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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중구 중앙역 12번 출구로 나와 작은 철조 건물을 빙 둘러 남쪽 방향을 바라보면 비석 하나가 있습니다!
2018년 12월 24일, 부산광역시 중구청은 (구)부산역이 있던 이 자리에 '부산역전 대화재 표지석'이자 '옛부산역터 표지석'을 세웠습니다.
비석의 양옆에는 1954년 11월 위트컴 장군을 기리기 위해 부산시민들이 세운 지금은 없는 공덕비 모습과, 부산역전 대화재 이후의 현장 모습 사진이 붙어 있습니다.
부산역전 대화재(Busan Big Fire) |
1953년 11월 27일 밤 8시경, 부산시 중구 판자촌 일대에서 발화하여 당시 영주동·동광동·중앙동·대청동 일대를 전소시킨 대화재 사건이다. 29명의 사상자가와 3만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하고 엣 부산역, 우체국, 신문사, 방송국 등 도시 중심 시설이 전소하는 피해가 발생하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한국전쟁 중 형성되었던 판잣집 철거가 본격적으로 논의되었고, 전후(戰後) 부산의 도시계획과 건축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특히, 당시 화재 이재민을 위해 지체없이 25,000명분의 식량과 의복, 임시숙소를 제공하고 주택, 병원을 짓는 등 유엔군 부산지역 군수사령관 '리차트 위트컴(Richard S. Whitcomb)' 장군의 미담이 전해지고 있다. |
거대한 화마는 부산 주요한 곳을 덮쳤고, (구)부산역, 부산우체국 등 주요 건물과 함께 주택 3132채가 다 타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부산역은 임시역사로 사용하다가 1965년에 영업정지를 했고, 초량역과 합쳐져 부산진역이 철도역 역할을 하다가, 1969년부터 지금의 위치에서 새롭게 영업을 이어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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