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뉴얼! 선사부터 삼국까지, 부산대학교박물관 상설전시(2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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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원과 표로 보는 역사 시리즈/어원과 표로 보는 한국사, 한국문화

리뉴얼! 선사부터 삼국까지, 부산대학교박물관 상설전시(2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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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산대학교박물관 상설전시관을 보러가다

2024년 10월 28일 월요일 부산대학교박물관이 새롭게 재개막했습니다!

1층에는 기획전인 부산대학교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부산시지정유형문화유산을 전시하는 <명품, 수장고를 나서다>가 전시되고 있습니다!

김해 회현리 패총과 토층 전사
김해 봉황대 유적의 동남쪽 말단부에 위치하는 회현리 패총은 일제강점기 중(1907년)에 발굴된 최초의 유적입니다. 그 학사(學史)적 중요성이 인정되어 국가사적 제2호로 지정되었고 2001년 봉황동 유적으로 확대 지정·관리되고 있습니다.

회현리 패총은 기원 전후부터 4세기까지 걸쳐 형성되었는데, 생활토기인 연질토기(軟質土器)를 비롯한 많은 토기와 골각기, 중국제 동정(銅鼎)편뿐만 아니라 굴, 소라 등의 패류, 멧돼지, 사슴 등의 동물뼈가 출토되어 당시의 시대상과 생활상을 잘 보여줍니다.

전시된 토층은 1920년에 실시된 계단식 발굴 구역을 1998년 부산대학교박물관과 부산대학교 고고학과 재조사하여 확인한 6m 깊이의 패총 단면입니다. 토층면을 합성수지로 접합하고 거즈와 유리섬유로 보강하여 분리하는 전사법을 이용하였습니다.

2층 상설전시관으로 가는 계단을 올라가면, 기원전후부터 4세기까지 걸쳐 형성된 패총인 김해 회현리 패총 단면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한국의 비너스, 시루, 압형토기, 군사용 갑옷, 화살촉 등 다양한 유물을 귀여운 만화로 그린 그림이 걸려 있습니다. 이곳에 나온 유물들을 상설전시관에서 찾아보면 또 색다른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겠어요~ 

2층으로 올라왔습니다. 계단을 올라와서 바로 오른쪽으로 가면 상설전시관 1실에 나옵니다.

상설전시관으로 가기 전에 박물관 청기와, 1994년 3월 4일 박물관 이전 개관 당시 모습, 박물관 발굴조사 자료와 같은 이 박물관 자체의 역사와 관련된 흔적들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뒷편 쉬어갈 수 있는 푹신한 곳에서 바깥을 잠시 감상할 수도 있어요~
 

2. 부산대학교박물관 상설1실(선사와 삼한)

'선사와 삼한, 발굴을 통한 일상의 복원' 전시입니다. 부산대학교가 발굴한 선사시대 유물부터 삼한시대 유물까지 시대 흐름에 따라 정리했고, 중간에는 사천의 늑도 유적에 관한 이야기도 전시하고 있습니다.

영남지역 선사와 삼한; 발굴의 여명
부산대학교 박물관의 발굴 조사는 1964년 김해 농소리패총 발굴로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부산 및 영남 각지에서 구석기시대부터 삼한시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화유적의 발굴 및 분포조사를 시행하였고 이에 대한 학술총서를 발간하였습니다. 대표적인 조사로는 구석기시대의 밀양 고례리유적, 신석시시대의 김해 수가리패총, 청동기시대의 울산 검단리유적, 삼한시대의 사천 늑도유적과 울산 하대유적 등이 있습니다.

상설1실에서는 그동안 우리 박물관에서 조사한 선사 및 삼한시대 유적들의 발굴 성과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전시를 구성하였습니다. 각 시대별 다종다양한 유물을 통해 영남지역 선사인들의 생활이 어떠했는지 상상해 보시길 바랍니다.

뗀석기(타제석기)를 주로 사용했던 구석기시대의 다양한 유물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부산대학교 박물관이 발굴 조사한 대표적인 영남지역 후기 구석기 유적인 밀양 고례리유적, 진주 장흥리 집현유적 등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간석기(마제석기)와 빗살무늬토기(즐문토기)를 주로 사용했던 신석기시대의 다양한 유물을 볼 수 있어요. 부산대학교 박물관이 발굴 조사한 신석기 유적인 김해 농소리패총, 부산 다대포패총, 부산 율리패총, 김해 수가리패총, 청도 오진리유적 등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다산과 풍요의 상징
'신암리 여인상(Sinam-ri Woman's Statue)'
울주군 서생면 신암리 유적
복제품
높이 3.6cm
울산 울주군 서생면 신암리유적에서 출토된 여인상은 '신암리 비너스상'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풍만한 몸매와 과장된 가슴과 엉덩이, 불룩한 배 등 여성미를 강조하는 선사시대 비너스상은 흔히 다산이나 풍요를 기원하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울주군 신암리와 함경북도 청진시 농포리 유적에서 발견된 여인상이 유일합니다.

민무늬토기(무문토기), 농경구, 수렵구, 목공구, 옥마석, 석검과 같은 석기도구를 일상 속에서 주로 사용했던 청동기시대의 다양한 유물을 볼 수 있어요. 부산대학교 박물관이 발굴 조사한 청동기 유적인 산청 옥산리유적, 합천 저포유적 E지구, 우리나라 최초로 환호가 발굴된 울산 검단리유적 등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특히 산청 옥산리에서 출토된 시루는 2024년까지도 한반도 최고(最古)의 시루로 여겨집니다!

패총 파트에서는 부산대학교 박물관이 발굴 조사한 부산 다대포패총, 김해 수가리패총, 김해 회현리패총(현 봉황동 유적), 사천 늑도패총 등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삼한시대에 돌입합니다. 청동기시대 이후 우리나라 중남부지역에는 마한(후의 백제 지역), 진한(후의 신라 지역), 변한(후의 가야 지역)의 삼한이 들어섭니다. 이 시기에 철기 생산과 사용이 본격화 되었는데, 특히 변한은 일본과 낙랑의 중간 기착지로서 대외교역의 중심지가 됩니다. 이곳에는 부산대학교에서 발굴한 사천 늑도유적, 부산 노포동유적, 울산 하대유적, 김해 봉황대유적, 김해 대청 유적 등의 삼한시대 유적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다양한 삼한시대의 토기가 보이는데요. 그 중 울산 하대고분군에서 발굴된 압형토기가 인상깊습니다.

울산 하대고분군 23호분 출토 동정(銅鼎, Bronze Cauldron)
울산 하대고분군은 삼한시대 후기 고분군으로 특히 지배층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대형의 목곽묘가 다수 존재하는 유적입니다. 대형 목곽묘의 내부에는 토기와 칠기류를 비롯하여 환두대도 등의 철기류, 수정제 곡옥 등의 장신구류가 대량으로 부장되었습니다.

동정(銅鼎)은 하대고분군 가지구 23호 목곽묘에서 출토되었습니다. 중국 한나라(-202~8, 25~220)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하대고분군 축조 세력이 대외 교역을 주도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동정은 높이가 49.8cm에 이를 정도로 대형이고 양쪽의 귀가 매우 크게 강조되어 있습니다. 세 개의 다리는 동물의 다리모양이고 몸통에는 주물틀을 고정시킨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동정이 출토한 23호 목곽묘는 길이가 720cm, 너비가 440cm로 남부지방에서 발견된 삼한시기 무덤 중에서도 규모가 큰 편입니다. 연대는 대략 3세기 후반대로 추정됩니다. 부장된 무덤의 연대와 동정이 만들어진 시기는 대략 2~300년 정도 차이가 있어 동정이 입수된 시기와 제작지, 부장의 의미 등은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있습니다.

정(鼎)은 한자 모양 그대로 '두 귀와 세 발이 달린 솥'을 가르킵니다. 원래는 중국의 신석기시대 취사기인 삼족기(三足器)에서 유래했지만, 상나라 때부터 청동으로 만들어져 제기로 사용되었습니다. 특히 소와 같은 희생물을 담아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였는데, 이는 최고신분인 왕(王)만이 할 수 있는 특권이었으므로 자연히 솥은 정치적 권위와 신분을 상징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삼국시대 이전 유적에서 동정이 출토한 예는 평양 부근을 제외하면 김해 양동고분군과 울산 하대고분군에서 각각 1점씩 출토한 것이 전부입니다. 이것은 울산지역의 정치적 실력자가 자신의 권위과 권력을 강화하고 합리화하기 위해 중국으로부터 동정을 수입하여 사용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대 유적은 문헌상 기록된 울산지역의 고대 정치체제인 우시산국(于尸山國) 지배계층의 무덤이었음을 동정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한반도 내에서 자체적으로 기원전 1세기부터 철이 사용되었다고 하는데, 이 철기로 농공구, 무기 등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다만 농공구는 석기와 철기를 혼합 사용했죠. 삼한시대에는 유리, 수정, 마노, 호박 등의 재료를 가공한 장신구와 지배자의 권위를 나타내는 동검과 동경(동거울)도 쓰였습니다.

늑도유적에서 발견된 인골입니다. 약 60구의 인골이 출토되었는데, 토광묘와 옹관묘가 거의 절반씩 있고, 아주 조금 석관묘였다고 하네요.

대외교류
한반도 남부지역은 신석기시대 이후로 지리적으로 인접한 제주도, 일본, 중국까지 점차 해상교역망을 확대하였습니다. 대외교류의 대표 유물로는 신석기시대의 흑요석, 삼한시대의 척기, 야요이토기, 낙랑토기 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대외교류는 한반도 남부지역의 문화적 정체성과 정치적 및 경제적 구조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러한 교류를 통해 한반도 남부는 보다 복잡하고 풍부한 사회로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이곳에선 대외교류를 알 수 있는 소형 배모양토기 뿐 아니라 일본의 야요이게호(彌生系壺)와 야요이게옹(彌生系甕)도 출토되었습니다. 참고로 일본의 야요이 시대는 기원전 10세기 혹은 기원전 3세기부터 3세기까지의 시대를 말하는데, 이 때 외래문화가 유입되면서 청동기 문화와 철기 문화가 같이 들어옵니다.

늑도, 교류의 중심지가 되다
삼한시대에 들어 늑도는 교역의 거점지역으로 이용되었습니다. 늑도에서 제주도의 현무암이 섞여 있는 토기, 일본의 야요이토기, 중국의 낙랑토기, 동경·동촉 등의 다종다양한 외래계(外來系) 유물이 출토되었습니다. 규역 당시 정교한 매매를 위한 저울들이 보급되었ㄱ도, 다양한 재질과 형태의 저울추도 출토되었습니다. 교역 내용을 적기 위해 사용한 벼루로 추정되는 유물도 확인되었습니다. 또 배모양토기와 석제 닻을 통해 교역수단이 배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현무암으로 만들어진 석제 닻과 토제 저울추, 철제 저울추, 석제 저울추 등의 저울추도 발굴되었죠.

 

3. 부산대학교박물관 상설2실(삼국)

발굴연혁
1971.12. 부산 오륜대고분군 발굴
1972 부산 화명동고분군 발굴
1973.12.~1974.01. 경북 경주 미추왕릉지구고분군 1,2차 발굴
1974.09.~1974.10. 부산 동래 복천동 학소대고분군 발굴
1976~1980 경남 김해 예안리고분군 1~4차 발불
1980.03.~1980.05. 경남 함양 백천리고분군 발굴
1980.10.~1981.02. 부산 동래 복천동고분군 1차 발굴
1981.10.~1981.11. 부산 당감동고분군 발굴
1982.10.~1982.12. 경남 울주 화산리고분군 발굴
1984.04.~1984.05. 경남 울주 양동유적 발굴
1986.08. 부산 동래 복천동고분군 2차 발굴
1989.09.~1989.10. 부산 동래 복천동고분군 3차 발굴
1991.07.~1991.09. 부산 동래 복천동고분군 4차 발굴
1994.03.~1994.07. 경남 창녕 계성고분군 발굴
1998.10.~1998.12. 경남 김해 회현리패총 시굴 및 토층전사
2000.04.~2000.07. 경남 김해 봉황동 408번지 건축부지내 시굴 및 발굴
2001.09.~2002.03. 부산 해운대 군시설부지내 발굴

한반도 삼국시대 연구의 보고
부산대학교박물관은 1970년대부터 영남지역의 삼국시대 고분군을 다수 발굴조사하였습니다. 부산지역의 복천동고분군, 오륜대고분군, 화명동고분군, 경남지역의 예안리고분군, 계성고분군, 백천리고분군 등이 대표적인 유적입니다. 삼국시대 고분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무덤의 형태가 변화합니다. 출토되는 유물 또한 생활용기, 제례용기, 무기, 농공구 등 다종다양합니다. 부산대학교박물관은 발굴조사 성과를 바탕으로 한반도 삼국시대 고고학의 기반을 마련하였으며, 현재까지 수많은 연구자를 배출하였습니다.

상설2실은 부산대학교박물관의 학술적 연구성과를 여러분에게 공유하고자 마련된 전시 공간입니다. 특히 복천동고분군과 예안리고분군은 우리 박물관이 발굴한 대표적인 삼국시대 고분이며, 부산대학교박물관을 상징하는 유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본 전시는 두 고분군에서 출토된 유물을 중심으로 구성하였습니다. 전시를 관람하시면서 멀게만 느껴지던 고대인의 삶이 사실은 여러분과 매우 가까이에 있었음을 느끼시게 되길 바랍니다.

압도적인 무장력, 복천동 고분군의 전사
부산대학교에서 발굴한 삼국시대 고분에서는 말을 부리고 다루기 위한 마구(馬具)와 적에 의한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사람이 입는 갑주(甲冑)가 다량 확인되었습니다. 복천동고분군에서는 4세기부터 커다란 철판을 이어 붙여 제작한 판갑(板甲)이 유행하고 말을 부리기 위한 제어구인 재갈(轡)이 확인됩니다. 5세기에는 앞 시기의 판갑 보다는 작은 철판 조각들을 연결하여 제작한 찰갑(札甲)이 다수를 점하며, 마구는 제어구 뿐만 아니라 말에 올라 타기 위한 등자와 말 위에서 사람의 몸을 안정시키는 안장, 말을 화려하게 꾸미는 장식구 등이 출토됩니다. 400년 고구려군 남정(南征) 이후에는 사람과 말이 모두 갑옷과 투구로 중무장한 중장기병(重障騎兵) 전술을 완벽히 구사하였던 고구려군의 영향을 받아 새로운 형태의 재갈이 제작되고, 말에게 입히는 갑옷이 제작되어 부장되기 시작합니다. 복천동고분군에서 출토되고 있는 다량의 마구류와 갑주류를 통해 이들이 풍부한 철자원을 보유하고 강력한 무장력을 갖춘 집단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삐류인 표비(鑣轡), 판비(板轡), 환판비(環板轡), 복환판비(復環板轡)와 안정구인 등자(鐙子), 안장(鞍裝), 그리고 장식구인 판형운주(板形雲珠), 심엽형행엽(心葉形杏葉) 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밖에 말을 보호하기 위해 말의 이마나 얼굴에 씌우던 투구(冑)인 마주(馬冑)도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의 어깨와 등을 보호하는 두 종류의 판갑(板甲)과 투구(胄), 목을 보호하는 경갑(頸甲), 말을 보호하는 마갑(馬甲), 팔을 보호하는 비갑(臂甲), 얇은 찰갑(札甲)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부산 복천동 34호 중장기병 찰갑을 재현한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앞선 설명에 따르면 이 모습은 5세기의 군인의 모습이었을 것 같아요.

이렇게 발굴과 관련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죠~

부산 복천동 고분군에서 출토된 토기류와 김해 예안리 고분군에서 출토된 토기류들도 볼 수 있었습니다.

복천동고분군 최전성기의 수장묘 삼국시대의 타임라인, 예안리고분군
복천동고분군의 수장묘 중 하나인 21·22호는 거대한 개석을 올린 최초의 석곽묘입니다. 이 고분에서는 피장자의 위세를 보여주는 토기, 무기, 마구, 갑주, 의기 등이 다량 출토되었습니다. 특히 고배(高杯)·기대(器臺)·장경호(長頸壺)·대호(大壺) 등 다양한 종류의 토기가 100여 점 넘게 부장되었습니다.

복천동 21·22호는 기존에 수장묘로 채용되던 목곽묘 대신 석곽묘라는 새로운 묘제를 채택한 최초의 무덤입니다. 이전 시기의 전통을 유지한 유물이 존재하는 반면, 새롭고 다양한 기술이 더해진 복천동 집단만의 독자적인 유물도 제작되었습니다.

부산지역에 위치하는 유적 중 도시화로 인한 파괴를 피해 삼국시대 최전성기의 수장묘가 구릉상에 온전히 남아있다는 것은 부산의 역사에 있어서 매우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소중하게 지켜온 역사자료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올바른 역사를 규명하고 지키는 것 또한 우리 박물관의 주요한 역할입니다.
부산대학교박물관에서 총 4차례에 걸쳐 조사한 예안리고분군은 4세기부터 7세기까지의 목곽묘, 석곽묘, 석실묘 등이  확인되었습니다. 발굴조사를 통해 분묘의 중복 관계를 분석하여 그 선후관계를 밝힘으로써, 전기가야에서 후기가야에 이르는 묘제 변천의 흐름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를 근거로 각 분묘에서 출토되는 유물을 분석하여 고고학적 시간의 기준을 마련하였습니다.

예안리고분군의 발굴조사 성과는 삼국시대의 편년(編年)을 연구하는데 있어서 아주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가야인의 인골이 다량 출토되어 당시 가야인의 생활상에 더욱 근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습니다.

삼각형 모양의 철판을 가죽으로이어서 만든 갑옷인 삼각판 혁철 판갑(三角板革綴板甲)과 환두부(環頭部, 손잡이 아래의 원형고리)에 은상감(銀象嵌)을 한 상감대도(象嵌大刀) 두 자루도 발굴되었습니다.

또 새의 깃털이 들어간 마갑(馬甲), 3조의 철봉을 꼬아서 제작한 말의 재갈 등도 발견되었죠. 이 모든 것들은 다양한 과학적 연구 방법에 따라 알려진 사실입니다!

중간 중간 창문으로 보이는 박물관 밖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가야인들이 쓰던 다양한 장신구와 이형토기들도 볼 수 있습니다.

금동관(金銅冠), 경식(頸飾, 목걸이), 곡옥(曲玉), 은제천(銀製釧, 은제 팔찌), 유리제천(琉璃製釧, 유리제 팔찌), 은제이식(銀製耳飾, 은제 귀고리), 금동제이식(金銅製耳飾, 금동 귀고리)금제이식(金製耳飾, 금 귀고리), 옥장신구와 같은 패제펜던트(貝製, 조개 펜던트) 등 다양한 장신구들이 전시되어 있을 뿐 아니라,

주구형토기, 등잔형토기, 청자잔, 압형토기 등 다양한 토기와 이형토기(異形土器)들도 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오리 얼굴 모양의 압형토기와 주구(注口, 주둥이, spout) 모양의 주구형토기가 인상깊었어요.

대표적인 의례구인 일본과 가야 지역에서 자주 출토되는 통형동기(筒形銅器, 통 모양 동기)와 자루에 끼울 수 있는 공부(銎部)가 있는 유자이기(有刺利器, 가시 있는 이기)도 볼 수 있었습니다.

역대 가장 많은 가야인의 인골이 발견된 김해 예안리고분군의 인골을 통해 세계 각국의 선사고대사회에서 행해졌던 머리를 무거운 판자나 돌로 눌러 머리뼈를 편평하고 봉우리지게 만드는 두개골 변형의 일종인 편두(褊頭, artificial cranial deformation)의 흔적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외에도 발치, 치아를 갈아낸 성형 흔적도 확인된다고 하네요.

삼국시대의 주요 무기인 환두대도(環頭大刀), 성철모(鐵鉾, 쇠투겁창), 철촉(鐵鏃, 쇠화살촉), 성시구(盛矢具, 화살통), 곡도자(曲刀子)와 무기장식인 과대장식(銙帶裝飾), 방패금구(防牌金具) 등이 삼국시대 고분에서 많이 출토됩니다.

 

새롭게 리뉴얼된 부산대학교박물관의 다양한 연구 성과를 보며 박물관의 활약과 그로 인해 알려진 다양한 경남 지역의 고대사를 볼 수 있어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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