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덕궁과 창경궁을 연결하는 창경궁 함양문입니다.
| 창경궁(昌慶宮, Changgyeonggung palace) |
| 본래 창경궁터에는 1418년에 세운 수강궁(壽康宮)이 있었다. 수강궁은 세종 때 상왕(上王) 태종을 위해 창덕궁 동편에 창건한 궁이었다. 1483년에 성종이 3명의 대비를 위해 이 터에 크게 궁궐을 다시 짓고 창경궁이라 불렀다. 창경궁은 창덕궁과 사실상 하나의 궁궐을 이루어 이 둘을 합쳐서 동궐(東闕)이라 하였고, 후원의 정원도 공동으로 이용했다. 창경궁은 창덕궁의 부족한 생활공간을 보충하여 왕과 왕비뿐 아니라 후궁, 공주, 궁인의 처소로도 사용했다. 경복궁처럼 일정한 원칙을 좇아 경영된 궁궐과 달리, 창경궁은 건축 형식과 제도 면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세워지고 이용된 궁궐이었다. 궁궐은 남향이 원칙이지만, 창경궁의 중심 부분은특이하게 동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동쪽에 왕실 동산인 함춘원(含春園)과 낙산(駱山)이 자리를 잡고 있어 그곳을 바라볼 수 있도록 지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생활공간들은 남향으로 배치되어 이다. 창경궁은 자연 지형을 따르면서도 생활의 편의를 추구하여 궁궐을 조성했기 때문에 아름다움과 친근함을 두루 갖춘 궁궐이 되었다. 임진왜란(1592) 때 서울의 다른 궁궐과 함께 불에 탔다가 1616년에 재건되었다. 이때 다시 세운 명정전, 명정문, 홍화문 등은 창경궁의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궁궐 건물들에 속한다. 창경궁의 전성기는 1830년대였다. <동궐도(東闕圖)>에는 여러 대비궁, 후궁과 공주들의 처소, 궐내각사 등이 촘촘하게 들어서고 곳곳에 정원 시설이 조화를 이룬 당시 모습이 잘 묘사되어 있다. 일제강점기에 창경궁 안의 건물들을 대부분 헐어내고 동물원과 식물원을 설치하여 시민공원으로 바꾸고, 창경원(昌慶苑)으로 격하시켰다. 또한 종묘와 연결된 땅의 맥을 끊고 그 사이에 도로를 개설하여 궁궐의 품격을 훼손했다. 1983년부터 동물원을 이전하고 본래의 궁궐 모습을 되살리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비록 아직 많은 유적들을 복원하지 못했지만, 아름다운 자연과 어우러진 창경궁의 모습에서 왕실 생활의 체취를 느낄 수 있다. |



옆의 담벼락을 끼며 쭉 가봅니다. 옆쪽으로 창경궁 행각 구역이 보이네요.


창경궁 행각 구역으로 내려가는 곳 부근에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위해 지은 대비전 자경전이 있던 곳을 볼 수 있습니다.
| 자경전 터 |
| 높은 지대에 자리 잡아 전망이 좋은 이 터는 대비의 침전인 자경전(慈慶殿)이 있던 곳이다. 자경전은 1777년에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위해 동쪽으로 멀리 아버지 사도세자의 사당인 경모궁(景慕宮)을 향하도록 지었으며, 뒤편에는 아름다운 계단식 후원이 있었다. <한중록(閑中錄/恨中錄)>의 산실이기도 한 이 건물은 19세기 후반에 철거되었다. 그 후 일제강점기에는 근대적 왕실 도서관인 장서각(藏書閣, 1915-1992)이 들어섰다가 1992년에 철거되었다. |


그 뒤로 내려가면 행각 구역에 다다르죠.

18세기 유물로 추정되는 깃대에 기를 달아 바람의 방향과 속도를 가늠했던 기상 관측기구인 창경궁 풍기대도 있습니다.



17세기 후반에 제작된 앙부일구의 모사품도 볼 수 있습니다.

꽤 흥미로운 돌모양도 볼 수 있었습니다.



성종태실과 태실비입니다. 태실(胎室)은 왕실 자손의 태(胎)를 묻어 기념했던 조형물이며, 태실비(胎室碑)는 그 사연을 기록한 비석입니다. 이 태실과 태실비는 전국의 풍수가 좋은 명당에 흩어져 있었고, 성종의 태실은 경기도 광주에 있었습니다. 1928년 즈음에 조선 왕실이 태실 대부분을 경기도 고양시 원당면의 서삼릉(西三陵)으로 모으는 과정에서 가장 형태가 온전한 성종태실만 이곳으로 옮겨 연구용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이제 춘당지(春塘池)로 갑니다. 춘당지(春塘池)는 창덕궁쪽 절벽인 춘당대와 짝을 이룬 엿못이었으나 지금은 담장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현재의 소춘당지가 원래의 춘당지이고 대춘당지는 1909년에 내농포(內農圃, 임금과 왕비가 각기 농사와 양잠을 체험할 수 있도록 궁궐 안에 둔 논과 뽕밭)에 속한 11개 논을 하나의 연못으로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연못이 정말 이쁘네요. 바로 보이는 대춘당지의 섬은 1984년에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보물로 지정된 팔각칠층석탑입니다. 기단부는 사각형 받침돌과 8면에 안상(眼象)을 새긴 2단 고임돌과 8면에 안상과 꽃을 새긴 연화대좌로 구성하였다고 합니다. 7층의 탑신부는 기와지붕건물 모양이며 1층은 연화자 위에 높고 볼록한 몸돌을 얹었구요. 꼭대기에는 흰 돌로 만든 보주(寶珠) 장식을 올렸습니다. 1층 몸돌에 새겨진 '성화 6년'이란 글씨를 통해 1470년(조선 성종 1년)에 세웠음을 알 수 있죠.

18세기 초반에 심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엄청 거대한 느티나무도 볼 수 있습니다.
창덕궁 후원에도 엄청 거대한 나무들이 있는데, 그 나무들도 대부분 느티나무라고 하네요. 이 느티나무는 목재로 만들면 변형이 적고 마찰이나 충격에 강해서 건축이나 가구의 재료로 많이 쓰였다고 합니다.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의 외부 기둥 16개, 팔만대장경판을 보관하고 있는 합천 해인사 법보전의 기둥 48개 모두 느티나무로 만들었죠.

창덕궁 후원과 창경궁 춘당지를 잇는 영춘문도 볼 수 있습니다.


창경궁 대온실로 향합니다.



대온실 앞에도 서양식 정원도 같이 세워져 있습니다.


건물 자체만 보면 이 전통적인 조선의 궁궐 안에 세워진 이색적인 근대의 아름다운 건축물입니다


1909년 11월에 창경원 대온실(1909-1986)이라는 이름으로 개관했는데, 일제가 순종황제를 유폐시킨 뒤 그를 위로한다는 목적으로 지은 당시 동양 최대의 식물원이었죠.



아픈 역사를 가진 건물이지만 이곳의 열대식물만은 정말 아름답더군요.



창경궁 대온실 옆에도 여러 나무들이 있습니다. 그 중 조선시대 중국을 왕래하던 사신들이 가져다 심어둔 중국이 원산지인 희귀한 나무인 백송(白松, pinus bungeana)도 보입니다. 이 백송은 나무껍질이 하얗고 껍질 조각이 오래되면 저절로 떨어지는 특징이 있으며, 잎은 3개씩 모여서 난다고 하네요.



조금 더 내려가면 내전 터 일원도 보입니다. 지금은 숲이 조성되어 있는 이곳은 궁궐 여성들의 처소로 가득했던 생활구역이었다고 하는데요. 그 중 요화당(瑤華堂)과 취요헌(翠耀軒)은 효종이 공주들을 위해 지은 건물이었으며, 통화전(通和殿)은 혼전(魂殿, 혼을 모시는 전)으로 이용되었다고 합니다. 그 사이 사이에 궁녀들의 작은 처소들이 많았고, 어린 왕자들과 관련된 건물들도 섞여 있었으나, 1830년에 일어난 화재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이 일대의 모든 내전들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이제 다리를 건너 남쪽의 건물들이 많은 곳으로 갑니다.


그렇게 광덕문을 지나 들어갑니다.

그렇게 옆을 보면~


| 홍화문과 외행각 |
| 창경궁의 중심 부분이 동향이기 때문에 정문인 홍화문도 동쪽으로 세워졌다. 1616년에 세워진 이 문 앞에서 국왕이 일반 백성들을 친히 만나기도 하고, 앞에 있는 왕실 언덕인 함춘원에 활터를 세워 무과 시험을 치르기도 했다. 규모는 3칸 대문이지만, 좌우에 한 쌍의 십자각을 세워 '궐(闕)'이라는 품격 높은 대문 형식을 갖추었다. 대문안쪽에 명당수인 금천을 흐르게 하고, 그 위에 옥천교를 건너는 상징적인 마당을 만들었다. 이 마당을 둘러 싼 외행각은 궁궐을 지키는 관원들이 사용했다. |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弘化門)이 보입니다.


아무래도 이곳이 공식적인 입구이기 때문에 창경궁에 대한 설명과 지도를 자세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왕이 있는 궐과 그 주변 구역을 가로지르는 금천 위에 놓은 다리를 금천교라고 하는데요. 이 창경궁의 금천교는 옥류천(玉流川)이라는 금천 위에 세워졌다고 해서 옥천교(玉川橋)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궁의 정문인 홍화문과 정전의 정문인 명정문 사이에 세워져 있죠. 한 글에 의하면, 현존하는 조선 궁궐의 금천교 중 창덕궁 금천교 다음으로 두 번째로 오래된 금천교라고 합니다.



정사(政)를 밝히는(明) 문(門)이란 뜻의 명정문(明政門)으로 들어갑니다. 이 문을 통해 들어가면 창경궁의 정전인 명정전에 들어가게 됩니다.

정사(政)를 밝히는(明) 전(殿)이란 뜻의 명정전(明政殿)입니다.



1666년에 다시 세워진 창경궁의 정전(중심 전각)이죠. 조선 각 궁궐에 남아있는 정전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건물로, 단층의 단이한 규모지만 2단으로 쌓은 월대(月臺, 중요한 건물 앞의 넓은 대) 위에 세워 정전의 권위를 갖추었습니다.


앞쪽에 펼처진 조정 마당에는 넓직한 돌을 깔고 중앙에 임금이 다니는 길인 어도(御道)를 두어 왕궁의 격식을 갖추었습니다.


뒤쪽은 다른 건물로 연결되는 복도를 만들어서 통행의 편리함을 추구했죠. 명정문과 행각이 조정을 둘러싸고 있으며, 행각들은 왕실 친위부대의 주둔지나 왕실의 초상을 치르기 위한 재실로도 쓰였다고 합니다.

방화수(防火水)를 담는 용기인 드므도 이곳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화마(火魔)가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놀라 도망가게 한다는 화재예방을 위한 상징적 의미가 크다고 합니다.



그렇게 명정전 뒤쪽에 위치한 '밝음(陽)을 공경히 맞이하는(賓) 문(門)'이란 뜻의 빈양문(賓陽門)을 지나 숭문당으로 향합니다.


빈양문을 지나면 바로 임금이 신화와 경연을 열어 토론하던 숭문당과 창경궁의 편전인 문정전이 나오는데, 사진은 찍지 못헀습니다.

더 나아가면 함인정도 보입니다.
| 숭문당과 함인정 |
| 숭문당과 함인정은 명정전의 후전(後殿)에 해당하는 건물이다. 숭문당은 임금이 신하들과 경연을 열어 정사와 학문을 토론하던 곳으로 1830년에 다시 세웠다. 앞쪽에 설치한 누각형 툇마루로 출입하였고, 영조 임금의 친필 현판이 현재까지 남아 있다. 함인정은 문무 과거에 급제한 신하들을 접견하던 곳으로 1833년에 다시 세웠다. '세상이 임금의 어짊과 의로움에 흠뻑 젖는다'는 건물 이름의 뜻을 상징하듯, 사방이 터진 개방형 건물이다. |

왕의 침전인 환경전(歡慶殿)입니다. 1834년에 다시 세운 이 건물은 중종과 소현세자가 돌아가신 곳이라고 합니다. 한 때 환경전과 각기 행각을 두른 독립된 영역을 가졌다고 하네요. 이 건물 뒤 북쪽에는 여러 대비들의 침전이 밀집해 있었으나 지금은 빈터로 남아 있습니다.

대비의 일상 생활공간이자 침전인 경춘전(景春殿)입니다. 1834년에 다시 세운 이 건물은 산실청(產室廳, 왕비와 세자빈의 출산을 위해 임시로 설치한 관청)으로도 쓰였는데, 정조와 헌종이 이곳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정조는 본이느이 탄생을 기념해 이 내부에 탄생전(誕生殿)이라고 친히 쓴 현판을 걸었다고 하네요. 또 건물 내무에 다른 '경춘전' 현판은 순조 임금이 쓴 것이라고 합니다.

궁궐 내부가 참 아담한데 웅장함이 같이 느껴지고 전체적으로 이쁘네요.

1834년에 지은 양화당(養和堂)은 대비의 침전이지만, 병자호란(1636) 때 남한산성으로 피난간 인조 임금이 돌아와 거처하기도 한 곳입니다.


통명전(通明殿)은 1834년에 다시 세운 일상 생활공간인 내전의 중심 건물답게 넓은 월대를 쌓고 지붕 가운데 용마루가 없는 건물입니다. 가운데 세칸은 대청마루를 두고 양 옆에 온돌방을 두어 왕과 왕비의 침실로 썼다고 하네요. 서쪽 마당에는 동그란 샘과 네모난 연못이 있고, 그 사이의 물길을 돌로 공들여 만든 정원이 있습니다.

통명전의 지당(池塘)입니다. 통명전 서쪽에 화강암으로 지어진 사각형의 작은 연못이죠.

이 물은 통명전 서북쪽에 있는 샘물에서 내려온다고 합니다. 연못 북쪽에서 물이 떨어지는 부분은 봉황부리모양으로 물이 곡선으로 떨어지게 만들었죠. 또 이곳엔 사진처럼 괴석 2기도 세워져 있죠. 참고로 이 통명전 뒤뜰에는 열천(洌泉)이라는 지금은 쓰지 않는 작은 샘이 있는데, 궁금하시면 한 번 오신김에 가보시길 바랍니다.



이곳 서쪽으로 조금 더 가면 높은 돌계단이 나오는데요. 이곳으로 올라가면 창덕궁으로 이어지는 함양문이 나옵니다.
선인문, 월근문, 집춘문, 문정문, 숭문당, 문정문, 문정전, 영춘헌, 집복헌, 사모정, 관덕정 등과 같이 창경궁의 모든 곳을 자세히 보여드리지는 못했지만, 전체적으로 창경궁을 둘러보며 볼 수 있는 중요한 곳들을 중심으로 세 대비의 안락한 쉼터에서 시작해, 춘당지의 고즈넉한 풍경과 역사의 애잔함이 깃든, 왕실의 가족적인 사랑과 애틋함이 배어 있는 궁궐, 창경궁에 대한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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