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동구 초량동 상해거리의 북문인 동화문(東華門)입니다. 중국 청나라의 건축 양식으로 상해문의 보조문 역할을 하고 있죠. 이 문 뒤에는 '래래강녕(來來康寧)'이라 적힌 현판이 붙어있는데 '이곳을 드나드는 사람마다 몸이 건강하고 마음이 편안하기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합니다.
이 문을 들어오면 중국풍으로 리모델링된 초량1동주민자치센터가 눈에 띕니다.
상해거리[上海街]에 대한 지도입니다.
십(十) 자 모양으로 이루어진 이곳은 부산역 지하철역 앞 상해문을 중심으로 북쪽으로 동화문으로 연결되며, 가운뎃 양쪽 길도 양끝 아치문들까지 이어지는 형태로 구성됩니다.
이 상해거리의 환경장식물 안내도로도 대략적인 상해거리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상해거리의 중심부에는 '중앙 상징물'이 있습니다. 정방형 기둥 상부에 비천상(飛天像)을 새겨놓은 것으로 이 문양은 당나라 돈황 막고굴(莫高窟)의 꽃비를 뿌리며 하늘로 올라가는 천녀들을 표현한 것이라고 합니다.
내부에서 위로 올려다보면 용그림도 볼 수 있습니다.
상해문쪽(상해거리 남문쪽)에서 북쪽(동화문 쪽)을 바라봤습니다. 이쪽에는 중국의 여러 인물들의 동상이 세워져 있는데요. 중앙 상징물 바로 앞에는 중국의 대표적인 경극(국극)인 '패왕별희'의 주인공 패왕(항우)과 별희의 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이 패왕별희라는 경극은 사면초가에 처한 패왕이 초나라의 패망을 탄식하자 그의 애첩 별희는 작별의 시간이 왔을 때 자진(自盡, 스스로 (목숨을) 다함)하고 혼자 탈출한 패왕도 자결하는 비극적 결말을 그린 고전 경극입니다.
패왕별희 우희(虞姬, 생년월 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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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우와의 비극적인 로맨스로 잘 알려진 항우의 연인으로, 그 아름다움과 항우에 대한 충심으로 후세의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항우와 유방의 마지막 결전에서 항우의 군대가 한나라 군사에게 포위되어 패색이 짙어지자 우희는 자신이 항우의 짐이 될 것을 우려하여 자결한다. | |
漢兵已略地 四方楚歌聲 大王意氣盡 賤妾何聊生 |
한나라 병사가 이미 모든 땅을 차지했고 사방에서 들리는 것은 초나라 노랫소리 대왕의 뜻과 기운이 다하였으니 천첩이 어찌 살기를 바라리오 |
패왕별희 항우(項羽, BC 232년 ~ BC 20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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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나라 멸망 후 다시 초나라를 세우고 서초패왕을 자처하며 한나라 왕 유방(劉邦)과 천하를 두고 다투었다. 힘이 장사이며 기개가 있고 용맹한 장수였다고 전해지지만 성격이 급하고 인망이 없었던 것으로 평가받는다. 5년에 걸친 초한 전쟁의 막바지, 해하 전투에서 적군과 싸우다가 스스로의 목을 베어 최후를 맞이한다. | |
力拔山兮氣蓋世 時不利兮騅不逝 騅不逝兮可奈何 虞兮虞兮奈若何 |
힘은 산을 뽑아내고 기운은 세상을 덮을 만한데 시운은 따르지 않고 애마 추(騅)는 나아가지 않는구나 추(騅)가 나아가지 않으니 이를 어찌하면 좋겠는가 우희여 우희여, 그대를 어찌할 것인가 |
패왕별희의 두 주인공의 동상보다 더 앞에는 장비와 관우의 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참고로 해당 비문에는 '유비(劉備), 관우(劉備)'라고 적혀 있는데, 관우의 한자는 완전히 틀렸다. 이 비석을 만들 때 앞의 劉備(유비)라는 글자를 복사 붙여 넣기를 해서 이렇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이런 오류는 빠르게 해결되면 좋겠다.
장비(張飛) |
장비(~221년 6월(음력))는 중국 후한 말의 무장으로, 자는 익덕(益德)이며, 탁군(涿郡) 사람이다. 형제같은 유비(劉備), 관우(關羽)와 생사고락을 함께 하며 이름을 펼쳤다. 무용이 뛰어나서 관우와 함께 만인지적이라 불렸다. |
관우(關羽) |
관우(~219년 12월(음력))는 중국 후한 말의 무장으로, 자는 운장(雲長)이며, 사례(司隸) 하동군(河東郡) 해현(解縣) 사람이다. 형제 장비(張飛)와 더불어 유비(劉備)를 오랫동안 섬기며 촉한(蜀漢) 건국에 지대한 공로를 세웠다. |
상해문쪽에서 중앙구조물을 바라본 모습입니다. 4개의 동상이 세워져 있는 모습을 다시 확인할 수 있죠~
상해문의 뒷편에는 옥란원(玉蘭苑)이라는 글자가 쓰여있습니다. 여기서 옥란(玉蘭)이란 백목련을 말하는데, 기원후 600년 이후부터 중국 사찰에서 길렀다가, 당나라에서는 '깨끗함의 상징'이라 여겨져, 황제가 있던 궁전에 심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그런 깨끗한 옥란이 심어져 있는 원(苑)은 이곳 상해거리를 귀중한 장소라고 비유한 것이겠죠.
부산시가 골조공사를 담당하고 중국 측의 자기 부담으로 제작된 이 상해문은 1999년 8월 6일 기공식을 가집니다.
1993년 중국 상하이시와 부산시가 자매도시협정을 체결하며 상하이시가 양도시간의 우호를 위해 '부산거리' 설립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1999년 상해문 건립을 시작으로 상해거리(상하이거리)를 본격적으로 세우게 됩니다.
다만, 부산일보에 따르면 상하이에 세울 예정이던 '부산거리'는 무산되어 버려 아쉬운 결과가 나타났긴 했네요...
어찌 되었든, 부산 동구 초량동에는 청나라 영사관이 세워진 것을 계기로 1993년 부산시와 상하이시가 자매결연을 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상해거리가 지어졌고, 상해문, 동화문 등이 세워져 있습니다. 이 이국적인 건축물들은 부산역 주변을 관광하시거나 산책하신다면 한번쯤 볼만 한 것 같습니다~
11월 11일 광곤절(광군제, 光棍节, 光棍節)를 맞아 이 거리는 밤에 화려하게 변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중국의 기념일이 되면, 밤에 등을 달아 거리는 화려하게 빛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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