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 소금, 식염 한국 한자 : 鹽[염], 鹵[로], 塷[로] 鹺[차], 鹷[령], 䴝[최], 䴛[소], 䴜[회,외] 중국어 : 盐[야안/염],食盐[쉬이야안/식염], 鹺[초어/차] 일본어 : 塩[엥/시오/염], 食塩[쇼쿠엔/식염] 영어 : salt 러시아어 : соль [쏠] |
소금은 염화 나트륨(NaCl)을 주성분으로 하는 짠맛을 내는 (과학적으로는 무색인) 광물 혹은 물질이다. 보통 흰색을 띄지만, 빨간색, 검정색, 핑크색, 갈색, 주황색 등등 다양한 색깔을 띈다.
인체 내 혈액의 염분과 세포의 염분의 농도는 0.9%이며, 그 0.9%의 소금이 혈액의 산성화를 막아주고 신진대사를 주도한다고 한다.
2019년 7월에 발표된 신문에서는 우리나라 인구가 매일 평균 9.8g의 소금을 섭취하고 있으며, 이는 세계보건기구(who) 나 국제신장학회는 하루 소금 섭취 권장량인 5g 이하(나트륨으로는 2,000mg 이사)를 훨씬 웃도는 수치이다. 또 한 교수는 연구 중 이런 말을 했다.
하루에 소금 3g을 줄이면 한해에 9만2천명의 목숨을 살릴 수있고, 240억 달러의 예산을 절감할 수 있다
- 캘리포니아 대학교 커스틴 비빈스-도밍고(kirsten bibbins-domingo) 박사 연구팀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 소금은 그 유명한 성경에서도 그 특징이 잘 설명되어 있다. 아래는 흔히 '소금과 빛'이라고 불리는 구절이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마태복음 5장 13-14절
이 소금은 물건의 부패를 방지하고 변하지 않게 하는 힘이 있었다. 그래서 소금이 신의, 우정, 성실을 상징했다. 이를 성경에서는 영원한 소금 언약이라고 말한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는 모든 성물은 내가 영구한 몫의 음식으로 너와 네 자녀에게 주노니 이는 여호와 앞에 너와 네 후손에게 영원한 소금 언약(covenant of salt)이니라
- 민수기 18장 19절
현재 위키피디아에 알려져있는 식용 소금만 40종이 넘고, 실험용(연구용), 공업용 소금까지 합치면 50종 이상이 된다고 한다... 그 중 식용 소금 몇가지의 이름만 살펴보자.
주요 생산지에 따른 분류 |
종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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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염(海鹽) |
천일염(天日鹽, 볕소금), 자염(煮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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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염(地鹽) |
석염(石盐)=암염(岩塩), 호염(湖盐), 정염(井盐) |
분류 방식이 확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대략적으로만 기록한 것이다. 그냥 소금이 바다에서만 생산되는 것이 아니구나라고만 이해해주면 감사하겠다.
소금의 중요성 때문에 만들어진 단어들이 많다.
소금이 있는 물은 바다라고 불렀으며, 소금이 있는 물이 아닌 곳을 섬(insula)이라고 불렀고, 이렇게 가장 중요한(salient) 소금을 뿌려 먹는 음식(salad, salsa). 그것을 얻기 위한 재치와 투쟁(sally)이 있었고, 그것을 봉급(salary)으로 받는 사람들도 생겼다.
유럽의 고대 도시들은 제염소와 가까운 곳에 건설되었으며, 이후 로마 제국이 들어서고 이 제국은 주변에 있던 테베레 강변에서 나는 '오스티아 소금'을 이용하여 번영해갔다. 제국은 도처에 60곳 이상의 제염소를 설치했고, 이 또한 제국의 큰 힘이 되었다. 당시 이런 소금은 과거에는 화폐로 사용해왔다. 고대 로마의 군사들은 소금을 봉급으로 받았으며, 로마에 소금을 나르던 길은 소금길(salt road)이라는 뜻의 Via Salaria[비아 살라리아]라고 불렀다.
지도에서 로마(Roma)와 카스트룸 트루엔티눔(Castrum Truentinum) 그리고 안코나(Ancona)를 잇는 총 242km의 회색 길이 소금길, 비아 살라리아이다.
곧 중세에 들어서면서 소금을 담는 그릇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이는 당시 문화에서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귀한 소금으로 조리한 음식을 대접하는 것은 상대에게 예의를 표하는 것이었고, 그 음식 앞에 소금 그릇을 두었는데, 이는 그 집안의 경제력을 표현한 그릇이자, 이렇게 귀한 것을 상대에게 보인다는 의미를 지닌 그릇인 것이다.
<베네치아 공화국의 역사>
452, 아틸라(훈족), 알티눔 지역 약탈 (훈족의 침입으로 생겨난 해상 도시 건설) 7C, 지중해 지역의 해수면 하강 -> 천일염 제조 기술 발명 697, 파올로 루치오 아나페스토, 최초의 베네치아 도제(Doge)로 등극 (베네치아 공화국의 시작) 1082, 동로마 제국, 금인칙서 ->동로마를 돕는 조건으로 베네치아의 무역 특권 확보 1202~1204, 제4차 십자군(베네치아 공화국의 개입) 1122~1124, 베네치아 십자군 13C. 지속되는 홍수와 폭풍우로 염전의 1/3이 파괴됨 -> 소금 수입 시작->소금 생산보다는 매매가 이득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함 1281, 베네치아 공화국, 소금상인에게 장려금 지급 시작 1571, 레판토 해전(베네치아 공화국은 신성동맹에 참가하여 오스만 제국을 패배 시킴) 1792~1797,10.18, 프랑스 대동맹 1(대프랑스 동맹 1) 1797.04.18, 레오벤 조약(오스트리아의 베네치아 공화국 영토는 유지) 1797.10.18, 캄포포르미오 조약(오스트리아의 이탈리아에 대한 권리 포기) 1866.06.20~1866.08.12. 이탈리아 독립 전쟁 3 |
이 도시의 어원이 되는 단어들을 알아보자.
veni etiam [베니 에티암] (드디어 나도 와있다(도착했다))
- 마린 사누도(Marin Sanudo, 1466~1536)
단어를 보기전에 이 문장을 보자. 베네치아 공화국의 역사학자이자 <Diarii>라는 일기를 쓴 일기작가인 마린 사누도(1466~1536)이 쓴 기록이다. 이탈리아 본토에서 베네치아 석호(Venetian lagoon)로 건너온 피난민들이 처음 이곳에 당도했을 때 울면서 했던 말이라고 한다. 이 문장에서 veni의 원형인 '오다. 도착하다'를 뜻하는 veniō에서 베니스가 나왔다는 설도 있다.
또, 원시 인도-유럽인 중 하나였고, Heneti[헤네티]라고도 불렸던 Veneti[베네티]족은 북서 이탈리아 반도의 한 지역(현재 이탈리아의 베네토 주)에서 살았는데, 이 민족의 이름을 따서 현재 베네치아가 되었다는 설도 있다. 이 민족은 비스와 베네티(Vistula Veneti)와 켈트 베네티(Celtic Veneti)와 비슷한 계열의 민족이라고 여겨진다.
인도유럽조어에서 '사랑'을 뜻하는 *wen[*웬]과 거기서 갈라져 나와 '사랑스러운', '친근한'이라는 뜻을 지닌 *wenetoi[*웨네토이]에서 왔다는 설도 있다. 이를 통해 해석해보면 베네치아는 '사랑스러운 도시'가 된다.
그리고 라틴어에서 '청록색의, (바다같이) 푸른'이라는 뜻과 '베네치아의'를 뜻하는 venetus[베네투스]에서 기원했다는 설이다. 이에 따르면 '푸른 바다같이 푸른 곳에 있던 도시'라는 의미가 된다.
마지막으로 '용서, 허가, 친절'을 뜻하는 라틴어 venia[베니아]에서 왔다는 민간 어원도 있다.
이 도시에서는 위에 연표에서 알 수 있듯, 베네치아는 5세기에 형성되었고, 7세기부터 소금을 생산했다. 베네치아인들이 소금을 주로 재배했을 때까지는 이곳의 3대 특산물을 소금, 숭어, 장어로 꼽았을 정도였다.
그렇게 성장하여 9~12세기에는 도시국가로 발전하게 된다. 지리적 강점과 강한 해군력으로 서유럽과 비잔틴제국-아시아를 연결하는 무역로의 중심지로 번창하게 된 것이다. 특히 1082년에 동로마 제국의 금인칙서 형식으로 맺어진 <1082년 비잔틴 제국-베네치아 공화국 조약>을 통해 노르만과 터키의 침략에 힘들어하던 동로마 제국은 돕는 조건으로 무역특원을 확보하게 되는데 그 결과 소금 거래를 장악하게 된다.
그러나 기후의 영향으로 염전이 많이 사라져 13세기부터는 소금 매매를 집중하기 시작했다. 소금을 수입하기 시작하면서 소금을 생산하는 것보다는 소금을 사고 파는 것이 더 이익이라는 인식을 가지게 되었다. 상인들은 소금을 베네치아로 운반하고 다른 상품을 선적해서 돌아갔다. 이로인해 소금의 가격은 비싸졌지만 무역은 더 활발해져 큰 경제력을 얻게 되었다.
그렇게 13세기 후반이 되었을 때, 유럽에서 가장 번성한 도시가 되었다. 3,6000여의 선원과 3300여 척의 배를 운항하며 지중해 상권을 장악한 것이다. 결국 소금으로 시작해 교역으로 완성된 베네치아는 그 교역을 통해 부를 창출했다. 베네치아 정부 또한 소금을 생산하지 않고 소금 무역을 규제함으로써 이익을 얻었다. 이 지역은 결국 향료무역과 곡식무역의 선두가 되었다.
후기 르네상스 시대에는 국제 무역 중심지로서의 위치를 상실했고, 1866년 제3차 이탈리아 독립 전쟁 이후 이탈리아의 영토로 흡수된다.
베네치아-마르코폴로 공항에서 내려 리베르타 다리를 건너서부터 베네치아의 관광이 시작된다. 보통 베네치아를 둘러보고 무라노로 이동후(약 15분이 걸린다고 함), 무라노를 구경하고 부라노로 이동 후(약 40분이 걸린다고 함) 거기서 관광을 끝낸다고 한다.
이 중심이 되는 섬은 리알토 섬인데, 이 섬을 역s자로 가로지르는 대운하(Canal Grande, 카날 그란데)를 비롯해 150여 개의 운하가 존재하며, 본토와 철교와 다리로 연결되어 있지만 그 또한 섬 어귀까지만 연결되어 있으며, 자동차 조차도 시내로 들어올 수 없다. 또 이곳은 이탈리아의 베네토 주의 주도이라서 정치적으로도 중요한 도시다. 석호의 사주(沙洲, 모래섬)으로 지반이 약해 최근 일어나고 있는 지반침하와 오염이 이곳의 사회적 무제가 되었다,
참고로 오버워치에 '리발토'라는 전장이 있는데, 여기서 따온것이다.
도르소두로 지역의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페기 구겐하임 컬렉션)을 제외하고 주로 볼거리는 산 마르코 지역에 있다.
그럼 표시된 관광지 몇개를 살펴보자.
1. 성 마르코 성당의 성 마르코와 사자상
828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한 수도원을 방문한 상인들이 성 마르코(마가)의 유해를 베네치아로 훔쳐온 것이 정체성 확립의 계기가 되었다. 976년에 불에 한 번 타고, 12세기에 현재의 모습으로 재건축했다. 복음서를 쓴 4명의 성인(마태, 마가, 누가, 요한)이자 그리스도의 12사도 중 한 명인 성 마르코를 수호 성인으로 삼았다. 베네치아는 독립과 자유에 기반한 안전한 무역로 확보와 유지를 국가 전략으로 삼았다.
참고로 로마의 수호성인은 성 베드로, 피렌체는 셀례자 성 유한이다.
2. 두칼레 궁전의 재판소와 탄식의 다리
두칼레 궁전은 베네치아 최고 통치차였던 도제(Doge)의 관저 겸 집무실이었다. 대평의회, 원로원, 재판소 등 정부 기구들의 업무장소이기도 했다. 9세기초 비잔틴 양식으로 건설되었으며, 불타고 재건되기를 반복하며, 고딕양식을 이용해 1442년 현재의 모습으로 재건되었다. 비잔틴 제국의 영향으로 흰색의 외벽, 분홍색 대리석에 기하학적 문약 장식이 있으며, 둥근아치(1,2층은 하얀 석재로, 3,4층은 붉은 베로 되어 있으며, 대리석으로 마감했음)도 있다.
고딕 양식에 비잔틴 양식과 르네상스 양식을 융합했는데 이를 베네치아 고딕(venetian gothic) 양식이라고 한다.
3.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
20세기 독일 화가 막스 에른스트(Max Ernst,1891~1976))의 부인이었던 마거릿 "페기" 구겐하임(Marguerite "Peggy" Guggenheim, 1898~1979). 이곳의 미술품들은 페기 구겐하임이 죽고 1년 뒤인 1980년부터 대중들에게 공개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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