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이거 제제안되나요?'라고 쓴 걸 봤다. 이에 이 제재, 재재와 같이 헷갈리는 단어류를 정리해보려고 한다. |
1. ㅐ와 ㅔ의 발음이 같다.
먼저 ㅐ[애]는 ㅏ[아]와 ㅣ[이]가 합쳐진 단모음이며, ㅔ[에]는 ㅓ[어]와 ㅣ[이]가 합쳐진 단모음이다. 이 두 모음에 대한 발음은 1920년대에 태어난 화자들부터 구분이 모호해지기 시작했고 전후 시대부터는 사실상 이 두 발음의 차이를 실질적으로 구별하진 않게 되었다.
그럼 모음 하나가 표기에서 사라지는 걸까? 그건 아니다. 2018년 국립국어원은 역사성을 이유로 아직은 두 모음을 구별해서 쓰도록 규정했기 때문이다. 현대에는 이미 ㅐ와 ㅔ의 발음이 거의 같아 먼 미래에는 이 모음이 하나의 모음으로 합쳐질 가능성도 있겠지만 지금 2022년 당장은 아니다.
2. 재재
재재 : (1) [부사] 조금 수다스럽게 재잘거리는 소리. 또는 그 모양. ex)매미들이 재재 울어서 시끄럽다. (2) [명사] [在在] 여러 곳, 이곳저곳 ex) 재재소소 (3) [명사] [載在] 책 등에 실려(기록되어) 있음 |
종다리나 제비같은 새들은 '지지배배'하면서 운다고 한다. 여기서 '지지'는 수다스럽게 지껄이는 소리를 뜻하는 의성어다. 이 지지배배의 '지지'와 비슷한 느낌의 의성어가 바로 '재재'인 것이다. 이 표현은 문학이나 사투리에서 주로 찾아볼 수 있으므로 다음 단어를 설명하겠다.
이번에 소개할 재재(在在)는 직역하면 '있고(在) 있음(在)'인데, 여기서 在[재]는 '있다->있는 곳->장소(곳)'이라는 뜻으로 확대되었고, 그래서 재재(在在)는 '여러곳, 이곳저곳, 도처(이르는 (모든) 곳)'라는 뜻이 되었다. 이 말은 거의 문어적, 옛투 표현에서 많이 쓴다.
마지막으로 재재(載在)는 직역하면 '실려(載) 있음(在)'이라는 뜻으로 책 등에 실려(기록되어) 있음이라는 뜻이다. 이 단어는 뜻이 뜻인 만큼 학문적인 글에서 자주 쓰이는데 그래서 '재재'라는 말 중 가장 쓰는 빈도가 높은 말이라고 할 수 있다.
3. 재제
재제 : (1) [명사] [再製] 이미 만든 것이나 낡은 것을 다시 가공하여 제품으로 만듦 ex) 재제생사, 재제소금 (2) [명사] [宰制] 전권을 쥐고 처리함 |
여기서는 재제(再製)가 재제(宰制)보다 훨씬 많이 쓰인다. 우선 재제(再製, remanufacture)는 직역하면 '다시(再) 만들다(製)'라는 뜻으로, 이미 만들어졌거나 낡은 것을 재(再)가공(製)해 제품으로 만드는 것이다. 쉽게 말해 '재가공, 재제조'이라는 뜻과 비슷하다.식품의약품안전청에 따르면 이 재제소금 혹은 재제조소금을 원료 소금(100%)을 정제수, 해수 또는 해수농축액 등으로 용해, 여과, 침전, 재결정, 탈수, 염도조정 등의 과정을 거쳐 제조한 소금이라고 정의하는데, 흔히 일상적으로 꽃소금이라고 하는 그 소금이다. 이 소금같은 경우 기존의 원료 소금을 다시 제조과정을 거쳐 만든 소금이라서 이러한 이름이 붙은 것이다.
그 다음 재제(宰制)는 직역하면 '재상(宰)의 제도(制)'라는 뜻으로, 전권을 쥐고 처리함이라는 뜻으로 역사적인 용어로 자주 쓰이기에 현대에는 자주 쓰진 않는다.
국가를 다스리는 사람은 치체(治體) 아는 것을 귀히 여기는 것입니다.
(...)
그런 뒤라야 온갖 일을 재제(宰制)할 수 있고 만민의 종주도 될 수 있는 것입니다.
- 사간원 대사관 임추 등의 상소(1527년)
이제 남구만은 수상(首相)의 지위에 있으면서 세상을 다스려 사물(事物)을 재제(宰制)하는 마음으로 하지 않고 몸을 용납하여 은총을 굳히는 것을 방술(方術)로 삼아, 충성으로 세상을 광구(匡救)하는 도움은 없고, 머뭇거리며 눈치를 살피고 염려하는 태도가 있으니, 오직 세속(世俗)에 좇아 안일(安逸)만을 도모하여 그 사사로움을 도모하는 자라는 것은 길가는 사람이 모두 압니다. 전하께서 그 쓸 수 없음을 이미 시험하셨는데도, 다시 이 자리에 두심은 어찌된 것입니까?
- 유학 강민저의 상소(1695년)
4. 제재
제재 : (1) [명사] [制裁] 일정한 규칙, 관습, 법, 규정을 어겼을 때 제한, 금지, 처벌함. 또는 그런 조치. (2) [명사] [製才] 시문을 짓는 재주 (3) [명사] [製材] 베어 낸 나무로 재목을 만듦 (4) [명사] [諸宰] 여러 재상 (5) [명사] [題材] 예술 작품, 학술 연구의 바탕이 되는 재료 |
자음을 모두 ㅈ으로 쓰고 ㅐ와 ㅔ 차이로 헷갈리는 단어들(재재, 재제, 제재, 제제) 중에서 일상적으로 가장 많이 쓰는 단어가 바로 이 '제재'다! 사실 이 글을 쓴 것도 이 제재라는 말 때문이다. 이 제재 중에서도 1번 뜻이 일상적으로 가장 많이 쓰인다. 먼저 裁[재]는 '재거나 자르다->조치하다'라는 뜻으로 확대되었다는 걸 알아두면 다음 문장을 이해하기 쉽다. 제재(制裁, sanctions)는 직역하면 '제도(制)적으로 마름질(裁)함'이라는 뜻으로, 일정한 규칙, 관습, 법, 규정을 어겼을 때 제한, 금지, 처벌함. 또는 그런 조치를 말한다. 정치적으로 '대북제재, 대중제재, 대러시아 경제제재'처럼 쓰이기도 하며, 일상적으로는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핸드폰을 쓰지 못하게 제재하다'와 같이 쓰기도 한다. 결론적으로 '규칙 등을 어겼을 때 막는 조치를 취하는 것'을 제재라고 한다!
제재(製才)는 '만드는(製) 재주(才)'라는 뜻으로 특히 동양에서 주로 시문을 짓는 재주를 뜻한다. 이 단어는 주로 문학적, 역사적 표현에서 쓰인다.
위 뜻과 비슷한 제재(製材)는 '재목(材)을 만듦(製)'이라는 뜻으로 직역이나 본 뜻이나 같은 의미를 지닌다. 참고하면 좋은 단어인 재목(材木)은 직역하면 '재료(材)용 나무(木)'로, 목조 건축물, 목조 기구 등을 만드는데 쓰는 나무를 말한다. 목재와 관련된 업장에서 주로 쓴다.
제재(諸宰)는 제재(製才)처럼 주로 문학적, 역사적 표현에서 쓰이는데 말 그대로 여러(諸) 재상(宰)이라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제재(題材, topic, material)는 학문적, 문학적 표현에서 자주 쓰이는데, 직역하면 '주제(題)의 재료(材)'로 예술 작품이나 학술 연구의 바탕이 되는 재료라는 뜻이다.
5. 제제
제제 : (1) [명사] [帝制] 제왕이 정한 제도나 법칙 (2) [명사] [提題] 논증해야 할 명제 (3) [명사] [製劑] 의약품을 치료 목적에 맞게 배합하고 가공해 일정한 형태로 만듦. 또는 그런 제품. (4) [명사] [濟濟] 많고 성함, 삼가고 조심하여 엄숙함 |
우선 제제(帝制)는 직역하면 '제(帝)의 제도(制)'라는 뜻으로 황제(皇帝) 혹은 그에 버금가는 제왕(帝王)이 정한 제도나 법칙을 말한다. 이 말도 군주제가 대부분 폐지된 근래에는 거의 쓰이지 않으며, 역사적, 문학적 표현에서만 쓰인다. 참고로 중국어로는 이 帝制[띠쮜/제제]를 군주제라는 뜻으로 쓴다.
제제(提題)는 일상적, 학문적, 논리적 표현에서 자주 쓰는데, 직역하면 '(논증에) 끌어당긴(提) 주제(題)'를 뜻한다. 이 단어는 논증에 있어서 논증해야 할 판단이라는 뜻이다.
제제(製劑, preparation)는 직역하면 '약제(製)를 만듦(劑)' 혹은 '만들어진(製) 약제(劑)'이라는 뜻으로 의약품을 치료 목적에 맞게 배합하고 가공하여 일정한 형태로 만듦. 또는 그런 제품이라는 뜻이다. 흔히 약학 분야에서 쓰이며 약국제제, 한약제제와 같이 쓴다.
제제(濟濟)라는 말은 일상해서는 잘 쓰지 않고 문학적 표현으로 많이 쓴다. 이 단어는 동사 제제하다의 어근으로, 제제하다라는 말은 많고 성하다 혹은 삼가고 조심해 엄숙하다라는 뜻으로 쓰인다. 고사성어 중 '여러 선비가 모두 뛰어나다'라는 뜻의 제제다사(濟濟多士)와 같은 표현으로 쓴다.
이렇게 자음이 모두 ㅈ이면서 ㅐ와 ㅔ 차이로 헷갈리는 두 음절의 단어들(재재, 재제, 제재, 제제)에 대해 정리해봤다. 여기서 가장 일상적으로 많이 쓰는 제재(制裁)라는 글자만이라도 잘 써서 단어를 잘못 써 문맥의 혼란이 오지 않았으면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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