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인내로 열린 길, 감인대도(堪忍待道) |
|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한 길을 걸어온 삶이 있습니다. 참고(忍) 견디며(堪) 기다리는(待) 시간 끝에서 마침내 길을 연 여정(道) 우리는 그 길을 '감인대도(堪忍待道)'라 부릅니다. '감인대도'는 인내와 침묵 속에서 비로소 드러나는 수행의 도(道)를 뜻하며, 그 고요한 걸음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깊은 눌림으로 다가옵니다. 동산(東山) 혜일(慧日) 대종사(大宗師)(1890-1965)의 열반 60주년을 맞아 마련된 이번 전시는 수행자의 첫 걸음에서 시작해, 격동의 시대 속에서 불교 정신을 지켜낸 행보, 그리고 한 자 한 자 스님의 사유와 깨달음이 담긴 유묵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한 길을 묵묵히 걸어온 삶의 자취를 되짚어봅니다. 이 전시는 스님의 수행을 기리는 동시에, 우리 각자가 걷는 길(道)을 돌아보게 하는 사유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스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우리는 다시 묻습니다. "나는 어떤 길 위에 서 있는가?" 지금, 고요한 그 길 위에서, 스님과 우리가 다시 만납니다. |
부산 금정구 청룡동 범어사 성보박물관 2층에서 2025 동산스님 열반 60주년 특별기획전시 <인내로 열린 길, 감인대도(堪忍待道)>가 열리고 있습니다.
[부산] 범어사의 시간과 역사를 담은 곳, 범어사 성보박물관|위치·주차·관람 팁 총정리
1. 범어사 성보박물관2003년 3월 26일에 범어사 경내에서 개관했다가 2021년 11월 16일 범어사 아래 이곳으로 신축 이전 개관한 범어사 성보박물관입니다.입구로 들어가면 양 옆으로 사찰 석조 구조
mspproject2023.tistory.com

전시실 처음에 들어서면 동산 대선사가 쓴 '감인대(堪忍待)'라는 글귀가 맞이해줍니다. 그의 인생을 담을 수 있는 글귀를 통해 동산 대선사가 누구인지 어떤 분일지 궁금증을 가지게 되죠.

조선 시대(1392-1897)였던 1890년 충청북도 단양 지역에서 태어난 동산 스님은 경성중동중학교를 거쳐 경성의학전문학교(京城醫學專門學校, 1916-1945, (현)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의 전신인 조선총독부의원 부속의학강습소(1910-1916)를 졸업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인간 존재와 마음의 근원에 대한 물음을 품고 수행의 길을 선택했죠. 그렇게 불교와 선학을 공부하다가 '육체의 병은 의술로 고친다지만, 마음의 병은 무엇으로 고치겠는가?'라는 용성스님의 말을 듣고, 그를 은사로 모시며 범어사로 출가하며 그의 불교 인생이 시작됩니다.

왼편에는 1982년에 그려진 근현대 한국불교의 큰스승이면서 참선 수행과 계율을 중시하며 생활불교를 실천한 선각자이자, 일제강점기에는 한용운과 함께 민족대표 33인 중 2인의 승려 중 한 분으로 3.1운동에 참여한 용성 대종사(1864-1940)의 진영이 걸려 있습니다. 그 오른쪽에는 1982년에 그려진 용성 대종사의 제자이자 특별기념전시의 주인공이면서 불교 종단 지도자로서 큰 축이었던 동산 대종사의 진영이 있습니다.

그 아래에는 당시에 쓰인 여러 물건과 용성 대종사가 동산 대종사의 직접 써준 전계증(傳戒證, 불교 계율 전수 증명서)도 볼 수 있습니다. 두 한국 불교의 거목이 연결되는 문서죠!
그렇게 동산 대종사는 수행자로서의 단단한 내면을 가지는데 전념했고, 어두운 시대와 마주하는 실천으로 그 행동이 이어집니다. 그는 불교 종단 중심에서 목소리를 내면서 치유와 화합을 위한 자비의 행보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정화, 평화, 기억. 이 세 갈래의 흐름은 스님의 불심으로 관통됩니다.


우선 동산 스님은 '부처님의 가르침은 삶 속에서 실현되어야 한다'는 용성 스님의 불교 실천 사상을 계승하여 혼탁해진 한국불교의 개혁에 앞장섰습니다. 대승불교의 불경인 <범망경(梵網經)>을 바탕으로 195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의 그의 설법으로 계율의 의미를 되새기게 했으며, 전국적인 불교 정화운동으로 확산되며 청정승풍(淸淨僧風, 티 없이 맑고 깨끗한 승려의 기풍)을 되찾기 위한 대중적 실천으로 이어집니다.



한국전쟁의 폐허 속에서 동산 스님은 자비와 평화의 가르침을 실천합니다. 한국전쟁 당시 범어사는 임시국립묘지로서 현충법회를 열고 경남지구 전몰장병 추도식, 유엔군 전몰장병 및 순국선열 추모재 등의 추모 행사를 이어갑니다. 1956년에 네팔에서 열린 세계불교도대회에 한국 대표로 참석해 네팔 국왕 마헨드라(Mahendra, 1920-1972)의 두번째 부인이자 왕비였던 라트나(Ratna, 1928-)를 비롯한 각국 고승들과 교류하며, 한국불교의 위상을 세계에 알리고 국제 불교 연대의 물꼬를 틀었다고 합니다.



1965년 동산 스님은 열반에 드셨습니다. 스님이 입적한 후, 후학들과 사부대중(四部大衆,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니' 등의 네 부류의 제자)은 깊은 추모의 뜻을 모아 사리탑을 짓고, 그에 관한 기록을 남겨 동산 스님의 뜻과 가르침을 되새기고자 했습니다. 그렇게 석고 흉상, 성철 스님이 지은 동산 대종사 사리탑비(1967) 등이 남겨지게 되었죠.

그 다음으로 동산 스님의 발자취를 볼 수 있습니다.
| 1890년 | 2월 25일 | 충북 단양군 출생 |
| 1896년 | 향숙(서당)에서 한학 공부 | |
| 1904년 | 단양익명보통학교입학 | |
| 1908년 | 중동중학교 입학 | |
| 1910년 | 경성총독부 의학전문학교 입학 | |
| 1912년 | 3월? | 경성의학전문학교 졸업 |
| 10월 | 범어사로 입산, 출가 | |
| 1913년 | 봄 | 금강계단에서 용성스님을 은사, 성월스님을 계사로 출가 수계 |
| 1914 초 - 1915년 말 | 평안남도 맹산 우두암(牛頭庵)에서 2년간 교학과 선을 배움 | |
| 1916-1917 | 범어사로 돌아와 대교과 2년간 수학 | |
| 1919 | 용성스님이 3.1운동으로 투옥되자, 옥바라지를 위해 학업을 멈추고 대각사와 망월사 등지에 머무름 | |
| 1921년 | 봄 | 용성스님 출옥 이후 각처의 선원에서 참선수행 |
| 1924년-1926년 | 직지사에서 3년 결사 | |
| 1935년 | 서울 선학원에서 개최된 전국수좌대회 실무 등 실질적인 주체 역할 | |
| 1936년 | 용성스님에게 계맥을 전수받음 | |
| 1941년 | 범어사 금어선원 조실로 수행 서울선학원에서 개최된 '고승유교법회'의 설법에서 불교정화의 가치 구현 |
|
| 1943년 | 범어사 금강계단 단주 취임 | |
| 1952년 | 제1회 경남지구전몰장병 합동추도회 | |
| 1954년 | 이승만 대통령 불교정화 유시 '전국비구승 대표자 대회'에서 불교정화의 당위성, 이념, 노선을 정하며 실질적 불교정화 전개 |
|
| 1955년 | 전국승려대회 | |
| 1956년 | 네팔 제4차 세계불교도대회 한국 대표로 참석 | |
| 1958년 | 태국 제5차 세계불교도대회 참석 | |
| 1962년 | 종정사임 후 범어사로 내려가 교육 전념 | |
| 1965년 | 4월 24일 ((음)3월 23일) |
입적 |

그의 발자취 옆으로 그가 썼던 물건들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다음 전시에서는 동산 스님이 쓴 여러 작품을 보며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죠.

마지막 공간에서 동산 스님에게 연꽃을 보내는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첫번째 동산 대선사의 이야기를 볼 수 있죠.
그 다음 미디어 아트 전시관으로 이어지는데, 이곳에선 동산 대선사를 대표하는 감인대도에 대한 감상적이고 아름다운 미디어 전시를 볼 수 있으니 한 번 길을 따라 계속 가보세요~ 해당 구간은 촬영 금지여서 사진은 따로 찍지 않았습니다.
'어원과 표로 보는 역사 시리즈 > 어원과 표로 보는 한국사, 한국문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부산] 범어사 성보박물관 특별기획전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자대비> (0) | 2026.01.10 |
|---|---|
| [부산] 범어사의 시간과 역사를 담은 곳, 범어사 성보박물관|위치·주차·관람 팁 총정리 (1) | 2026.01.10 |
| [부산] 동래읍성의 흔적을 품은 동래구청, 돌과 잔디, 곡선으로 이어진 조선 동래의 경계 (0) | 2026.01.10 |
| [부산] 부산백병원에 걸린 백인제 박사의 이야기를 담아 기증된 그림 (0) | 2026.01.08 |
| [부산] 백병원의 역사를 잇다, 인당 백낙환 박사와 부산백병원의 탄생 (0) | 2026.01.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