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시대 마을을 느껴보자~ 정관박물관 소두방의 마을
본문 바로가기

어원과 표로 보는 역사 시리즈/어원과 표로 보는 한국사, 한국문화

신라시대 마을을 느껴보자~ 정관박물관 소두방의 마을

728x90

1. 정관박물관 소두방의 마을

정관박물관 야외전시공원 내에 조성된 '소두방의 마을'은 기장 청강·대라리 유적과 고촌 유적의 발굴조사 결과를 토대로 삼국시대의 두 마을을 재현한 곳입니다.

'청강·대라마을'은 신성한 공간임을 알려주는 나무 울타리와 대형 제사건물, 부뚜막이 설치된 큰살림집, 살림도구를 제작한 작업장 등을 축소·재현하여 공원 좌측에 배치했구요. '고촌마을'은 먹거리와 씨앗 보관을 위한 고상창고, 식수공급용 우물, 사방을 조망할 수 있는 망루를 복원하여 공원 우측에 조성했다고 합니다.

왼편엔 낮은 집들이, 오른편엔 생활 필수 시설 같은 건물들이 들어서 있습니다.

안내판을 따라 우선 쭉 올라가 고촌마을 쪽으로 갔습니다.

 

1-1. 고촌마을

망루입니다. 저곳에 올라가 바깥을 지킬 땐 어떤 느낌이 들었을까요?

망루(watchtower)
고촌 유적 I지구 52호 굴립주 건물지

삼국시대
중심기둥 구멍 4개와 보조기둥 구멍 2개가 확인된 고상식 건물지로, 중심기둥간의 거리는 4m 내외이다. 지름 2m 크기의 구덩이를 V자상으로 1..5m 가량 깊게 판 다음, 지름 약 0.4m의 굵은 나무기둥을 세우고 구덩이 안쪽에 점토를 층층이 다져 단단히 하였다. 나무기둥의 밑동은 약간 좁아지게 다듬고 불에 그을려 습기와 해충으로 나무가 썩는 것을 방지하였다. 중심기둥 사이에 보조기둥을 배치하여 건물의 견고함을 더하였다. 좁은 면적에 비해 굵고 튼튼한 나무기둥을 사용한 점을 보아 사방을 조망할 수 있는 높은 망루로 추정된다.

망루 옆에는 우물과 고상창고가 있습니다.

생명의 상징인 우물입니다.

우물(well)
고촌 유적 I지구 1호 우물

통일신라시대
고촌 유적에서는 삼국시대~통일신라시대에 사용된 9기의 우물이 조사되었다.
이 우물은 지름 1m, 잔존깊이 3.2m로 고촌 유적에서 가장 크다. 우물은 땅을 넓게 파다가 아래로 내려갈수록 점점 좁아지고 바닥에 자갈을 깔았다. 구덩이 안쪽에 사람머리보다 큰 돌을 한 단씩 쌓으면서 돌과 구덩이 사이를 점토로 메워 단단하게 만들었다. 우물 안에서느 통일신라시대에 사용된 큰항아리와 병모양토기, 기와 조각이 출토되었다. 우물 주변에 크고 작은 돌을 둥글게 깔아 작업공간을 마련하였다.

* 우물은 안전사고에 대비하여 원래 깊이보다 얕게 복원함

고상창고(elevated storage)
고촌 유적 I지구 43호 굴립주 건물지

삼국시대
고촌 유적에서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떨어져 있는 기둥구멍이 다수 확인되었다.
이는 습기나 짐승의 습격을 피해 건물의 바닥을 기둥으로 받쳐 지면보다 높게 지은 고상식 건물의 흔적이다. 고촌 유적 I지구에서는 이러한 형태의 건물 52동이 조사되었으며, 주로 곡식을 저장하는 창고로 사용되었다. 이 고상창고는 길이 5.3m, 너비 4.4m의 긴 네모꼴을 띠며, 9개의 중심기둥과 보조기둥 3개로 받친 정면 2칸, 측면 2칸의 건물이다. 건물을 받치는 나무기둥은 건물의 침하를 방지하기 위해 기둥의 아래쪽에 홈을 내어 가공하였다.

고상창고로 올라갔어요

내부는 당시에 쓰인 가죽, 옷감, 곡식 가마니, 곡식 항아리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도 먹었던 콩, 보리와 같은 5종류의 곡식들도 저장되어 있었습니다.

고상가옥 뒷편 저 멀리엔 팔각정도 있습니다~

여타 다른 팔각정과 다르게 의자는 없지만, 나름 뷰가 괜찮은 곳입니다~

 

1-2. 청강·대라마을

이제 청강·대라마을로 가보려고 합니다.

작업장(workshop)
청강·대라리 유적 III지구 D구역 2호 지상식 건물지

삼국시대
땅을 파지 않고 벽을 세워 만든 건물이다. 타원형을 그리듯 돌아가는 11개의 기둥구멍이 확인되어 길이 6.0m, 복원너비 4.5m 가량의 중간 규모로 추정된다. 벽은 나무기둥 사이에 점토를 채워 세웠다. 건물 중앙에 지붕을 받치는 기둥 3개가 나란히 위치한다. 살림집들 사이에 자리하고 있지만, 내부에서 부뚜막·고래와 같은 취사·난방시설은 물론 작은 화덕자리도 확인되지 않아 사람이 거주하기 위한 살림집보다는 마을 주민들이 함께 사용한 작업장으로 추정된다.

창고 옆에 있는 둥근 화단이 아름다워 한 컷 찍어봤어요~

창고 (workshop)
청강·대라리 유적 III지구 B구역 3호 지상식 건물지

삼국시대
땅을 파지 않고 둥근 원을 그리듯 중심기둥과 보조기둥을 세우고 벽체를 만들어 지은 건물이다. 지붕의 형태는 둥글게 돌아가는 벽을 따라 서까래와 이엉을 얹은 원추형으로 추정된다. 건물의 규모는 길이와 복원너비 모두 6.5m 내외로 중간 정도이다. 건물 내부에서 취사·난방시설이 전혀 확인되지 않고, 주거공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하며 주변에서 여러 기의 저장구덩이가 함께 조성된 점으로 보아 살림집보다는 물품을 보관하는 창고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살림집(home)
청강·대라리 유적 II지구 5호 수혈 건물지

삼국시대
모서리가 둥근 네모난 형태로 땅을 얕게 파고 벽을 세워 만든 건물이다. 길이와 너비 모두 7.7m 내외로 중간 규모이다. 집 안쪽의 네 모서리에 큰 기둥과 작은 기둥을 함께 세워 지붕을 받쳤다. 구덩이를 따라 기둥을 촘촘하게 세우고 기둥과 기둥 사이에 짚이 섞인 흙을 메워 벽을 만들었다. 기둥과 벽을 보강하기 위해 벽 바깥에 점토를 덧바르기도 하였다. 바닥은 점토를 깔아 편평하게 다진 다음 한 번 더 점토를 발랐다. 건물 내부에서 불에 탄 벽체와 나무들이 출토되어 화재에 의해 무너진 것으로 추정된다.

큰 살림집(home)
청강·대라리 유적 IV지구 8호 수혈 건물지

삼국시대
길이 13.7m, 복원너비 8.5m 규모의 네모난 형태로 1m 가량 땅을 파고 벽을 세운 대형 건물이다. 벽은 큰 기둥 사이에 작은 기둥을 조밀하게 세우고 점토를 발랐으며, 바닥은 점토를 깔아 다졌다. 집 안에는 아궁이가 달린 부뚜막과 고래를 갖춘 쪽구들이 서벽에서 북벽을 따라 길게 설치되었다. 구들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보조 화덕자리가 하나 더 확인되었다. 이 집은 3차례에 걸쳐 새로 지어졌는데, 지을 때마다 규모가 늘어나 청강·대라리 유적의 수혈 건물지 중 가장 크다. 고래의 벽체 일부가 그대로 넘어져 있고 불에 탄 점토와 목탄이 다량 출토되어 화재 때문에 무너진 것으로 추정된다.

지하로 땅이 조금 파진 큰 살림집으로 들어가면 매우 넓은 공간에 다양한 도구들이 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농기구, 식기 도구도 있구요.

아궁이, 식재료, 조리 도구도 있어요~

이땐 자연물을 많이 먹었다고 합니다. 생선, 꽃게, 채소, 과일 같은 것들이죠~

식탁 앞에 화로 같은 곳도 보이네요~

다양한 천, 바구니, 광주리, 항아리들도 보입니다~

당시 마을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를 살짝 살펴봤으니 이제 신성한 구역으로 들어가려고 합니다.

울타리와 고상창고(fence and elevated storage)
청강·대라리 유적 IV지구 목책과 4호 지상식 건물지

삼국시대
청강·대라리 유적의 북쪽 구릉 정상부에서는 중심건물인 대형 제사건물 외에도 작은 고상창고와 이를 둘러싼 울타리가 확인되었다. 420여 개 이상의 기둥을 세워 만든 울타리는 당초 구릉 전체를 감싸는 4열로 만들어졌다가 이후 구릉 일부에만 2열을 추가하였다. 내부 규모는 울타리의 가장 바깥을 기준으로 길이 74m, 너비 62m 정도이다. 울타리의 출입로는 지그재그로 배치하여 출입을 어렵게 하였으나, 출입로 끝에 다다르면 대형 제사건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울타리 안쪽에서는 제사물품을 보관하는 장소로 추정되는 작은 고상창고의 흔적도 확인되었다.

조금 올라가다 보니 왼편에 작은 고상창고가 보입니다.

내부에는 제례용 물품들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거기서 조금 더 올라가면 대형 제사건물이 나옵니다.

대형 제사건물(commemorative rites building)
청강·대라리 유적 IV지구 대형 지상식 건물지

삼국시대
양달산의 정상부에 세워진 길이 25.8m, 너비 4m의 대단히 크고 웅장한 건물이다.
건물은 2열을 이루는 39개의 크고 작은 기둥구멍과 굵은 나무기둥의 흔적으로 보아 건물의 바닥을 기둥으로 받쳐 지면에서 띄운 형태로 추정된다. 건물의 오른편에서는 땅을 편평하게 고르고 불을 피운 흔적과 함께 항아리·굽다리접시 조각이 출토되어 이곳에서 제사음식을 마련한 것으로 짐작된다. 건물의 규모와 제사 음식을 준비한 흔적, 이를 둘러싼 여러 겹의 울타리는 이곳이 마을제사를 지내던 신성한 공간이었음을 알려준다.

* 건물은 1/2 축소복원 함

내부는 생각보다 단조롭습니다. 뭐... 종교라는 것이 사실 형태보단 믿음이 중요한 것이죠. 아님  당시 시대 상으로는 이런 모양이 최고의 신성함을 표현한 것일 수도 있구요~ 정관박물관의 뒤편 작은 공원에 당시 삼국시대~통일신라시대의 생활상을 살짝 경험해 볼 수 있어서 정말 즐거웠습니다~ 햇빛이 덜 더워지면 정관박물관에 오신 김에 같이 오시면 좋을 듯하네요~~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