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신라 문화의 정수, 성덕대왕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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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신라 문화의 정수, 성덕대왕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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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1년, 신라 태종무열왕(603-661) 혹은 성덕왕(691?-737)의 원찰(願刹,창건주의 넋을 기리기 위한 사찰)이었던 경주 북천 부근에 지어졌다고 전하는 봉덕사(奉德寺)에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鍾)이 세워집니다.

한 때 아기를 시주해서 만들어 그 아기가 '에미, 에밀레(Emmi, Emmille, 엄마, 엄마 때문에)'라고 운다고 해서 '에밀레종'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이 나돌았는데, 20세기에 만들어진 이야기라고 하네요.

그러나 시간이 꽤 흐른 조선시대에 북천의 둑이 허물어져 수몰되면서 절의 기능을 할 수 없게 되었고, 1460년, 영묘사(靈妙寺)로 옮겨졌다가, 다시 봉황대에 종각을 짓고 보호하다가 1915년 8월에 종각과 함께 박물관((현)경주문화원)으로 옮겼죠.

그 뒤 경주박물관이 신축 이전됨에 따라 1975년에 국립경주박물관 경내로 이전되어 지금까지 전시되고 있습니다. 직접적인 타종은 거의 하지 않는데, 지금은 매시간 정각, 20분, 40분에 녹음된 타종 소리를 들을 수 있어요. 

선덕대왕신종에는 주종대박사(鑄鍾大博士) 대나마(大奈麻) 박종일(朴從鎰)을 중심으로 차박사(次博士) 나마(奈麻) 박빈나(박빈내, 朴賓奈), 차박사(次博士) 나마(奈麻) 박한미(朴韓味), 차박사(次博士) 대사(大舍) 박부부(朴負缶) 등과 함께 이 신종을 만들었다고 쓰여 있습니다.

주종 대박사 박대나마 기념비
신라 성덕대왕 신종(神鐘)은 혜공왕 7년(771년)에 이룩한 통일신라 문화의 기념비적 보배다. 종명(鐘銘, 종에 새긴 명)의 몇 구절이 이 종의 주성(鑄成, 녹인 쇠붙이를 거푸집에 부어 물건을 만듦) 내력과 그 신묘함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이에 의하면 이 종은 경덕왕이 부왕인 성덕대왕을 위하여 구리 12만근으로 1장(丈) 종을 만들고자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함에 그 아들 헤공왕은 어머니 김씨 만월부인의 도움으로 완공하였다. 사람과 신의 힘을 합하여 만들었으니 그 형체는 산악과 같이 위엄이 있고 그 소리를 듣는 사람은 꽃다운 인연을 맺어 복을 받는다 하였다. 실로 이 종은 조형의 아름다움이나 소리의 장중함에 있어 인류가 만든 범종(梵鐘) 중에 가장 으뜸이라 하겠다. 이 신묘한 종을 만든 신공(神工)의 이름이 종명에 새겨있었지만 천 수백년 오랜 세월이 흐름에 그 이름을 확연히 읽을 수가 없음이 애석하다. 다만 네 사람의 종장(鐘匠)이 참여하였는데 그 우두머리인 주종대박사(鑄鐘大博士)의 성씨는 박(朴)이요 그의 벼슬은 대나마(大奈麻)였다.

우리는 오늘 이 위대한 선현의 높은 예술적 경지와 뛰어난 과학 기술을 기리기 위하여 성덕대왕 신종을 만든 박대나마의 위대한 공적을 이 돌에 새겨 후일에 전하고자 한다.

1987년 경주시에서 세우고 글은 문화재위원 문학박사 황수영(黃壽永)이 짓고 글씨는 정수암(鄭壽岩)이 쓰다.

오늘날 우리는 선덕대왕 신종을 통해 신라의 뛰어난 예술적 성취와 정교한 과학 기술을 엿볼 수 있습니다. 천년이 넘는 세월에도 그 장중한 소리와 아름다운 형상은 여전히 감탄을 자아내며, 이를 만든 주종대박사 박대나마와 그의 동료들의 공적은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깊은 감동과 존경을 전합니다. 경주 성덕대왕 신종은 단순한 종을 넘어, 신라 문화의 위대함과 인간의 장인정신을 상징하는 귀중한 문화유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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