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드릴하면 Bos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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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원과 표로 보는 역사 시리즈/어원과 표로 보는 세계사, 세계문화

우리나라에서 드릴하면 Bos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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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부님이 같이 근무하던 선임에게 그가 영문과였기에 bosch를 어떻게 읽냐고 물었고, 그 선임은 '보스취 아니겠습니까?'라고 답했다. 이에 저 전동 드릴을 만든 회사의 이름이 무엇인지 궁금해져 직접 찾아보았다!

1. Bosch는 영어가 아니다!

Bosch. 이 단어가 대문자로 시작했다는 것은 영어 고유명사이거나 독일어 명사중에 하나라는 뜻이 된다. 찾아봤더니 Bosch는 이탈리아어파 및 독일어파에서 파생된 언어에서 사용되는 인명이었으며 [보쉬]라고 발음한다. 단어 자체는 ''을 뜻한다.

2.  Bosch는 무슨 회사인가?

로베르트 보쉬 유한책임회사(Robert Bosch GmbH)

로베르트 보쉬 유한책임회사는 1886년에 설립한 자동차 및 산업 기술, 소비재 및 빌딩 기술 분야의 선도적인 독일 기업이다.

한국에서 보쉬는 자동차 부품(automotive original equipment) 및 애프터마켓(aftermarket) 제품, 산업 자동화(industrial automation) 및 모바일 기계(mobile machinery) 제품, 전동공구 및 액세서리(power tools and accessories), 보안 시스템(security systems)을 생산, 제공하고 있다. 보쉬는 1985년 서울에 사무소를 오픈했다. 보쉬는 한국에서 로버트보쉬코리아(Robert Bosch Korea Limited Company), 보쉬전장(Bosch Electrical Drives Co., Ltd.), 보쉬렉스로스코리아(Bosch Rexroth Korea Ltd.), 이타스코리아(ETAS Korea Co., Ltd.), KB와이퍼시스템(KB Wiper Systems Co., Ltd., KCW 50%), 5개 법인을 운영하고 있다. 보쉬는 2019년 12월 31일 기준 1,880여 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다. 보쉬는 2019년 회계 연도에 국내 시장에서 총 매출 1.75조 원을 기록했다.

- 한국로버트보쉬의 회사 소개

특히 자동차 부품 분야에서는 2020년을 기준으로 세계 1위를 유지하고 있으며, 스티어이 휠, 전기자동차용 전기모터와 변속기, 각종 전장부품, 브레이크 부스터, 배터리 등과 같은 부품을 생산하여 자동차 회사에 보급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이 회사가 조금 다른 부분에서 인기를 끌어왔다.

2020년 5월부터 2021년 4월 사이에  판매된 브랜드별 전동공구 판매 순위(출처 : 다나와)

국내에 크게 알려진 전동도구 회사는 독일의 보쉬를 제외하고도 미국의 디월트와 밀워키, 일본의 마끼다, 우리나라의 아임삭 정도가 있다. 아래는 공구 좀 안다는 사람들에게 각 브랜드의 인식에 대해 물어보고 그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아임삭 전동공구를 잘 모르는데 중국제는 쓰자니 조금 힘들고, 브랜드를 쓰자니 너무 비싸 ㅠ 아임삭 한번 사봐?? (초심자용)
디월트 미국하면 디월트지! 좀 비싸긴해도 성능이 엄청 좋잖아~ 노랑과 검정의 조화 또한 매우 아름다운걸?  (고비용 고성능, 최상급)
뮐위키 전문가용이라더라? 오 그리고 미국꺼네? (고성능, 최상급)
마끼다 목공 공구 원탑이지! 일본 시장 거의 다 먹었다더라? (목공업계 1위, 최상급)
보쉬 보쉬? 니 보쉬를 모른다꼬? 이 일 좀 하는 사람이면 보쉬만 찾는다카이! (공구업계 1위, 상급)

보쉬 제품은 국내에서 최상급은 아니지만 널리 쓰이면서도 좋은 전자공구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3. 회사 이름이 왜 Bosch인가? Bosch는 누구인가?

앞서 말했듯, Bosch의 풀네임은 로베르트 보쉬(Robert Bosch)이다. 동명의 회사의 창립자인 로베르트 보쉬(1862~1942)는 독일의 사업가이자 엔지니어이다.

1876년 레알슐레(Realschule, 실업계 중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미국으로 가서 토마스 에디슨의 밑에서 일했으며, 독일의 지멘스에서도 정비공으로 일하다가 1886년 작은 정비소를 차리게 된다. 1887년 지멘스의 자석 점화 장치를 개량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고, 10년뒤부터 해당 장치를 자동차에 최초 도입했다. 1902년 보쉬는 고전압 자석 점화 시스템을 정식 특허 등록을 하며서 자동차 부품 회사로서의 이름을 떨쳐나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발전하는 회사를 키운 로베르트 보쉬는 독일에서 8시간 근무제를 처음 도입한 사업가 중 한 명이었고, 벌어들인 돈의 일부를 기부했으며 직업훈련에도 크게 힘을 썼고, 회사가 있던 슈투트가르트(Stuttgart)시에 병원을 세우는 등 기업의 사회에 많은 것들을 배풀었다. 당시 세계 1차 대전으로 사이가 좋지 않았던 독일과 프랑스의 관계를 회복시키고자 많은 돈을 쓰고 힘을 썼다.

그러나 시대는 그의 바람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결국 독일의 나치 정권이 로베르트 보쉬가 펼쳤던 평화 정착 노력을 종식시키고, 보쉬사와 군비 계약을 맺은 것이다. 그럼에도 보쉬사는 박해받은 유대인들이 강제수용소로 끌려가지 않도록 회사에 고용하거나 해외로 이주할 수 있도록 경제적으로 지원했을 정도로 인도적인 기업을 운영했다.

그는 전쟁이 끝나기도 전인 1942년에 사망했지만 그가 사망하면서 '회사의 수익을 자선 사업에 써달라'는 유언을 남겼고, 그 유언은 오늘날까지 보쉬사의 운영 방침이 되었다.

 

4. Borsh의 글을 정리하며

여러 사회적 가치를 직접 실현한 로베르트 보르쉬가 세운 보쉬는 국내에서 여전히 다양한 곳을 고치고 새로운 것들을 만들 때 사용되는 공구 도구들의 대표 회사로 자리 잡았다. 이 글을 쓰면서 나치 독일 하에 있던 대부분의 기업들이 친나치 성향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한편으로는 당시 안타까웠던 유대인들을 돕던 독일 기업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로베르트 보쉬를 보면서 자신의 가치관을 지키며 잘하는 것을 꾸준히 하다보면 힘에 복종하지 않고 큰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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