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요가의 성지, 마트리만디르(Matrimandir)
본문 바로가기

어원과 표로 보는 역사 시리즈/어원과 표로 보는 세계사, 세계문화

종합 요가의 성지, 마트리만디르(Matrimandir)

728x90
인스타를 보던 중 신기한 건축물이 있어서 그와 관련된 내용을 찾아보고 글을 쓴다.

뷰포인트에서 바라본 맡트리만디르(출처 : auroville.org/)

1. 마트리만디르는 무슨 뜻이야?

유럽계 언어를 좀 배웠다고 하는 사람이라면 matri[마트리]가 어떤 뜻인지 쉽게 알아차렸을 것이다. 이 단어는 산스크리트어로 '어머니(mother)'이라는 뜻이다. 그럼 mandir[만디르]는 뭘까? 바로 산스크리트어와 힌두어로 '(힌두교) 신전'을 말한다. 즉 마트리만디르는 '어머니의 신전'이라는 뜻이다.

 

영국령 인도의 벵골 지방에서 태어난 요가 구루(요가 스승)이자 철학자였던 스리 아우로빈도(श्री अरविन्द, 1872~1950)가 세운 인도 동부 퐁디셰리에 위치한 아슈람(आश्रम, 종교적 공동체)인 스리 아우로빈도 아슈람(श्री अरविंद आश्रम)에서 어머니(The Mother)라고 불리는 미라(শ্রীমা, 1878~1973)가 세운 종합 요가(Integral yoga) 수행자들의 성지이다.

 

2. 스리 아우로빈도는 어떤 사람이야?

아들들이 영국령 인도에서의 공무를 담당하던 고위급 제국 공무원인 인도 공무원(Indian Civil Service, ICS)으로 키우고 싶었던 아버지의 바램으로 스리 아우로빈도와 그의 형제들은 영국에 가서 한 목사에 의해 라틴어, 프랑스어, 지리, 산수 등을 배웠으며, 그를 가르친 목사에 의해 기독교 가치관과 문화에 노출되었다. 그러나 그는 기독교의 가르침에 지루함을 느끼게 된다.

 

스리 아우로빈도는 이러한 상황과 별개로 공부를 열심히 하여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킹스 칼리지에 입학하게 된다. 2년간의 수학 과정을 거치고 그는 곧 인도로 돌아와 공무원과 교수가 된다. 공무와 교육에 몸을 바치던 중 그는 인도의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스리 아우로빈도의 1900년대 사진

점차 그는 자신의 정치적 힘을 이용해 독립 운동 세력을 넓혀 갔고 그로 인해 영국 식민지 비밀 경찰의 감시를 받게 되었다. 그러던 중 사건이 일어난다.

 

1908년 4월, 당시 치안판사직을 맡고 있던 킹스포드(Kingsford)에 대한 폭탄 테러 미수 사건을 일으킨 스리 아우로빈도는 그의 동생 바린드라 쿠마르 고시(बारीन्द्र कुमार घोष, 1880~1959)는 영국군에 붙잡혀 교도소에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그는 여러 영적인 경험을 통한 깨달음을 얻게 되는데, 이를 계기로 그는 무력 독립 투쟁을 그만두고 1910년, 출소 후 당시 프랑스 식민지였던 인도 동부의 퐁디셰리로 도망갔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서 4년간 은둔하여 요가에 집중했다.

 

1914년부터 요가 전파, 종교 서적 출판 등으로 영향력을 키워나가던 스리 아우로빈도는 그의 제자들을 늘려갔다. 그렇게 늘어난 제자들과 1926년, 그를 중심으로한 종교 공동체 스리 아우로빈도 아슈람(श्री अरविंद आश्रम)을 설립했다.

 

종교 공동체 혹은 신흥 종교를 창시한 뒤에도 그는 계속 요가 수련에 힘쓰고, 종교 서적을 편찬했다. 그리고 그는 인도 독립을 보고 1950년 사망하게 된다.

 

한마디로 스리 아우로빈도는 엘리트 교육을 받고 인도 독립을 지원한 요가 관련 신흥 종교 창시자이다.

 

3. 미라는 어떤 사람이야? 

1902년에 찍은 미라와 그의 아들 사진

1914년, 프랑스 파리 출신의 미라 알파사(Mirra Alfassa, 1878~1973)는 그의 남편 폴 리차드(Paul Richard)와 그의 프랑스령 퐁디셰리의 상원 의원 자리를 얻기 위해 퐁디셰리로 가서 처음으로 스리 아우로빈도를 마주했다. 그녀의 주장에 따르면 스리 아우로빈도를 처음 만났을 때 꿈에서 만난 현자였다는 것을 단숨에 알아봤다고 한다.

 

폴 리차드가 선거에서 패배하자 그는 그의 부인 미라 알파사와 함께 스리 아우로빈도의 명상 기록과 철학을 담은 <아리아(Arya)>라는 잡지를 출판했다. 이렇게 마리와 스리 아우로빈도는 서서히 가까워졌다.

 

여러 일들이 있었지만 1921년쯤, 폴 리차드와 미라 알파사는 이혼했다. 폴 리차드는 프랑스로 돌아가 다른 여자와 재혼했으며, 미라 알파사는 스리 아우로빈도의 집에서 그와 그의 제자들과 같이 지냈다. 그때부터 스리 아우로빈도는 그녀를 '마더'라는 존칭으로 부르며, 요가 종교 공동체의 대표격의 지위를 가지게 되었다.

 

1926년, 종교 공동체 스리 아우로빈도 아슈람(श्री अरविंद आश्रम)이 설립됐다. 그러나 스리 아우로빈도는 이 공동체를 설립하고 나선 자신의 요가 수양에 더 집중했다. 그렇다. 공동체를 이끌어 갈 지도자의 자리에 아무도 없다는 말이다. 둘 사이의 약간의 마찰이 있었으나 1930년부터 스리 아우로빈도가 마더가 스리 아우로빈도 아슈람을 이끄는 것을 인정하면서 지도자 문제는 끝났다.

 

1950년, 스리 아우로빈도가 사망하면서 마더는 아슈람의 모든 업무를 맡기로 결심함과 동시에 내부적으로는 요가를 계속하기로 결정했지만 1959년부터는 모든 외부 업무를 다른 믿을만한 제자에게 맡기고 요가 수련에 힘썼다.

 

그러다가 1964년, 마더는 어떤 나라도 자신의 소유지로 주장할 수 없는 땅이자, 차별 없이 모든 인류를 위한 장소를 위한 프랑스어로 '새벽의 도시'라는 뜻의 오로빌(Auroville)을 설립하기로 결정했다. 마을의 건설은 순조로웠고, 마을 중앙에는 맡트리만디르가 있었다. 마을이 완성된 뒤, 그녀는 1973년 사망했다.

 

3. 그럼 정확히 마트리만디르는 어떤 곳이야?

사실 이 글의 목적은 스리 아우로빈도 아슈람이라는 종교단체가 아니라 이 독특하게 생긴 구조물 마트리만디르에 있다.

마트리만디르와 그 인근을 하늘에서 내려다 본 풍경 (출처 : sahyogmantratours.com)

1971년 착공, 2008년 완공된 마트리만디르는 12개의 꽃잎방과 12개의 정원에 둘러쌓인 거대한 황금판으로 덮인 지오데식 돔(geodesic dome)의 형태를 지니고 있다. 돔에 덮여있는 황금판은 햇빛을 반사해 구조물이 독특한 빛으로 빛나게 된다.

돔 내부의 중앙 상부에 위치한 '내실'이라고 부르는 명상관(출처 : za.pinterest.com)

특히 이 건축물의 내부에는 '내실' 혹은 '천주(千柱)의 집, 천개의 기둥이 있는 집(Thousand- Pillared Home)'라고 알려진 명상관이 있다. 이곳에서 많은 요가 수행자들이 수행을 한다. 이 내실 중앙에 위치한 큰 광학적 유리 구체를 향한 체 말이다.

마트리만디르 건축 현장 (출처 : auroville.com/)

마트리만디르의 내실을 지탱하는 4개의 주요 상징적인 기둥도 설치되어 있지만 실제로 그 기둥들을 볼 순 없다.

이 4개의 기둥은 동서남북 방향에 하나씩 설치되었으며, 각각의 기둥은 오로빌의 창립자인 마더의 4가지 측면을 상징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가 각각의 기둥에는 힌두교의 여신의 이름이 붙어 있다. 이 종교와 그 상징에 대해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기에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마트리만디르를 보고 있는 사람들 (출처 : auroville.com/)

앞서 말했듯 이곳은 명상과 요가를 하는 곳이다. 그러니 만일 마트리만디르를 방문한 여행객이라면, 조용히 돌아봐야 한다.

이 장소는 입구의 방문자 센터에서 간단한 교육을 받고 무료로 패스를 받은 후 둘러볼 수 있다.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신기하고 신성한 분위기를 풍기는 명상 장소 마트리만디르. 그렇다고 막 가보고 싶진 않다. 역시 종교의 나라 답게 인도에는 다양한 영적 건축물이 많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