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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주시 황남동 내 사정동(沙正洞). 바른(正) 모래(沙)가 많은 동네라는 뜻이죠. 이곳 남쪽에는 지금은 남천이라고 부르는 문천(汶川,蚊川)이 흐르고 있는데, 이 주변에 모래가 정말 곱다고 합니다.

병인양요(1866) 직후인 1866년에 지어 1871년에 경주에 세운 척화비(화의를 물리치는 비석)로 당시 물밀듯이 밀려오던 서양 열강의 위협에 맞서 조선을 지키겠다는 조선 조정의 의지를 잘 보여주는 상징물이자 쇄국정책의 일환이었죠.
| 척화비 |
| 서양 오랑캐가 침범할 때 싸우지 않는 것은 화친(和親)하는 것이요, 화친을 주장하는 것은 나라를 팔아먹는 것이다. 우리 자손만대에 경계한다 |
그렇지만 1882년 8월에 고종은 '이미 서양과 수호를 맺었기 때문에 시대가 달라졌으니 척화비를 뽑으라'는 명령을 내리며 시대의 뒷편으로 넘어집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경주 사정동에서 1.5m 높이의 경주 사정동 척화비가 발견되었고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옮겨와 그 시절의 흥선대원군의 강한 쇄국 의지를 보여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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