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항해시대?
영미권과 에스파냐어권에서는 발견의 시대(Age of Discovery, Era de los Descubrimientos) 혹은 탐험의 시대(Age of Exploration)라고 부르던 15~17세기 사이의 시기를, 중국에서는 지리대발견(地理大发现), 한국과 일본에서는 대항해시대(大航海時代, 大航海時代)라고 부른다. 이 때는 유럽사 기준 15~17세기에 유럽인들이 전 세계의 다양한 지역을 탐험했던 시대로, 넓은 의미에서 항해의 시대(Age of Sail, 15~19세기)에 포함된다.
15세기 | 16세기 | 17세기 | 18세기 | 19세기 | |||||
항해의 시대 | |||||||||
발견의 시대(대항해시대) | |||||||||
근대 초기(유럽) | 근대 후기(유럽) |
1415년 8월 21일, 포르투갈 왕국(1139~1910)이 아프리카 대륙에 첫발을 내딛었다. 왕국은 마린 술탄국의 세우타라는 영토를 빼앗았는데, 이를 세우타 정복(conquest of Ceuta)이라고 하며, 유럽 최초로 아프리카 대륙을 점령한 이 사건으로 이 지역은 현재에도 유럽 국가의 영토가 되었다. 이는 유럽의 타대륙 점령의 시작이자 항해의 시대와 발견의 시대의 새벽을 알리는 조용한 총성이 된 것이다.
이후 16세기까지, 포르투갈과 에스파냐가 중심이 되어 아프리카, 아메리카, 아시아의 여러 지역을 탐험하고 정복하고 다녔다. 1488년, 포르투갈 왕국 바르톨로뮤 디아스(Bartolomeu Dias,1450,~1500)의 희망봉(喜望峰, Cabo da Boa Esperança) 발견, 1492년, 제노바 공화국 출신에 에스파냐의 후원을 받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 1451~1506)의 카리브 제도 발견과 그로 인한 유럽-아메리카 항로 발견, 1498년, 포르투갈 왕국 바스코 다 가마(Vasco da Gama, 1460'~1524)의 인도 캘리컷 도착, 1522년 종료된 마젤란-엘카노 원정(Magellan–Elcano expedition)이라고도 불리는 마젤란 원정 혹은 마젤란 세계일주(1519~1522)처럼 말이다.
이렇게 실크로드 등을 통한 육상교역을 하던 유럽이 세계를 탐험하며 식민지를 세우고, 해상교역을 확대했다. 그렇게 점차 유럽은 강해졌고, 근대 제국주의 시대로 들어갔으며,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시대가 시작되게 된다!
그러나 최근들어 이에 대한 다양한 관점이 생기고 있다. 애초에 1498년 포르투갈이 캘리컷에 도착하기 훨씬 전인 15세기 초 명의 정화가 황명을 받고 캘리컷에 도착했고, 유럽보다 조금 늦긴 했지만, 1418년에도 정화의 분대는 아프리카에 도착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유럽이 처음 아프리카에 발을 내딛던 1418년보다 훨씬 전인 1405년부터 동방의 명은 세계일주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를 정화의 대원정(1405~1433)이라 한다.
자 그러면 서세동점 시대의 시작을 알린 유럽의 15~17세기. 이 때를 뭐라고 불러야할까?
서구의 입장에서는 지리상의 발견이기 때문에 발견의 시대(Age of Discovery)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러나 동양의 관점을 따른다면, 해상 실크로드가 확장되고, 아메리카를 포함한 타 대륙간의 새로운 무역로가 개발된 것이고 사람이 살지 않는 새로운 땅을 발견한 것이 아니므로 신항로 개척 시대, 신항로 발견 시대라고 부를 수 있다.
2. 조작된 동양과 서양 이미지를 타파하기 위한 <오리엔탈리즘>과 탈식민주의
예술계에서 19세기에 동양의 영향을 받은 그림들이 서양에 나오기 시작했는데 이러한 예술 사조를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이라고 불렀다. 한편, 중세시대부터 한자, 페르시아어와 같은 동방의 언어를 연구하는 학문도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이라고 불렀다. 쉽게 말해 오래전부터 유럽에서는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을 '동양풍, 동양학'이라는 어투로 사용해왔다는 것이다. 그러다 20세기에 들어서 조금 의미가 바뀌었는데, 팔레스타인 출신의 비교문학가이자 문명비판론자였던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 1935~2003)가 1978년 발표한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이 큰 파동을 몰고 온 것이다.
1978년,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이 출판된 이후 많은 학술적 담론이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이라는 용어를 '중동, 아시아, 북아프리카 사회에 대한 서구의 보편적인 깔보는 듯한 태도'라는 어투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에드워드 사이드의 분석에 따르면, 근대 이래로 서구인들은 동양을 가리켜 여성적, 미개발, 비문명적 존재로 여겨 왔으며, 서양 자신을 가리켜 남성적, 개발, 문명적으로 간주해 왔다. 그는 지금껏 18세기 이후의 서양은 동양보다 우월하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고 꼬집었다.
<오리엔탈리즘>에서는 동양은 오랫동안 스스로 하나의 실체로서 존재하지 못하고 서양의 경험과 서양의 의식 속에 투사된 그림자로서만 존재해왔으며, 이러한 동양의 이미지를 만든 서양은 그 동양 자체를 신비주의화시켰다. 신비롭고 가보지 못한 곳에 도달하려는 본능이 동양을 그런 이미지로 만들었고, 결국 동양을 식민화시키고 수탈하는 결과도 낳게 되었다. 또 이러한 동양에 대한 각종 편견과 그릇된 인식이 서구의 사상과 학문 속에 침투했고, 그 결과 인종차별주의와 제국주의를 감싸는 듯한 서양적 관점이 등장하기도 했다.
프랑스 서인도 회사령에서 태어난 아메리카인 프란츠 파농(Frantz Fanon, 1925~1961)은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유럽으로 공부하러 갔지만, 그곳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흑인이라는 취급을 받으며 모욕적인 인생을 살았다. 그렇게 의사가 된 그는 알제리인들의 정신장애가 식민지 상황의 폭력성에 기인한다는 사실을 알아내었고 이런 다양한 경험과 진료를 바탕으로 1952년, '식민주의 심리학'이라고도 불리는 <검은 피부, 하얀 가면(Black Skin, White Masks)>을 편찬했다. 이 책에서 그는 식민주의 아래에서의 열등감의 내재화에 대해 파헤쳤다. 이러한 노력으로 현재 이 책은 당시 그리도 현대의 아프리카 문학, 철학, 심리학 등에 크나큰 영향을 주었다.
또한,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는 '근대성(modernism)'이 절대적이 아니고 역사적이라고 밝힘으로써, 특정 글(text)에 영향을 준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요인들, 그리고 그 글과 권력의 결탁, 글을 형성하고 지배한 체제 등 감춰진 요소들을 다시 보이도록 재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노동계급은 비위생적이고 게으르다'라던가 '식민지인은 열등하다'와 같은 말은 지배 이데올로기가 자의적으로 만들어낸 하나의 담론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식민주의와 제국주의를 비롯한 서구 중심의 근대성에서 벗어나려는 일련의 사상, 문학적 운동인 탈식민주의(postcolonialism)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학자, 작가들에 의해 식민 시대를 다시쓰기(Rewrite) 시작했다. 이 탈식민주의는 서구식 보편주의라는 틀을 해체하고, '중심과 주변'이라는 구별 자체를 지양했으며, 주변적 위치를 벗어나 중심으로 나아가는 것을 목표로 했다.
3. 2차 창작물의 반란
3-1. <로빈슨 크루소>와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1719년, 영국 작가 대니얼 디포(Daniel Defoe, 1660'~1731)는 <로빈슨 크루소(Robinson Crusoe)>라는 장편 소설을 발표했다. 이 소설은 최초의 영국 소설이자 최초의 영국 통속소설이라는 타이틀을 두고 다른 작품과 경쟁을 하고 있을 정도로 영국 내에서도 높은 위상을 가진 소설이다. 이 소설은 모험심을 고취시키는 명작으로 유명해져 널리 읽히게 되었다.
소설은 크게 1부와 2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흔히 로빈슨 크루소의 이미지와 현대 출판된 대부분의 판본은 이 2부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그럼 로빈슨 크루소는 1부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올까? 바로 브라질에서 플렌테이션 경영에 성공 후 노예 무역을 하고 있었던 로빈슨 크루소의 모습이 나타난다... 그래서 현대에는 이 로빈슨 크루소라는 사람을 당시 유럽 문명을 대표하는 역할로 여긴다. 2부에서 그가 섬에 문명의 도구를 가지고 들어와 자연과 맞서고, 프라이데이(Friday)라는 하인을 부렸던 것을 이 시각에서 보면 무서울 정도로 서구 식민화를 이끌던 유럽인들의 모습과 겹쳐보인다... 로빈슨 크루소는 유럽적 자기 합리화를 통해 타자의 문화를 야만이라고 치부하며, 기독교적 서구 문명 사회를 만드려고 했다.
<로빈슨 크루소>가 발표되고 248년 뒤인 1967년, 프랑스 작가 미셸 투르니에(Michel Tournier, 1924~2016)는 소설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Vendredi ou les Limbes du Pacifique)>을 발표했다. 여기서 방드르디(vendredi)는 비너스의 날(diēs Veneris), 즉 금요일(Friday)라는 뜻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원작에서 로빈슨 크루소가 구해서 하인으로 삼은 그 프라이데이(Friday)가 주인공이다. 그런데 왜 주인공이 하인 방드르디(프라이데이)였을까? 작가 미셸 투르니에는 과거 서구적 가치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 사람이 살지 않는 섬에서는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야하며, 로빈슨 크루소의 서구적 인종 특성(백인, 서구인, 기독교인, 영국인) 때문에 그가 했던 말이나 했던 행동이 진리처럼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오리엔탈리즘과 탈식민주의에 대한 논점 차이를 재확인할 수 있다. 서구적 가치를 최우선적으로 묘사한 <로빈슨 크루소>의 사상은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에 의해 깨져가고 있는 것이다.
3-2. <제인 에어>와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
1847년, 영국 작가 샬럿 브론테(Charlotte Brontë, 1816~1855)는 자서전격 소설인 <제인 에어(Jane Eyre)>를 발표했다. 이 책은 독립적이고 주체적 자아를 형성해가는 제인 에어의 성장 과정을 그린 소설로, 젠더, 인종, 계급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자메이카 지역에서 식민지와 관련된 부를 획득한 버사 메이슨(Bertha Mason)과 못생겼지만 조금 돈 좀 있고 백인이었던 에드워드 페어팩스 로체스터(Edward Fairfax Rochester)가 결혼을 통해 버사 측의 부와 계급을 상습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를 통해 인종주의, 식민주의, 백인 중심주의 이데올로기를 피력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의 책이 발간되고 119년이 지난 1966년, 영국 작가 진 리스(Jean Rhys, 1890~1979)는 <제인 에어>의 2차 창작이자 평행 소설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Wide Sargasso Sea)>를 발표했다. 여기서는 <제인 에어>에서 다락방(독방)에 갇혀 지낸 정신병 걸린 미친 여자로 나왔었던 로체스터의 정부 버사 앙투아네타 메이슨(Bertha Antoinetta Mason)의 시점에서 쓰여졌다. 이 여자는 카리브해에 살던 부유한 크리올계 상속인이었으며, 젊었을 때부터 불행한 결혼을 했고, 결국 영국으로 이주하게 된다. 소설에서 그녀는 상상력이 풍부한 젊은 여성으로 나오며, 종교 시설에서 교육을 받았지만 상류층에게 무시받아왔다. 또 그녀는 로체스터의 기독교 인식으로 힘들어하며 신과 종교에 대해 전반적으로 냉소적인 견해를 가지게 되었다. 이 또한 기존의 식민주의자들이 독자적으로 자익을 우선했다는 비판을 한 책으로, 기존의 <로빈슨 크루소>와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의 관계와는 차이가 있지만, 이 책에서도 <제인 에어>에 대한 서양식 관점을 타파하려고 노력했다.
4. 서발턴 : 식민지의 피해자들
탈식민주의와 비판 이론에서, 서발턴(subaltern)이라는 용어는 제국과 제국 식민지의 권력 패권(hierarchy of power)으로부터 사회적, 정치적, 지리학적으로 배제된 식민지 인구를 뜻한다.
이탈리아의 철학자이자 정치이론가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 1891~1937)가 마르크스주의에서의 사회경제적 제도에서 특정인과 사회 집단을 배제하고 대체하는 문화적 패권을 식별하기 위해 처음 사용한 용어로, '역사는 승자의 기록'에 숨겨진 '승자에게 복종하는 무력한 피지배층'의 진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용어로 정착했다. 원래 그는 교도관의 눈을 피해 '프롤레타리아트(proletariat, 프롤레타리아)'라는 뜻으로 서발턴(subaltern)을 사용했으나, 이 용어가 탈식민주의에서 '억압받는 인종적 소수 집단'이라는 어투로 사용하게 되며 현재의 뜻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 서발턴(subaltern)이라는 말은 '하위'를 뜻하는 접두사 sub-[서브-]와 '번갈아 이어지는(alternate)'이라는 뜻의 라틴어 alternus[알테르누스]가 합쳐진 형태에서 유래했다. 즉 '권력 패권의 하위(sub)에서 번갈아 이어지는(altern)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용어가 어느곳에나 붙기 시작했다. 이에 1988년, 인도 출신의 문학 이론가 가야트리 스피박(Gayatri Spivak, 1942~)에 의해 출판된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Can the Subaltern Speak?)>에서는 식민화된 서발턴은 돌이킬 수 없이 이질적이라고 기술하며, 무비판적으로 서발턴을 서민과 동일하게 보는 것은 오류라고 주장했다.
자, 식민화된 서발턴이 왜 이상한지 소설의 예를 살펴보자.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에서 로빈슨 크루소가 표류한 지 28년만에 새로운 유럽의 배가 도착하는데, 이 때 아이러니하게도 로빈슨 크루소는 무인도에 남았지만, 흑인 하인 방드르디는 배를 타고 유럽으로 간다... 방드르디는 자신이 지배했던 그 국가에게로 돌아간 것이다. 꽤 이상하지 않은가? 이 책을 통해 세간에 큰 충격을 주었고, 민중, 민초, 서민, 혁명가 등 피지배계층을 포괄해서 사용하던 '서발턴'이라는 용어의 사용 범위을 확정시킨 결과를 낳았다.
이러한 개념이 없었거나 우리가 몰랐다면, 식민지 시대의 문건을 토대로 '식민지민은 교화시켜야하며 야만적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옳은 사실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식민주의의 긍정적이고 서구적인 입장만 초점을 맞추면 당연히 식민주의를 옹호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이를 몸소 알고 배웠다.
조센징은 야만스럽다
- 어쩌면 일제강점기의 한 일본인이 했을 지도 모르는 말
과연 일본인의 말처럼 조선인은 야만적이었나? 조선인이라는 이명을 가지고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한민족들은 야만적일까? 조선을 지배해서 전세계에 많은 영향력을 가지게 된 일본 제국의 입장에서 쓴 글들을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조선은 그렇지 않았다. 후기에 갈수록 상황이 안좋아지긴 했지만, 문자를 창제했고, 유교적 법치적 중앙집권체제 및 정교한 관료제로 국가가와 정치 운영의 틀을 잡았고, 기록 문화가 발달해 다양한 문헌을 남겼다. 과연 이런 긍정적인 업적을 남긴 조선이라는 국가는 야만적이었을까? 평가가 갈리겠지만, 그러나 현대 한민족은 조선사람들이 야만적이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야만인이 천문 관측 도구나 문자, 법전, 조세 제도를 만들었을 일이 없기 때문이다. 즉, 야만적이라고 주장하는 권력 패권의 그림자에 숨겨진 서발턴의 존재도 봐야지만 그 사회의 참모습을 알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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