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장춘기념관 앞의 자유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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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원과 표로 보는 역사 시리즈/어원과 표로 보는 한국사, 한국문화

우장춘기념관 앞의 자유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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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장춘기념관을 방문한다면 앞에 작은 기와 우물 같은 것이 보일 것이다. 여기가 바로 '자유천'이라 불리는 샘이다.

현재는 출입을 통제하고 있어 직접 들어가진 못하고, 카메라를 여리저리 돌려가며 확대해서 사진을 찍었다.

자유천 좌측에는 우장춘박사 유적지라고 적힌 안내판이 있다.

우장춘박사 유적지

이 지역은 세계적인 육종학자이신 우장춘 박사가 1950년에 원예시험장을 창설하고 직접 일을 하신 곳이며 1953년에는 일본에 계신 어머니의 임종을 못보게 되어 멀리서 위령제를 지냈고 그 때 각계에서 보내온 조의금을 가족에게 보내지 않고 물이 귀한 이곳에 우물을 파서 시험장은 물론 이웃 부락민에게도 크게 도움을 주었으며 자애스런 어머니의 젖이란 뜻에서 자유천(慈乳泉)이라고 손수 써서 비석을 세우고 어머님의 정을 흠모하였다. 그 뒤 1959년에 우박사는 우리나라 농업 발전에 많은 공적을 남기고 62세로 돌아가셨으며 여기에 있던 원예시험장은 수원(水原, 경기도 수원시)으로 이전하게 되어 부산시에서는 1973년 이곳에 동상을 건립하면서 우장춘 박사 유적지를 길이 보존하기 위하여 로-타리를 만들게 되었다.

서기 1988년 11월 1일 원우회

원래 이곳은 1950년부터 이곳에 우장춘 박사가 세웠던 원예시험장이 있었고, 1953년에는 연구용 및 민간보급용으로 사진에 보이는 우물을 팠던 것이다. 원예시험장은 경기도 수원시로 이전되며 그 자리에 우장춘기념관이 자리잡고 지금까지 그의 업적을 널리 전하고 있다.

한국농업과학연구소
(1949~1953.05)
중앙원예기술원
(53.05~57.05)
원예시험장
(57.05~08.10)
원예시험장
(57.05~08.10)
원예시험장
(57.05~08.10)
국립원예특작과학원
(08.10~)
과수연구소
(91.11~94.12)

한편 우장춘이 소장으로 있었던 동래의 원예시험장은 현재에는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으로 지금까지고 원예, 육종 분야 연구, 기술 보급에 힘쓰고 있다. 참고로 지금의 부산전자공업고등학교가 부산원예고등학교였던 시절 우장춘 박사가 이곳에 잠시 근무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자유천의 남쪽에서 바라본 모습

자유천의 정문에서 확대해 찍은 모습

우장춘 박사가 세웠다는 자유천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자유천 비석이다. 뒷면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다. 지금은 많이 지워져 일부분만 확인 가능하다. 비석 치고는 세워진 지 얼마 되지 않은 비석이지만 많이 풍화되어 희미해져 글씨를 알아보기 힘들어졌다. 이걸 보고 하루 빨리 내가 확인할 수 있는 비석은 최대한 빨리 찾아 다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초대원장(初代院長) 우장춘(禹長春) 박사(博士)
대부인(大夫人, 어머니)께서 8월 18일

별세(別世)하시매 부의금(賻儀金)
전액(全額)을 본원(本院)에 위탁(委託)
하시고 ㅁㅁㅁ에
자유천(慈乳泉)을 만들어
이를 기념(記念)한다.

단기(檀紀) 42ㅇㅇ년(서기 19ㅇㅇ년) 개천절(開天節)일
중앙원예기술원(中央園藝技術院)

1953년에 사망한 우장춘 박사의 어머니의 소식을 듣고 들어온 부의금을 중앙원예기술원에 맡겨 자유천이라는 우물을 만들었다는 내용을 '자유천'이라는 이름의 비석에 새겨넣었다. '자애로운 어머니의 젖과 같은 샘이라 하여 자유천으로 이름 짓고 손수 글씨를 써서 비석을 세웠다.'라고 한 구절에서 그 비석은 이 비석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 외에 자유천 설명비석에는 아래와 같은 기록이 적혀있다. 

자유천(慈乳泉)

1950년 3월 우장춘 박사는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을 일본에 남겨두고 홀로 귀국하여 농업기술 개발과 후진양성에 전력을 기울였다. 1953년 8월 일본에 계신 어머니의 임종을 지켜보지 못한 박사는 당시 원예시험장이 있었던 이곳에서 위령제를 지냈고 각계에서 보내온 조의금으로 우물을 파서 시험장은 물론 이웃 주민들이 공동으로 사용하게 하였으며 자애로운 어머니의 젖과 같은 샘이라 하여 자유천으로 이름 짓고 손수 글씨를 써서 비석을 세웠다. 1954년 2월 화강암으로 우물의 둘레를 다듬고 천각을 지었으며 박사는 매일 아침 이곳에 있는 돌 세면대에 우물물을 받아 세수하고 돌 두꺼비 화분에 수련을 키우는 등 주위를 가꾸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하였다. 그동안 천각의 지붕이 많이 훼손되고 기둥이 부식되는 등 위험이 있어 동래구에서는 박사님 서거 50주년을 맞아 지하수를 개발하여 자유천에 연결하고 천각 주변을 새롭게 단장하여 2009년 4월 19일 준공하였다.

어찌되었든 어머니의 사랑을 고스란히 부산 사람들에게 시원한 물로 돌려준 우장춘 박사의 동민들에 대한 관심을 엿볼 수 있는 자유천 주변을 돌아봤다. 다음에 여기가 개방된다면 제대로 탐방해 여러 사진들을 기록으로 남겨놓을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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