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수업에서 교수님께서 '소련 시대 문인들은 '사상죄', '사상문란죄'가 아닌 '무위도식죄'로 잡혀들어갔습니다'라고 말하셨습니다. 도대체 어떤 죄인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궁금해서 정리해봤습니다. |
1. 투네얏스트보(뚜니얃스트버, тунеядство)
어근 | 어근접미사 (suffix) | 어미 |
-тунеяд- (거저 먹는-) | -ств | -о |
직역하면 '거저(туне) 먹음(яд)'이란 뜻의 тунеядство [뚜니얃스트버]는 '무위(безделье)', '타인의 노동과 희생으로 살아가는 삶', '사회적 비용으로 기생하는 존재'란 뜻입니다. 이는 1961년부터 1991년까지 소련의 법에서 '성인의 신체능력이 있는 사람의 사회적으로 유용한 일을 회피하며 불로소득으로 살아가는 장기적 생활'을 일컬어지며 엄격히 처벌했습니다.
2. '기생충'같은 존재에 대한 인식이 넓어지다.
Дабы тем охоту подать к службе и оным честь, а не нахалам и тунеядцам получать.
그리하여, 봉사와 그 명예로 열망을 주기 위함이지, 철면피와 무위도식자로써 받는 것이 아니다.
- <관등표(Табель о рангах)>
러시아 제국에서는 '무위도식자(тунеядец)'라는 표현을 일부 입법 행위에서 썼지만, 그 자체로 위법이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1722년, 표트르 1세에 의해 제정된 14등급의 상관관계 목록을 적은 <관등표(Табель о рангах)>를 발표합니다. 여기에서도 법적으로 어떤 제약이 있었던 것은 아니며, 당시 사회도덕적으로 '무위도식하는 사람은 별로야...' 혹은 '저런 사람하고 사는 가족들이 참 불쌍해...'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종종 보였을 뿐이었죠.
오직 우리는 전 세계적 노동자
노동의 위대한 군대의,
땅을 소유할 권리를 가지며,
허나 기생충들은 - 결코 없으리!(Но паразиты — никогда!)
- <인터내셔널가>(1902, 러시아어 번역본)
1902년, 소련의 시인이자 번역가였던 아르카디 야코블레비치 코치(Аркадий Яковлевич Коц, 1872~1943)가 이후 1918년부터 1944년까지 소련의 국가가 되는 프랑스의 사회주의적 민중가요 <인터내셔널가(L'internationale, 1871)>를 러시아어 번역하면서 '(사회적) 기생충'이란 표현을 씁니다. 그렇게 소련 시대에 이르러서 '무위도식적 삶'이 개인이 아닌 사회 전체의 '기생충'이라고 인식되기 시작합니다.
3. 소련에서의 무위도식과의 전쟁
10월 혁명으로 러시아의 주요 도시에서 권력을 잡게 된 볼셰비키는 혁명 직후 사회주의를 신속하게 건설하기 위해 부유층의 재산을 몰수하며 인적 자원을 동원하는 경제 개혁에 착수합니다.
부자, 사기꾼, 무위도식자에 대한 실질적인 계산과 통제를 위한 수천 가지 형태와 방법들이 시골과 도시에서 코뮌, 소세포(공산당에서의 개개인) 자체적으로 개발되고 시험되어야 한다. 여기서 다양성은 사회의 한 목표의 성취에의 활력의 보장, 성공의 보석금이다. 모든 유해한 곤충으로부터의, (즉,) 사기꾼 벼룩으로부터, 부자 빈대로부터 더 많이 더 많이 러시아 땅의 청소이다. 한 경우에는, 부자 10명, 사기꾼 12명, 직장을 회피하는 노동자 6명이 감옥에 갇히게 될 것이다... 두번째 경우에는, 그들을 측간(화장실)을 청소하도록 하는 것이다. 세번째 경우에는, (그들이) 독방을 떠날 때, 노란색 티켓을 주어서, 모든 사람들이 그들 (행동의) 수정전까지 나쁜사람들처럼 그들을 감시하게 해주는 것이다. 네번째 경우에는, 그 자리에서 무위도식자에게 죄입혀 10명 중 1명을 총살하는 것이다. 다섯번째 경우에는, 그들은 다양한 수단의 조합을 생각해 낼 것인데, 예를 들어, 조건부 석방을 통해 부자, 부르주아 지식인, 사기꾼 및 난봉꾼의 시정 가능한 요소를 신속하게 교정할 것이다. |
-<블라디미르 레닌 전집>, 35권 204쪽 |
특히 레닌은 위의 인용문에서 확인할 수 있듯, 그의 논문 <어떻게 경쟁(대회)을 조직할 것인가?(Как организовать соревнование?, 1917.12~1918.01)>에서 특권적 계급의식에 깊게 사로잡힌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가혹한 조치를 적용할 필요성에 대해 말하는데, 레닌에 따르면 그 '가혹한 조치'란 기존과는 다른 형태의 프롤레타리아트의 재교육을 말합니다.
이러한 내용을 바탕으로 이는 <노동하고 착취당하는 인민의 권리 선언(Декларация прав трудящегося и эксплуатируемого народа, 1918.01)>에도 그 기본 원칙이 수립되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1918년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헌법(Конституция РСФСР 1918 года)>에서 '무위도식 등에 대한 처벌'에 대한 회의 내용이 채택되었으며, 그렇게 '근로소득이 없거나 노동 없이 이익을 취하는 사람들에 대한 '정치적 권리'를 박탈'시킵니다.
소련에서의 노동은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않는다'는 원칙에 따라 일할 수 있는 모든 시민의 의무이자 명예의 문제이다.
- <소련 헌법 12조(1936)>
즉, 직업, 능력, 전문 분야에 따라 직업 및 업무를 선택할 권리를 포함하여 훈련, 교육 및 사회적 요구를 고려해 국가가 정한 최소 금액 이상으로 양과 질에 따라 보수를 받으며 보장된 일자리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
- <소련 헌법 36조 118항>(1936)>
실제로 이런 법령에 따라 1951년 7월 23일, <반사회적, 기생충적 요소와의 전쟁 방법에 대하여>라는 건이 통과되었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유죄 판결을 받게 되었는데요. 당시에는 1952년부터 1954년까지 15만 명 이상이 '무위도식죄'로 연루되었는데, 그중 1%도 안 되는 1339명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1955년에 공화국 내무부에서는 1955년에 무위도식자 92,000명을 구금했으며, 1956년에는 89,254명을 무위도식자로 입건시키기도 하는 등 '노동의 중요성'을 강하게 강조하는 한편,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강압적으로 다스립니다.
(그들은) 지방인민법원의 명령에 따라 2~5년간 특별히 지정된 구역으로 추방되며, 비노동으로 얻은 재산을 몰수하며, 강제로 정착한 지역에서 필요한 노동력으로 투입한다.
- <사회적 유용한 일을 기피하고 반사회적 기생충적 생활 방식을 선도하는 자들에 대한 전쟁 강화에 관한 법 中>
그렇게 1961년 5월이 되자 공화국의 최고 소비에트 상임위원회는 <헌법 12조>에 따라 '사회적으로 유용한 일을 기피하고 반사회적 기생충 생활 방식을 선도하는 사람들(백수, 무위도식자, 기생형 인간 등)과의 전쟁을 강화한다'는 법령을 발표합니다. 이로 인해 1964년 중반까지 장애인 몇 명을 포함한 37000명이 거주지에서 추방당했죠.
그런데 정말 웃긴 점은 '사회적으로 유용한 노동'이라는 건 '정부가 공식적으로 승인한 형태의 노동'만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공공기관에 취직이 되었는데, 그 안에서 일이 없어 책을 읽는 것은 '사회적으로 유용한 노동'으로 취급했으며, 국가 지정 공식 근로 시간 이외에 돈을 더 벌기 위한 투잡 같은 경우는 '사회적으로 유용하지 않은 노동'으로 취급당하며 제도의 허점이 크게 드러납니다.
그럼에도 '무위도식'에 대한 탄압은 심해져만 갑니다.
경찰이 근무시간 중에 아무 상점이나 극장 등에 침범하여 해당 인원의 직장, 근무 시간 등을 확인하고, 특히 근무가 없는 경우에는 몇 개월 이상 '공식적인' 일을 하지 않았는지에 대해 캐묻고는 4개월 이상 일하지 않았음이 밝혀지면 <공화국 형법 209조>에 따라 '보르스(БОРЗ, 특정 직업 없음(без определённого рода занятий))'이라고 분류해 최대 4년간 노동교화와 관련된 강압적인 교육을 시키거나, 투옥시키기도 했죠...
이뿐 아니라 반체제 인사들에게도 '무위도식' 혐의를 씌워버려 직장에서 해고시키거나 수감시키며 소련의 정치적 위치를 강압적으로 강화시키기도 합니다. 그렇게 그들의 사회적, 정치적 입지를 줄여나갔죠.
사실 '문학'이라는 것은 근대까지도 대부분 '평생 땀 흘리지 않고 세대를 거쳐 얻어온 이익으로 살아가면서 정치, 경제, 사회, 예술 모든 분야를 이끌었던 '귀족층'의 소유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중세 봉건 경제 체제'가 흔들리고, '산업을 통한 자본주의'가 들어섭니다. 그렇게 자본을 가진 사람들은 자본이 없는 사람들에게 임금을 제공하며 노동력을 받으며 부를 축적했죠. 그럼에도 귀족은 존재했습니다. 자본가적 마인드를 수용해 자본가가 되거나, 아니면 남은 재산을 죽을 때까지 쓰면서 뒤쳐지거나 하면서 말이죠.
어쨌든 '자본을 통해 무위도식하는 집단'이나 '남은 재산으로 무위도식하는 집단'에 반대한 사회주의 세력은 이런 '무위도식(тунеядство)'에 대해 격렬한 혐오를 하게 됩니다. 당연히 그렇게 '땀 흘려 일하지 않고 벌어들이는 것을 혐오했을 거고 그러한 풍조는 사회주의적 마인드를 가진 소련 전반에 널리 퍼져 법제화되며 매우 엄격히 다루었죠.
문제는 자본가들 뿐 아니라 정말 능력이나 기회가 되지 않거나 사정이 있어 '어쩔 수 없이 일하지 않고 있는 자'와 '예술 활동을 업으로 삼은 자', '소련이라는 국가에 대해 반대하는 자'와 같은 소련 정부 입장에서의 무위도식자를 모두 '무위도식 혐의'를 씌워 처벌했던 것과 '공식 근무 시간에서 공식 근무지 내의 무위도식적 활동은 무위도식이 아니라고 인정'하거나 '비공식 근무 시간에서 비공식 근무지에서의 노동 활동에 대한 처벌'과 같은 법제 내 허점이었죠.
이 소련의 '무위도식 혐의'를 통해 소련 시절엔 얼마나 많은 탄압이 있었는지를 살짝 들여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이러한 법안은 소련이 망하면서 사라졌고, 이제 러시아 연방은 '땀을 적게 흘리면서도 돈을 벌 수 있는 것'을 인정해 주게 되며 많이 완화된 편이죠. 그래도 한 때의 아쉬움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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