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진구의 동 명칭 유래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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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원과 표로 보는 역사 시리즈/어원과 표로 보는 한국사, 한국문화

서울 광진구의 동 명칭 유래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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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울특별시 광진구의 행정구역

서울에서의 광진구의 위치 (출처 : 전북일보)와 광진구의 법정동(출처 : 광진구립도서관)

서울특별시 광진구는 총 7개의 법정동으로 이뤄져있는데, 가나다 순으로 정리하면 '광장동, 구의동, 군자동, 능동, 자양동, 중곡동, 화양동'입니다. 원래 광진구는 성동구에 속했는데, 1995년 3월 1일, <법률 제4802호(서울특별시광진구등9개자치구설치및특별시·광역시·도간관할구역변경등에관한법률)>의 시행에 따라, 성동구에서 분구되어 신설된 것이죠.

<대동여지도>에 쓰인 광진(廣津). 그 바로 오른편 아래엔 송파(松坡), 오른편 위엔 아차산(峨嵯山)이라 쓰여 있다. (출처 : 대동여지도)

구명 광진(廣津)은 '광나루(광주로 가는 나루 or 넓은 나루)'에서 유래했는데, 현재의 광진구 광장동 한강변에 있던 나루터였습니다. 지명에서 이곳이 한강 물류의 중심지 중 하나였던 것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그럼 이 구에 속한 7개의 법정동의 유래를 알아봅시다.

 

2. 광진구의 동 명칭 유래

2-1. 광장동 : 광진리+장의리

광진구에서의 광장동의 위치 (출처 : 네이버지도)

광장동이란 이름에서 '광장'은 2개의 행정구역이 합쳐진 것입니다.

조선시대 양주군 고양주면의 광진(廣津)과 장의동(壯儀洞)을 합쳐 광장리(廣壯)라고 부른 것이 지금의 이름의 직접적인 유래가 된 것이죠.

2-2. 구의동 : 구정동+산의동

광진구에서의 구의동의 위치 (출처 : 네이버지도)

구의동 또한 '광장동'처럼 두 행정구역이 합쳐진 이름에서 유래했습니다.

1914년, 경기도 양주군 고양주면의 구정동(九井洞)과 산의동(山宜洞)을 한곳으로 편입하면서 '구의리(宜里)'라고 불렀는데, 이 이름이 지금의 '구의동'의 직접적인 유래가 됩니다.

 

2-3. 군자동 : 임금의 아들을 낳은 곳

광진구에서의 군자동의 위치 (출처 : 네이버지도)

누군지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은 어떤 왕이 행차를 하다 동2로변(東二路邊)에 묵게 되었는데, 그날 밤 같이 왔던 왕비가 옥동자를 낳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임금(君)의 아들(子)'을 낳은 마을이라고 해서 군자리(君子里)라고 불렀는데, 그 이름이 지금까지 이어져 군자동(君子洞)이라고 부릅니다.

 

2-4. 능동 : 순종효황후(황태자비 민씨)의 릉이 있던 곳

광진구에서의 능동의 위치 (출처 : 네이버지도)

1904년, 대한제국 황태자 이척(순종 효황제, 1874~1926)의 첫번째 황태자비였던 황태자비 민씨(후의 순명효황후(純明孝皇后))가 사망하자, 양주 용마산 기슭, 지금의 서울어린이대공원 자리에 유강원(裕康園)을 세워 안장하며, 인근 지역을 능골(陵-)이라 부른 것에서 현재의 동명의 기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서울 광진구 능동에 위치했던 순명효황후의 묘소명 변천사
유강원(裕康園)
(1904~1907)
유릉(裕陵)
(1907~1926)

1907년, 황태자 이척이 순종 효황제로 즉위하며 그녀도 순명효황후(純明孝皇后)로 격상되었고, 그렇게 이 유강원은 유릉(裕陵)이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이후 1926년 순종 효황제가 붕어하자 이곳에 묻힌 순명효황후는 남편과 합장으로 현재의 남양주시 금곡동의 유릉(裕陵)으로 옮겨지며, 이 땅은 잠시 공터가 되었습니다.

 

2-5. 자양동 : 자마장리(암말을 키우는 곳이 있던 마을)

광진구에서의 자양동의 위치 (출처 : 네이버지도)

조선시대 이곳에서 말 천마리를 기르면 용마(龍馬)가 난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곳에서 자마( 雌馬, 암말)을 기르던 자마장(雌馬場)이 있었습니다. '자마장이 있는 마을'이란 뜻에서 이곳을 자마장리(雌馬場里)라고 불렀죠. 위클리서울에 따르면 이 명칭은 1936년까지도 이어졌는데, 일제의 행정구역정비사업 과저에서 음이 바뀌며 자양동(紫陽洞)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2-6. 중곡동 : 능동과 면목동의 가운데에 있는 곳

광진구에서의 중곡동의 위치 (출처 : 네이버지도)

이곳 지명은 현재의 광진구의 능동과 중랑구의 면목동 혹은 능동과 군자동의 가운데에 있다고 해서 간뎃골[중곡, 中谷]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그렇게 중곡리(中谷里)라 불리게 된 것이 현재 동명의 유래가 되었습니다.

2-7. 화양동 : 화양정이 있던 곳

광진구에서의 화양동의 위치 (출처 : 네이버지도)

조선시대 이곳에 세종이 1432년에 살곶이벌[箭串平]의 말목장을 감상하거나 군사적으로 중요한 말의 양육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화양정(華陽亭)을 지었습니다. 이 이름은 <주서>의 '말을 화산의 볕(華山之陽)으로 돌려보낸다(歸馬于華山之陽)'란 글귀에서 따온 것이라고 하죠. 이 정자는 쭉 이어져오다 1911년 낙뢰를 맞아 건물이 무너져 지금은 그 주변에 있던 느티나무 몇 그루로 그곳이 화양정 터임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역사가 긴만큼 단종과 명성황후와 관련된 설화도 있으니, 관심이 있으신 분은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이 화양동이 바로 이 정자의 이름에서 유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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