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부산 가야사 아카이브를 세우다! 복천박물관
본문 바로가기

어원과 표로 보는 역사 시리즈/어원과 표로 보는 한국사, 한국문화

[부산] 부산 가야사 아카이브를 세우다! 복천박물관

728x90

1. 복천박물관

1969년부터 1974년까지 진행된 복천동 고분군 긴급조사를 한 뒤 그곳에서 출토된 유물들과 다양한 연구 자료를 모은 부산 지역 가야사 아카이브를 만들 필요성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되었고 그렇게 1982년부터 1992년까지 부지 매입과 지장물 보상을 거친 뒤, 1996년 10월 5일에 개관한 복천박물관(1996.10.05.-)입니다.

 

[부산] 가야부터 신라까지 묻힌 부산 유력자들이 묻힌 부산 최대의 무덤군, 복천동 고분군

복천박물관에서 동남쪽 다리를 향해서 갑니다. 다리 앞에는 1909년에 동래 지역에서 일본에 저항하기 위해 호적대장을 모아 불태우고 쌓은 영보단이 있던 곳을 표시한 영보단비도 볼 수 있습니

mspproject2023.tistory.com

박물관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에는 복천동 고분군에서 발굴된 가야 유물 중 칠두령을 테마로 한 칠두령쉼터도 있습니다.

 

1-1. 복천박물관 제1전시실

처음에는 선사시대의 무덤부터 시작해 삼국시대의 무덤까지를 보여주고, 부산 지역의 여러 고분군을 소개하며 복천동 고분군의 주요 고분들을 소개합니다.

신석기시대 무덤은 간단히 땅을 파고 주검을 묻은 움무덤과 항아리를 사용하여 유아용으로 만든 독널무덤을 비롯하여 사는 공간을 무덤으로 이용한 동굴 유적이 알려져 있습니다. 움무덤은 부산 강서구의 범방동 패총, 경상남도 통영시의 연대도 패총, 욕지도 패총과 산등 패총, 전라남도 여수시의 안도 패총에서 발견되었고, 독무덤은 부산 영도구의 동삼동 패총과 경상남도 진주시의 상촌리 유적에서 확인되었습니다. 또 40여 구의 주검을 집단적으로 묻은 후 많은 양의 돌도끼를 껴묻은 경상북도의 울진 후포리 유적도 유명하죠. 이러한 신석기시대의 무덤에서는 빗살무늬토기, 석기, 뼈도구 그리고 장신구 등이 출토됩니다.

 

[부산] 신석기시대 부산 지역의 생활상과 일본과의 교류의 흔적, 부산 동삼동 패총

부산 영도구에 위치한 동삼동 패총입니다. 신석시 시대에 사람이 버린 각종 생활쓰레기와 조개껍데기가 쌓여 무지(무더기로 쌓여 있는 더미)를 이룬 것으로, 우리나라 남해안 지역 신석기 문화

mspproject2023.tistory.com

청동기시대에는 농경문화가 발달하고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이전의 신석기시대에 비해 더욱 다양한 무덤의 형태가 나타납니다. 한반도의 청동기 문화를 대표하는 무덤은 고인돌(지석묘)인데, 한반도 전역에 걸쳐 수 만기가 분포하고 있죠. 이 고인돌은 구조에 따라 탁자식(북방식), 바둑판식(남방식), 뚜껑식(개석식), 위석식 등 다양한 형태로 구분됩니다. 고인돌 외에도 지역에 따라 돌널무덤(땅을 파고 돌판이나 깬돌로 상자 같은 널을 짠 무덤 형식), 돌덧널무덤, 움무덤, 독널무덤(땅을 파고 항아리 등을 사용한 무덤 형식) 등도 축조됩니다. 이 시대 무덤에는 무덤에 묻힌 사람의 신분과 사회 역할을 보여주는 다양한 종류의 유물이 부장 되는데, 대표적인 것으로 붉은간토기, 청동칼, 돌칼, 돌화살촉, 옥 장신구 등이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 삼한 전기로 들어오면서 한반도 중남부지방에는 오늘날 무덤 형태와 유사한 널무덤이 널리 쓰이게 됩니다(기원전 2세기-기원후 2세기). 다만, 지역에 따라 독널무덤과 움무덤이 만들어지기도 했죠. 이 당시의 널무덤은 보통 2-4m 정도의 구덩이를 파고, 널(관)을 안치한 후 널과 구덩이 사이를 깬 돌 등이 섞인 흙으로 채운 형태였습니다. 이때 널 안에는 주로 피장자가 평상시에 사용한 구슬, 청동거울, 부채, 칠기, 토기 등을 함께 부장 했으며, 관 위나 충전토 사이에는 토기를 비롯한 각종 철제무기, 농공구 등을 함께 묻었습니다. 이 시기의 주요 유적으로는 창원 다호리 고분군, 김해 대성동 고분군, 김해 양동리 고분군, 경주 조양동 유적, 경주 사라리 고분군, 대구 임당동 고분군, 광주 신창동 유적 등이 있습니다.

부산 복천동 고분군의 덧널무덤과 창원 다호리 고분군의 널무덤을 축소한 모형을 통해 당시의 덧널무덤과 널무덤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죠.

2세기 후반대로 접어들며 삼한 지역은 덧널무덤 축조, 신식와질토기 사용, 철제무기 대량 생산을 특징으로 하는 삼한 후기 문화가 시작됩니다. 덧널무덤은 나무판이나 통나무로 덧널을 만들고 그 안에 주검을 안치하기 위한 널을 만든 구조이죠. 관이 놓이는 곳에 덩이쇠, 쇠창 등을 한 벌 깔아 무덤대를 만들기도 했다고 합니다. 피장자 주변에는 장신구, 무기류와 같은 귀중품이나 몸에 지녔던 물품을 함께 넣으며 발치나 머리 쪽에는 많은 양의 토기류와 철기류가 부장 되어 있죠. 이렇게 부장유물이 많이 묻힌 대형 무덤이 유행하게 되었는데, 이는 피장자의 재산과 높은 권력을 과시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고대국가 성립의 과도기적 양상을 보여주며, 이후 거대 왕릉의 등장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4세기 이후 경주를 중심으로 성장한 신라의 수도 경주 지역에서는 돌무지덧널무덤이 유행했습니다. 지하나 지상에 덧널을 두고 내부에 널과 부장품을 넣은 뒤, 덧널 위에 깬돌을 쌓고, 그 위에 흙을 두텁게 쌓아 봉토를 만든 형태이죠. 이렇게 만든 무덤 안에는 금관을 비롯한 화려한 금제 장신구, 은제 장신구, 용기류, 유리제품과 여러 토기, 철기, 칠기 등도 함께 묻었습니다. 이 신라 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는 대릉원의 금관총, 금령총, 서봉총, 식리총, 천마총, 황남대총 등이 있습니다.

지역에 따라 구조와 형식에 차이가 있는 가야의 무덤은 4세기에는 덧널무덤이 5세기 이후에는 돌덧널무더이 유행하다가 6세기에 들어서는 무덤에 입구를 만든 돌방무덤으로 변화합니다. 특히 덧널무덤은 삼한 후기에 비해 규모가 커지면서 유물만을 부장 하기 위한 별도의 딸린덧널을 만들기도 했구요. 부장품으로는 철제 갑옷, 마구 등의 무기류와 각종 토기류가 있습니다. 또 지배층의 무덤에서는 순장의 흔적도 확인되었죠.

백제 초기(한성백제) 무덤은 고구려의 영향으로 돌무지무덤이 유행했는데, 웅진백제 시대에는 굴식돌방무덤으로 통일됩니다. 이 웅진백제 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이 바로 무령왕릉인데, 무령왕릉은 벽돌무덤으로 호화로운 각종 금속제 유물과 중국도자기, 청동거울 등이 출토되어 당시 백제가 중국 남조와 활발히 교류했음을 보여줍니다. 이후 사비백제 시대에는 불교의 번성으로 화장묘가 유행하였다고 하네요. 한편 영산강 유역 일대에는 길이 3m 이상의 대형 독널무덤을 짓는 등 이 지역 특유의 무덤형태가 발달한 사실도 잘 보여줍니다.

고구려의 돌무지무덤은 초기에는 바닥에 냇돌이나 깬돌을 깔고 널을 놓은 후 다시 돌을 둥근 모양으로 덮은 간단한 구조였지만 점차 네모난 돌을 계단모양으로 쌓아 올려 무덤방을 만드는 돌방무덤으로 발전헀습니다. 이런 형태의 무덤은 장군총, 태왕릉, 천추총 등이 유명하며, 특히 돌방무덤 내부의 벽과 천장에 당시의 모습과 사상을 잘 보여주는 벽화가 그려져 있기도 합니다.

부산 지역의 고분은 주로 수영강 수계를 중심으로 한 회동천과 온천천 주변의 동래분지에 집중 분포하는 형태를 보여줍니다. 그 외에도 사하구 괴정동, 부산진구 당감동, 강서구 녹산동 일대와 같이 여러 지역에서 소규모 분묘가 위치하기도 하죠.

고대 동래 지역은 철을 매개로 활발한 대외 교역과 막강한 군사력을 구비한 세력으로 성장했는데요. 4세기 전반에 동래 복천동 고분군에서는 무덤의 규모가 커지고 그에 따라 유물이 다량으로 부장된 대형분이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5세기 무렵에 절정을 이룹니다. 이때 문화적으로 신라와 금관가야의 두 지역의 문화를 흡수하면서도 이 지역 나름의 독자적인 색채를 띠게 되었죠. 그러나 5세기 중반 이후, 신라의 영향권이 영남지역 전체로 확대되면서 부산 지역은 신라 문화에 흡수되는 형태를 띄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을 잘 보여주는 부산의 다섯 곳의 고분의 흔적을 소개합니다.

복천동 고분군의 동편 계곡부에 위치하고 4세기 덧널무덤이 중심이며 일본 야요이식 토기 조각이 출토된 삼한 전기의 집자리 위에 축조된 것으로 파악된 소규모 고분군인 내성 유적과 낙동강 하구에  인접한 강서구 구랑동에 위치하고 가야 연맹의 다른 가야에서 유래된 외래계 토기와 철제 낚싯바늘 등이 출토된 5세기 후반부터 6세기에 이르는고분군인 구랑동 고분군에서 발굴된 유물들도 볼 수 있구요.

 

[부산] 일본 야요이식 토기 조각이 발굴된 동래 복천동의 내성 유적

부산 동래구 복천동 72번지 일대 중 현재 내성초등학교 뒷마당을 중심으로 복천동 내성유적이 있습니다.이곳은 복천동 고분군이 조성되어 있는 구릉의 동남 사면 아래쪽에 위치하는데, 복천동

mspproject2023.tistory.com

금정구 회동저수지의 북편의 나지막한 구릉 위에 군집을 이루고 있는 5세기 후반부터 6세기 전반대의 소형 구덩식돌덧널무덤이 중심이며 7세기대의 앞트기식돌방무덤도 확인되고 신라양식토기가 많이 부장된 오륜대 고분군, 수영강에 인접한 구릉 지대에 위치하며 5세기 후반부터 6세기 전반으로 다양한 무덤이 분포한 반여동 고분군에서 출토된 유물들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5세기 후반부터 6세기 초반까지 온천천 남쪽 배산 북쪽 구릉에 형성되고 고분군 경계부분 평탄지에서 장례공간가지 확인된 연산동 고분군에서 출토된 다양한 토기들도 볼 수 있습니다.

 

삼국 시대 부산의 대표적인 고분군, 연산동 고분군

연동시장 쪽에서 쭉 올라가다 안내판에 따라 좌측으로 꺾어서 더 올라가면, 이런 안내문이 나온다.사적 제 539호 부산 연산동 고분군은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전반에 걸쳐 조성된 것으로, 삼국 시

mspproject2023.tistory.com

가운데에선 5세기 후반에서 7세기 초까지 지어진 삼국시대 고분군으로 대표되는 기장 청강리 유적에서 출토된 다양한 유물도 볼 수 있습니다.

복천동 고분군은 널무덤->덧널무덤->딸린덧널무덤->딸린돌덧널무덤->구덩식돌덧널무덤->앞트기식돌발무덤 순으로 변화하며 다양한 형태의 무덤군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 복천동 고분군의 전경 모형과 함께 이곳에서 언제 어떤 발굴이 있었고, 그로 인해 알게된 고대사의 흔적에 대해서 사진과 함께 쭉 읽어볼 수 있습니다.

복천동 고분군 38호분은 고분의 남쪽구릉에 위치하는 부곽이 있는 대형 덧널무덤으로, 이 고분군에서 묘광의 길이가 가장 길다고 합니다. 이곳은 복천동 고분군 최초의 딸린덧널무덤이면서 영남 지역에서 최초로 바닥시설을 갖추고 순장의 흔적이 확인된 무덤이라는 의의를 가진다고 합니다. 출토된 유물을 토대로 이 무덤은 과거의 요소가 사라지고 새로운 요소들이 등장하는 전환기에 만들어진 무덤임을 알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 다음 복천동 고분군 21호분과 22호분의 모습입니다. 두 무덤 모두 복천동 고분군 구릉의 남쪽 정상부에 위치하는 딸린덧널이 있는 돌덧널무덤으로 고분군 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으면서 규모나 부장품의 양이 다른 분묘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고 합니다. 20매의 대형 덩이쇠, 3점의 고리자루큰칼(환두대도), 부산 복천동 22호분 출토 청동칠두령, 다양한 무기류, 장신구류, 토기류, 농공구류와 같은 출토 유물을 토대로 5세기 전반 무렵 동래를 중심으로 한 지역 최고 지배자의 무덤으로 여겨진다고 하네요.

마지막으로 가야 연맹의 대략적인 분포도와 핵심 현재 도시를 표시한 지도를 볼 수 있습니다.

그 다음으로 김해와 부산으로 대표되는 금관가야, 함안으로 대표되는 아라가야, 고령으로 대표되는 대가야,

고성으로 대표되는 소가야, 창녕으로 대표되는 비화가야, 성주로 대표되는 성산가야에 대한 이야기를 살짝 읽어볼 수 있습니다.

 

1-2. 복천박물관 제2전시실

이제 복천동 고분군의 문화에 대해 더욱 깊이 살펴보게 됩니다.

 

[부산] 가야부터 신라까지 묻힌 부산 유력자들이 묻힌 부산 최대의 무덤군, 복천동 고분군

복천박물관에서 동남쪽 다리를 향해서 갑니다. 다리 앞에는 1909년에 동래 지역에서 일본에 저항하기 위해 호적대장을 모아 불태우고 쌓은 영보단이 있던 곳을 표시한 영보단비도 볼 수 있습니

mspproject2023.tistory.com

우선, 복천동 고분군에 묻혀 있던 항아리, 그릇받침, 잔과 접시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 다음 특이한 모양의 토기와 외래계 토기도 살펴볼 수 있죠. 삼국시대에서 특이한 모양의 토기는 신라와 가야 지역에서 주로 만들어졌는데, 의례용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이 복천동 고분군에서는 신선로 모양 토기, 등잔 모양 토기, 작은 독, 복숭아 모양 토기, 말모양 뿔잔, 신발 모양 토기, 오리 모양 토기 등이 출토되었죠.

그 외에도 타 지역의 집단이나 국가와의 활발한 대외교류관계를 잘 보여주는 외래계 토기도 복천동 고분군에서 다수 출토되었습니다. 이곳에는 한반도 내 함안 아라가야계 토기, 창녕 비화가야계 토기뿐 아니라 하지키(土師器, 일본 야요이 시대부터 헤이안 시대까지 만들어진 적갈색 연질토기)와 같은 일본계 토기, 남북조시대 청자잔 등이 발굴되었죠.

그중 함안 아라가야계 토기, 창녕 비화가야계 토기, 일본계 토기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복천동 고분군 11호분의 찰갑과 35호분의 마갑을 착용한 모습으로 복원한 가야 시대 중장기병 모형입니다.

복천동 고분군에서는 큰칼, 검, 창, 화살촉과 같은 무기류도 발굴되었습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유물은 삼루, 삼엽, 소환두대도 등 손잡이 장식이 두드러진 고리자루칼(환두대도)입니다. 손잡이 끝이 3개의 작은 고리가  연결된 형태의 삼루환두대도는 대체로 신라 왕릉급 무덤에서, 둥근 고리 안에 세 갈래의 잎 모양 장식이 있는 삼엽환두대도와 고리만 있는 소환두대도는 가야지역 대형 무덤에서 출토되었다고 하네요. 이곳에선 삼지창, 쇠낫, 화살촉, 화살통, 쇠창, 물미, 고리자루칼(환두대도)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복천동 고분군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농공구(농기구와 공구류)가 발굴되었는데요. 이곳에선 송곳, 집게, 손칼, 보습, 쇠스랑, 쇠낫, 숫돌, 덩이쇠 등이 발굴되었습니다.

그 중 덩이쇠는 철기 생산과정의 중간단계에서 만들어지는 제품으로 특히 4-6세기 부산 지역과 김해 지역의 대형 고분에서 많이 출토되어 가야에서 철이 대량생산되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로 쓰입니다. 당시 중요한 재원 중 하나였던 철로 만든 덩이쇠를 무덤에 묻을 때 끈으로 엮어 관의 바닥에 깔았는데, 이를 통해 묻힌 사람의 부와 권력이 대단했음을 유추할 수 있죠. 복천동 고분군에서는 이 덩이쇠가 4세기 중엽부터 5세기까지 부장품으로 유행하다가 6세기 초가 되면서 사라졌습니다.

복천동 고분군에서는 굽은 칼, 넙적한 창, 통형동기(원통형의 청동기 내에 구슬이나 금속봉을 집어 넣어 소리를 내는 물건), 미늘쇠, 가지방울(주령)과 같은 주술적이고 상징적인 성격과 기능을 띄는 의기성 유물도 출토되었습니다.

부산 복천동 22호분에서 발굴된 5세기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청동 칠두령(bronze pole top with seven bells)입니다. 실용성보다는 주술적이거나 상징적인 성격을 띤 유물로 여겨지죠.

복천동 고분군에서 출토된 투구, 목가리개, 팔뚝가리개, 허리가리개

복천동 고분군에서는 전사의 머리와 몸을 보호하는 방어구들도 발굴되었는데요.

투구는 북방계 갑주문화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삼국시대의 대표적인 투구인 종장판투구(몽고발형주)만 출토되었습니다. 이는 대체로 사다리꼴모양의 긴 철판 14-45매 가량을 가죽으로 엮어 만든 형태인데, 꼭대기에는 반구형 복발을 얹고, 아래쪽에는 볼과 목뒤를 보호하는 볼가리개와 수미부 가리개를 연결하고 있습니다. 5세기로 갈수록 철판폭이 좁고 수량이 많아져 이전보다는 더욱 촘촘하고 부드럽게 얼굴 방어를 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또 전사의 목을 보호하기 위한 목가리개는 역사다리꼴 모양의 철판 수십 매를 가죽끈이나 못을 이용하여 부채꼴 모양으로 연결한 다음 목에 착용했다고 하네요.

복천동 고분군에서 출토된 재갈, 발걸이, 말안장, 말방울, 말띠꾸미개, 말띠드리개, 말머리가리개

복천동 고분군의 말갖춤새(말을 안정적으로 타고 제어하거나 장식하고 보호하기 위해 말에 부착한 각종 부속구)를 통해 삼국시대에 유행했던 기승문화(말타기문화)의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복천동 고분군에서는 4세기대부터 대형무덤을 중심으로 말갖춤새의 모든 종류가 출토되었는데, 4세기대에는 실용적인 철제품이, 신라의 영향을 깊이 받기 시작한 5세기 중엽부터는 장식적인 금동제품이 상대적으로 증가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가야의 장신구에는 관, 귀걸이, 목걸이, 팔찌, 굽은 옥 등이 있는데, 금제품보다는 금동제나 은제, 유리제가 많으며, 수정이나 마노, 호박, 비취와 같은 보석류도 재료로 이용되었습니다. 대략 4세기대까지는 유리나 옥으로 만든 구슬류가 중심이고, 5세기 후반대부터는 금, 은, 금동과 같은 귀금속 계통의 장신구가 만들어지게 됩니다.

복천동 고분군에서 출토된 금동관 3점

복천동 고분군에서는 모두 3점의 금동관이 출토되었는데, 1호 무덤의 출자형 관식 2점과 11호 무덤의 수지형 관식 1점이 출토되었습니다. 이 중 수지형 관식은 한강 이남 지역 출토품 중 가장 이른 시기의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그 외 이곳에서 가장 많이 출토된 장신구는 남색유리옥으로 만든 목걸이이며, 금이나 금동으로 만든 귀걸이는 대부분 달개 없이 작은 고리만 있는 간단한 형식이라고 합니다.

모든 전시가 끝나면 삼국시대의 옷과 장식을 써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존도 볼 수 있죠.

그렇게 관람이 끝나면 남쪽으로 내려와 주차장이 내려다보이는 다리를 건너가 박물관에서 보았던 가야부터 신라까지 부산 동래 지역 유력자들이 묻힌 부산 최대의 고분군인 복천동 고분군 주변을 직접 산책해볼 수 있습니다.

 

[부산] 가야부터 신라까지 묻힌 부산 유력자들이 묻힌 부산 최대의 무덤군, 복천동 고분군

복천박물관에서 동남쪽 다리를 향해서 갑니다. 다리 앞에는 1909년에 동래 지역에서 일본에 저항하기 위해 호적대장을 모아 불태우고 쌓은 영보단이 있던 곳을 표시한 영보단비도 볼 수 있습니

mspproject2023.tistory.com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