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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가승서(谿谷家乘序) |
옛날 한나라(𤁉-, -202~8, 25~220) 태사(大史) 사마천(司馬遷, -145~-86)은 <사기(史記)>를 지으면서 스스로 그 집안의 세계를 서술(叙述)하였고 사학자 반고(班固, 32~92)는 이를 본받아 서전(叙傳)을 지었다. 이로부터 문인, 학사들이 전(傳)과 보(譜)와 비(碑)에 장(状)을 지어 스스로 선조의 덕행을 기술하였는데 이들을 일일히 다 헤아릴 수 없다. 무릇 음악은 자기의 유래에 대하여 감사하고 즐거워 함이요, 예도(禮道)는 그 근본을 잊지 아니 함이다. 육예(六藝)에 예(禮)와 악(樂)이 실려 있고 아송(雅頌)에서 조상을 찬미(讚美)하였는데 그 뜻에 있어서 어느 것이 이보다 크다 하겠는가. 조고(祖考)에게 아름다운 실적(實績)이 있는데도 자손이 기술하지 않으면 이는 조상을 잊음이요 조고에게 그 실적이 없는데도 자손이 거짓으로 꾸미어 칭송(稱頌)한다면 이는 조상을 속이는 것이다. 잊음과 속임임이 비록 다르기는 하나 불효(不孝)에 빠지기는 마찬가지다. 불초(不肖) 유(維, 1588~1638)는 다행히 선인(先人)의 여훈(餘訓)을 입어 책 읽고 글쓰기를 감(敢)하 무능하다고 하여 스스로 포기(拋棄)할 수 없었으며 지난 1,2년 이래 사사로히 사양(辭讓)하지 못하였을 때 명(銘)과 사(詞)를 지어 어진 사대부의 덕업을 찬술(讚述)한 적이 있었다. 대저 타인의 업적은 기술하면서 자기의 조상에 대하여 소홀(疏忽)히 한다면 이는 심(甚)히 도리에서 벗어난 일이라 할 것이다. 나는 이를 두려워 하고 또한 스스로 생각해 본다. 불행히도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외롭게 자라 들은 바가 없고 집안의 어른들도 거의 돌아가셨다. 집안에 간직했던 보첩(報牒)이나 책(册)들도 상란(喪亂)을 만나 남아 있는 것이 없었다. 그리하여 편찬(編纂)하고 기록(記錄)하고자 하나 문헌이 부족하였다. 참으로 가슴아프다. 비록 그러하나 세월이 지날수록 더욱 잊혀질 것인즉 내가 조금이라도 체계를 잡아 놓지 않으면 후세에 어떻게 기술할 것인가? 삼가 조부님께서 기록하여 놓으신 것에 의거하여 견문을 참고하고 사실기록들을 모두 모아 <장씨가승3편(張氏家乘三篇)>을 저술하였다. 1편은 세보(世譜)로 세계(世系), 명자(名字), 관위, 생졸, 배필자손(妃匹子孫), 구묘(邱墓)의 소재를 기록하였으니 그 대강을 열거한 것이다. 2편은 가전(家傳)이니 출처(出處), 이력(履歷), 언행을 기록하여 용모(容貌), 동정(動靜)에 이르기까지 비록 작은 것이라도 빼놓지 않았으니 그 자상(仔詳)한 것을 나타낸 것이다. 3편은 외전(外傳)이니 집안 부녀(婦女)들의 행실을 별도(別途)로 기록하였다. 세보에서 방계(傍系)의 친족을 뺀 것은 번거러워서 혼란(混亂)하게 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세보이지 족보가 아니다. 가전(家傳)을 집의공(執義公)으로 부터 시작하였는데 그 윗대는 자상한 기록을 얻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가승의 범례이다. 오호라. 우리 장씨는 대족(大族)이다. 성씨를 얻은 이래도 연대가 오래 되었다. 고려(高麗) 이전은 말할 것도 없고 조선조(朝鮮朝)에 들어와서 이미 9세에 이르렀다. 판윤공(判尹公) 이하를 헤아려 볼때 과거(科擧)에 급제한 분이 수인(數人)에 불과하며 관위는 3품을 넘은이가 없었으며 자성(子姓)도 3인을 넘은 이가 없었다. 이러하니 거의 쇠퇴(衰退)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선대부(先大夫)에 이르러 대과(大科)에 장원급제함으로써 선조를 이어서 빛을 냈으며 관위도 정2품의 높은 자리에 오르셨다. 나의 형제가 4명이나 되니 또한 번족(繁族)하게 되었다. 그러니 선조의 여경(餘慶)이 선대부로부터 발현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군자가 그 어버이를 생각하면 그 몸가짐을 삼가 할 것이며 그 몸가짐을 삼가하면 덕이 나아갈 것이며, 그 덕이 나아가면 신명(神明)이 그에게 복을 내릴 것이다. <시경(詩經)>에 이르지 않았던가. 길이 효도만을 생각할 지어다. 효도만이 오직 본받을 것이로다. 또 이르기를 신명이 어여삐 여겨 너에게 큰 복을 주리로다 하였다. 어찌 효도에 힘쓰지 않겠는가 힘 쓸 지어다. |
천계(天啓, 1621~1627) 원년(서기1621년) 신유 추(가을) 8월 유정공(柳亭公) 현손(玄孫) 유(維) 근지(謹識, 삼가 적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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