임진왜란 중에 설치된 포수(砲手), 사수(射手), 살수(殺手)의 삼수병(三手兵)을 관할하던 군영터 

훈련도감은 조선의 오군영(5군영) 중 가장 오래된 최초의 군영이자 조선 후기의 최정예 군영이었다. 임진왜란 중 당시 영의정이었던 류성룡(柳成龍, 1542~1607)의 건의로 일본 조총병에 대응하기 위해 조총을 쓰는 포수(砲手), 활을 쏘는 사수(射手), 창과 검을 쓰는 살수(殺手)의 삼수병(三手兵)을 전문적으로 훈련시키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렇게 훈련된 삼수병들은 일본군이나 중국군을 막는데도 공헌했을 뿐 아니라 궁성 수비, 이인좌의 난과 같은 반란 진압과 같은 임무도 맡으며 조선 후기의 최정예 정규군으로 활약하게 된다.
 
이렇게 많은 전투 경험을 키우고 규모가 커진 훈련도감은 정치적으로도 이용되어 임시기구였지만 법정기구가 되었고, 그 운영 비용도 만만찮게 들어가게 된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 1881년, 고종이 군제 개형을 할 때 이 훈련도감을 무위영에 합쳐져 해체시켜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조선 후기 최고의 군영 중 하나였던 훈련도감의 본영은 이러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지금 비석으로 우리에게 그 흔적을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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