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로 태어나 노예로 죽는 가치 없는 인간의 삶? 바튜시코프의 <너는 그가 무엇을 말했는지 아는가>
본문 바로가기

언어/러시아어

노예로 태어나 노예로 죽는 가치 없는 인간의 삶? 바튜시코프의 <너는 그가 무엇을 말했는지 아는가>

728x90

1. 바튜시코프의 <너는 그가 무엇을 말했는지 아는가(1820')>

Ты знаешь, что изрек, 너는 (그가) 무엇을 말했는지 아는가,
      ‎  Ты знаешь, что изрек,
Прощаясь с жизнию, седой Мельхиседек?
‎        Рабом родится человек,
‎              Рабом в могилу ляжет,
       ‎ И смерть ему едва ли скажет,
Зачем он шел долиной чудной слез,
‎        Страдал, рыдал, терпел, исчез.
      ‎  너는 (그가) 뭐라고 했는지 아는가,
백발의 멜기세덱이, 삶과 작별을 고하면서?
‎        사람은 노예로 태어나고,
‎              노예로 무덤에 누으며,
       ‎ 그리고 죽음은 그에게 거의 말하지 않을 것이니,
어째서 그는 눈물의 기적의 골짜기로 걸어갔고,
‎        괴로워하고, 통곡하고, 인내하고, 사라졌는지.

 

2. 바튜시코프의 <너는 그가 무엇을 말했는지 아는가(1820')> 해설

2-1. <너는 그가 무엇을 말했는지 아는가>와 바튜시코프의 정신병, 그리고 죽음

1818년 11월 말, 콘스탄틴 바튜시코프(Константин Батюшков, 1787~1855)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떠나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에 있었습니다. 이탈리아는 그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을 뿐 아니라, 당시 로마에 살던 화가 실베스트르 셰드린(Сильвестр Щедрин, 1791~1830)과 작가 오레스트 키프렌스키(Орест Кипренский, 1782~1836)와 같은 러시아 예술가들과의 만남을 가진 멋진 장소였죠. 그러나 그것도 잠시 고향에 대한 향수가 짙어지며 우울함도 같이 오게 됩니다. 그리고 곧 공직으로 복귀하게 되었죠.

 

그러다 원래 앓고 있던 병을 치료하기 위해 1821년 봄에 휴가를 받고 독일의 한 바닷가로 떠났습니다. 유전성이었던 그의 정신 질환은 조금씩 그에게 영향을 주고 있었습니다. 외적으로는 표트르 플레트네프(Пётр Плетнёв, 1792~1866)가 익명으로 <조국의 아들(Сын отечества)>에 발표한 <로마에서 온 바튜시코프(Батюшков из Рима, 1821)>에서의 그의 평가 또한 바튜시코프를 힘들게 했습니다.

 

결국 그는 어떤 비밀의 적들에게 쫓기고 있다고 생각하고 사람들을 의심하기 시작했고, 1821년의 겨울을 독일의 드레스덴(Dresden)에서 보내며 바튜시코프 연구자들에게 최고의 칭송을 받는 그의 인생 마지막 시인 <멜기세덱의 격언(Изречение Мельхиседека)>으로도 불리는 <너는 그가 무엇을 말했는지 아는가(Ты знаешь, что изрек)>을 발표합니다.

 

1822년에 그의 질병은 더욱 악화되어, 봄에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잠깐 돌아왔다가 캅카스와 크림으로 이동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는 정말 미쳐버려 크림의 심페로폴(Симферополь)에서 지속적으로 자살시도를 하는 지경에 까지 이르게 됩니다.

 

결국 그는 1823년, 페테르부르크로 끌려가 Е. Ф. 무라비예프(Е. Ф. Муравьев)의 보호를 받았다가, 1824년에는 알렉산드르 1세의 후원으로 독일 작센(Sachsen)의 정신병원 소넨슈타인 성(Schloss Sonnenstein)으로 보내집니다. 그래도 상태가 좋아지지 않자 결국 그는 4년 뒤 페테르부르크로 되돌아왔죠. 그런데 신기하게도 급성 발작은 거의 멈췄고, 마음도 정신도 고요하고 차분해집니다.

 

이후, 5년간 모스크바에서 살았는데, 이 때 알렉산드르 푸시킨을 잠깐 만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푸시킨은 그와의 만남에서 받은 인상에서 영감을 받아, <신이시여, 저를 미치게 하지 말아요(Не дай мне Бог сойти с ума, 1833)>를 쓰게 됩니다. 어찌 되었든, 1833년 바튜시코프는 모든 직위에서 해고되었고, 결국 그의 조카 Г. А. 그레벤스(Г. А. Гревенс)가 있던 볼로그다(Вологда)로 거처를 옮겨 1855년 티푸스(тиф)로 사망할 때까지 22년간 정신적으로 힘든 상태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볼로그다에서 약 5km 떨어진 스파소-프리루츠키 수도원(Спасо-Прилуцкий монастырь)에 묻히게 됩니다.

 

2-2. 멜기세덱 그리고 바튜시코프의 환멸

아브람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 한 왕들을 쳐부수고 돌아올 때에 소돔 왕이 사웨 골짜기 곧 왕의 골짜기로 나와 그를 영접하였고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소돔 왕이 아브람에게 이르되 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은 네가 가지라
아브람이 소돔 왕에게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께 내가 손을 들어 맹세하노니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하게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실 한 오라기나 들메끈 한 가닥도 내가 가지지 아니하리라
오직 젊은이들이 먹은 것과 나와 동행한 아넬과 에스골과 마므레의 분깃을 제할지니 그들이 그 분깃을 가질 것이니라

- <창세기> 14장 17~24절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주의 권능의 규를 내보내시리니 주는 원수들 중에서 다스리소서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주의 오른쪽에 계신 주께서 그의 노하시는 날에 왕들을 쳐서 깨뜨리실 것이라
뭇 나라를 심판하여 시체로 가득하게 하시고 여러 나라의 머리를 쳐서 깨뜨리시며
길 가의 시냇물을 마시므로 그의 머리를 드시리로다

- <시편> 110편

그 외에도 <히브리서> 등에도 등장하는 멜기세덱 혹은 말키세데크(מַלְכִּי-צֶדֶק : 정의의 왕)이라는 부모도, 족보도, 출생 배경도, 생의 마지막도 알 수 없는 이스라엘 출현 이전에 살렘(예루살렘으로 추정)의 왕이자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입니다. 그의 이름은 히브리어로 'מלך([말크] : 왕)와 צדק([체덱] : 정의)'가 합쳐진 것으로, 정의의 왕이라는 뜻입니다.

 

<창세기>에 따르면, 아브람(이후 아브라함으로 개명)이 가나안을 이기고 돌아올 때 멜기세덱은 그를 환대하면서 축복하였고, 그때 아브람이 멜기세덱에게 전리품의 10분의 1을 바쳤다고 합니다. 이는 십일조의 유래가 됩니다.

 

이 시에서 멜기세덱은 삶과의 작별을 고하면서 '인간은 노예로 태어나 노예로 죽는데, 그 과정 속에서 우리가 '왜 괴로워하고, 통곡하고, 인내하고, 사라졌는지'를 알지 못한다고 표현합니다. 시인은 그의 입을 통해 '자유롭지도 못하고, 왜 사는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인간'과 '인간이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환멸'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바튜시코프는 의심병을 포함한 정신질환을 앓으며, 사람과 삶에 대한 회의적인 경험과 생각을 많이 겪었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생각한 듯 합니다. 그렇게 그의 작품은 여기서 마무리 됩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