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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독립운동사적비울산 울주군 언양읍 서부리 73

울산 울주군 언양읍의 남천교 사거리의 서북쪽에 3.1독립운동사적비가 있습니다. 원래는 작천정 인내천 바위 부근에 있었는데, 2014년에 3.1만세운동이 일어난 언양장터로


'3.1독립운동사적비'라고 쓰인 사적비가 눈에 띕니다.
| 3.1 독립운동 사적비 | |
| 관리번호 | 41-1-1 |
| 관리자 | 울주청년회의소 |
| 소재지 |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서부리 73번지 |
| 삼일정신은 대화합의 정신, 민족자주의 정신, 애국애족의 정신, 광명정대한 정신 및 인류 공영의 사상 등입니다. 이곳 울산은 3곳(언양, 병영, 남창)에서 독립만세 함성이 터졌는데 그 중 제일 먼저 일어난 곳이 언양지역입니다. 이곳 사적비의 비문 일부를 옮겨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기미년 2월에 당시 천도교울산교구장이였던 김교경(金敎慶, 1871-1933) 선생은 고종 인산(因山, 황족과 왕족의 장례)에 참례키 위해 서울에 머물면서 천도교의 비밀지하신문인 <조선독립신문(1919.03.01.-?)>과 <국민회보(?-?)>를 등사하여 울산교구로 보내었으며 3월에는 상경한 이규장(李圭章, 1892-1940) 교인에게 등사한 독립선언서를 전해주며 거사준비를 서둘라고 당부함에 천도교교인인 최해규(1882-1958), 이규장, 이규로, 이규천(李圭千, 1876-1962), 곽해진(郭海鎭, 1888-1939), 유철순(兪哲淳, 1885-1968) 씨 등은 유림대표 이무종(李武鐘, 1893-1956) 씨와 협의하여 중진회의를 열고 거사할 것을 결의하였다. 기미년(1919년) 4월 2일 언양 장날을 기하여 옛 언양현에 속했던, 언양, 상북, 삼남, 두동, 두서의 5개면에서 모여든 군중들은 이무종, 이규장, 김성진, 강경찬, 황선운, 이규인* 씨 등 지사들의 주도에 의해 거사함에 수천 명의 군중들은 만세를 부르며 항일운동을 벌였다. (...) 이로 인하여 일본경찰의 무자비한 총칼에 많은 애국자가 순직하거나 체포 투옥되는 희생을 치렀다. 온갖 박해에 시달리다가 님들은 이제 구천에 머무나니 그 한많은 사연을 어찌 필설(筆舌, 글과 말)로 다하리오!' 이와 같이 사적비 비문을 보면서, 위대한 조상들의 업적을 잊지 말아야겠으며, 애국 애족 정신을 길이 기리고 후대로 하여금 귀감을 삼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이 사적비는 1996년 언양삼일독립운동유족회, 천도교언양교구 및 울주JC, 울산JC, 북부산JC, 신안JC(전남)와의 합동사업을 통해 언양 작천정 인내천 바위 아래 도로변에 조성되었다가 처음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던 언양시장터 부근인 이곳으로 2014년 이전하였으며, 해마다 선열들의 얼을 기리기 위해 3.1절 기념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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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념비 안내판 '이규우'라고 쓰여 있으나, 실제 사적비 원문에는 이규인(李圭寅)이라고 쓰여 있어 수정 | |

그 옆에는 3.1독립운동사적비 비문이 세워져 있습니다.
| 3.1독립운동사적비 |
| 우리 민족사에 영원히 빛날 기미년 3.1독립운동이 우리 고장에서도 구국과 애향의 깃발 아래 떨쳐 일어났음에 우리는 그 선열들의 우국충정(憂國衷情)을 잊지 못하고 그 분들을 경모(敬慕)하고 추념하는 뜻에서 여기 돌 하나에 그 사록(史錄)을 밝히나니 저 한말(韓末)의 민족종교인 동학이 의암 손병희(孫秉熙, 1861-1922) 선생에 의해 천도교로 개면되고 다시 흥기(興起)하게 됨에 이 고장 상북면(上北面) 거리(巨里)에 천도교 울산교구가 창립되어 날로 번창하였는데, 기미년(1919년) 2월에 당시 천도교 울산교구장이였던 김교경(金敎慶, 1871-1933) 선생은 고종 임금의 인산(因山, 황족과 왕족의 장례)에 참례키 위해 서울에 머물면서 천도교의 비밀지하신문인 <조선독립신문(1919.03.01.-?)>과 <국민회보(?-?)>를 등사하여 울산교구로 보내었으며 3월에는 상경한 이규장(李圭章, 1892-1940) 교인에게 필사한 독립선언서를 전해주며 거사 준비를 서둘라고 당부함에 천도교교인인 최해규(崔海圭, 1882-1958), 이규장(李圭章, ?-?), 이규로(李圭璐, ?-?), 이규천(李圭千, 1876-1962), 곽해진(郭海鎭, 1888-1939), 유철순(兪哲淳, 1885-1968) 씨 등은 유림대표 이무종(李武鐘, 1893-1956) 씨와 협의하여 중진회의를 열고 거사할 것을 결의하였다. 기미년(1919년) 4월 2일 언양 장날을 기하여 옛 언양현에 속했던, 언양, 상북, 삼남, 두동, 두서의 5개면에서 모여든 군중들은 이무종, 이규장, 김성진(金聲振, ?-?), 강경찬(姜康贊, ?-?), 황선운(黃善運, ?-?), 이규인(李圭寅, ?-?) 씨 등 지사들의 주도에 의해 거사함에 수천 명의 군중들은 만세를 부르며 항일운동을 벌였다. 한편 전울산 교구장인 최해규 선생과 최해선(崔海璿, ?-?), 곽해진, 유철순 씨 등은 일경(日警, 일본 경찰)에 의해 예비검거 되었다. 일경들은 시위 군중을 총검으로 진압하였으며 저들이 성벽 위에서 쏜 총탄에 의해 한 분이 사망하고 네 분이 총상을 입었으며 수백 명이 검거되었으니 형고(刑苦)를 겪은 이가 27명이었으며, 또한 의거를 주도한 지사들은 국내외로 피신의 길을 떠났다. 온갖 박해에 시달리다 가신 임들은 이제 구천에 머무나니 그 한많은 사연을 어찌 필설(筆舌, 글과 말)로 다하리오! 이제 이 고장의 후손들은 가신 임들의 영령 앞에 옷깋을 여미어 명복을 빌며 후손들에게 애국애향의 뜻을 되새기기 위해 이곳 산자수명(山紫水明)한 간월산(肝月山) 계곡 작천정(酌川亭) 입구에 작은 사적비를 세웁니다. |
| 1992년 10월 3일 문학박사 강인수(姜仁秀) 지음 계림(雞林) 김정덕(金正德) 씀 |

이 사적비의 뒷면에는 옥고자(獄苦者, 옥살이를 한 자) 27명, 부상자 4명, 학생주동자 10명, 성금 75명의 명단이 한자로 쓰여 있습니다.


사적비 정면 기준 왼편에는 사적비와 관련된 기념행사와 이전 내용이 쓰여 있으며, 오른편에는 3.1독립사적비 건립위원회 인원 명단이 새겨져 있습니다.
| 자주 독립의 기백, 이곳에서 발원하다 |
| 언양! 이 땅은 우리 선열들이 울산에서 처으므로 3.1독립만세운동의 피맺힌 함성이 울려 퍼진 역사의 현장입니다. 1919년 4월 2일 언양장터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은 남창과 병영 등 울산 곳곳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후손들이 그 넋을 기리고자 1992년 작천정에 사적비를 세우고 2003년부터 해마다 울주군에서 울주청년회의소와 천도교 울산시교구 및 언양교구가 함께 3.1절 기념행사를 열어 왔습니다. 본 사적비는 작수천 명소화 사업에 편입되어 첫 만세의 함성이 울려 퍼진의미있는 이 자리에 옮겨 세워 애국선열의 숭고한 뜻을 되새기고자 합니다. |
| 2014년 3월 1일 울산광역시 울주군·울주청년회의소 |

가장 오른편에는 독립기념관에 보관되어 있는 <기미독립선언서(1919)>를 그대로 옮겨 새긴 비석도 세워져 있습니다.
언양 3.1독립운동사적비는 단순한 기념비를 넘어, 나라의 자주독립을 위해 희생한 선열들의 숭고한 정신과 언양 지역 항일운동의 역사를 오늘날까지 기억하게 해주는 뜻깊은 역사 교육의 현장으로 지금까지 기념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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