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래부는 내가 지킨다, 동래 장관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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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부는 내가 지킨다, 동래 장관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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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역 2번 출구 혹은 수안역 5번 출구에서 내려 부산은행 동래금융센터 방면으로 가다보면 장관청에 방문할 수 있다.

자동차 진입로 방면에서 쭉 오면 일신 주차장이 보인다.

이 사진은 주차장에서 차량 진입로 방면으로 본 사진이다. 저 벽면에 '동래 장관청'이라고 적힌 팻말이 보인다. 실제로 저쪽에서 걸어온다면 이 팻말을 보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일신 민영 주차장 뒤쪽으로 가면 장관청으로 들어갈 수 있다.

장관청
동래구 명륜로 94번길 36-6


이 건물은 조선 후기 동래부 청사 건물의 하나로 군장관들이 일을 하던 곳이다. 동래는 일본과 대치하는 국방의 요충지로 예부터 군사 기관이 많이 있었다. 장관청은 1669년 동래부사 정석(鄭晳)이 처음 세웠는데 1706년 동래부사 황일하(黃一夏, 1644~1726)가 향청이 있던 자리로 옮겼다. 건물의 모양은 ㄱ자형이며 딸린 행랑은 일자 모양이다. 조선 후기 우리 고장 관청의 건축 양식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였으나, 여러 차례 보수 과정을 거치면서 변형이 심해져 1998년에 해체하여 다시 원래대로 고쳐 지었다.

이 안내판의 좌측을 보자. 참고로 이 장관청할 때 장관은 요즘 쓰이는 관청의 으뜸 벼슬인 장관(長官)이 아닌 조선시대 군대에서 고위 장수직을 뜻했던 장관(將官)을 말한다.

장관청과 그 장관청을 지키고 있는 병사 모영이 있다. 뒤에는 좌측에는 사단법인 동래기영회의 현판이 걸려있는데, 지금 장관청 건물을 동래기영회가 쓰고 있기 때문이다. 문을 들어가면 이런 안내판이 나온다.

동래 장관청

부산광역지 지정 유형문화재 제8호
소재지 : 부산광역시 동래구 명륜로94번길 36-6(수안동)

이 건물은 조선후기 동래부 청사 건물의 하나로 이곳 군장관(軍將官)들의 집무소였다.
동래부는 일본과 인접하고 있는 국방상의 요충이었다. 1655년(효종 6)에 독진(獨鎭)으로 승격하였다. 군사상의 지위가 강화됨에 따라 군관의 기관이 설치되었다. 부사의 경찰과 군사적인 속료에 군교(軍校)가 있다. 군교는 장관(將官), 군관(軍官), 포교(捕校)를 말한다.
1669년(현종 10)에 동래부사 정석(鄭晳)이 창건한 후, 숙종 연간에 두 차례 중건되었다. 1706년(숙종 32) 동래부사 황일하(黃一夏)가 향청(鄕廳)이 있었던 지금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건물의 양식은 정면 6칸, 측면 2칸 규모의 ‘ㄱ’자형으로 도리 끝에 접시받침을 한 집이다. 처마는 부연(浮椽)이 있는 겹처마이며, 지붕은 팔작(八作)지붕이다. 부속된 행랑은 정면 7칸, 측면 1칸의 민도리집이다.
이 건물은 우리 고장에 남아 있는 조선 후기 관아 건물로 당시의 건축 양식을 엿볼 수 있는 가치를 지니고 있는 집이다. 그러나 여러 차례에 걸친 구조의 개조와 무리한 맞춤으로 변형이 심하여 1998년 전면 해체ꞏ복원하였다. 현재 동래기영회(東萊耆英會)에서 관리ꞏ사용하고 있다.

설명문을 보면 알겠지만, 이곳은 임진왜란 이후에 세워진 곳이다.

내부로 들어섰다. 바로 왼쪽에 보이는 것은 행랑이고 우측에 있는 것이 장관청 본건물이다.

장관청에 들어서 찍은 사진. 군 간부가 업무를 봤던 곳 치고는 소박해 보인다.

회로당(會老堂)과 자영당(者英堂)이라고 적힌 건물이 보인다. 이 건물에서 장관(將官)

장관청 자영당쪽에서 행랑을 바라본 모습이다. 업무로 잠깐 나갈 일이 있을 때 이런 풍경을 보지 않았을까싶다.

군 간부 치고는 꽤 소박한 곳에서 근무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 근무자들은 동래부와 가까이 붙어 있어 다양한 군사적, 사회적 상황을 직접 듣는 일도 많았을 것 같다. 전국을 돌아봐도 조선시대 군 고위 간부가 정무를 봤던 장소가 별로 남아있지 않은데, 그런 조선 후기 군 관련 관청이 동래에라도 남아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기장읍성 내부에 지어진 기장 장관청에 대해서는 이 글(https://mspproject2023.tistory.com/2099)을 참고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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