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타워 부근에 위치한 조선 봉수의 중심, 남산 봉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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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원과 표로 보는 역사 시리즈/어원과 표로 보는 한국사, 한국문화

남산타워 부근에 위치한 조선 봉수의 중심, 남산 봉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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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의 대표적인 산 남산에 있는 남산서울타워(구 서울타워)에서 서북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복원된 봉수대가 보입니다. 

목멱산 봉수대 터(木覓山 烽燧臺址)
지정번호 :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14호 / 시대 : 조선시대
소재지 : 서울특별시 중구 예장동 8번지 1호
목멱산(木覓山) 봉수대 터는 서울에 있다고 하여 경봉수(京烽燧)라고도 불렸었는데 전국의 봉수가 집결되었던 곳이다.

봉수제도는 신호체계에 따라 연기나 불을 피워서 변방의 긴급한 사정을 중앙까지 전달하여 알리며, 해당 지역의 주민들에게도 알려 빨리 대처하도록 하는 일종의 통신수단이다. 멀리 바라보기 좋은 높은 산봉우리에 봉수대를 설치하여 불을 피워서 낮에는 연기, 밤에는 불빛으로 신호를 알아볼 수 있도록 하였다. 전국 각지에서 오는 봉수는 남산에서 집결하였고, 남산 봉수대는 제1봉수대부터 제5봉수대까지 다섯 곳의 봉수대가 있었다. 제1봉수대는 함경도-강원도-양주 아차산, 제2봉수대는 경상도-충청도-광주 천림산, 제3봉수대는 평안도 강계-황해도-한성 무악 동봉, 제4봉수대는 평안도 의주-황해도 해안-한성 무악 서봉, 제5봉수대는 전라도-충청도-양천 개화산에 이르는 봉수를 받았다.

이곳은 1993년에 김정호의 〈청구도〉 등의 관련 자료를 참고해서 남산의 다섯 개 봉수대 중 하나를 복원한 것이다.

이 남산은 오래전에 목멱산 (木覓山)이라 불렸는데, 조선 태조가 한양(현 서울)으로 천도한 1394년부터 갑오개혁이 실시되고 1년 뒤인 1895년까지 498년 간 조선 봉수의 중심으로 역할을 다했던 곳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사전에 따르면, 1895년 봉수가 폐지되고 한참 뒤인 1930년까지도 시설 자체는 이곳에 있었다는데, 6.25 전쟁 후로는 겨우 이곳이 봉수대 자리였던 흔적을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처참히 파괴되었다고 전합니다.

남산 봉수대 봉화의식 (출처 : 서울특별시 남산봉수의식)

복원 된 뒤부터 월요일을 제외한 모든 날에 11시부터 12시 10분까지 남산봉수대 거화의식도 진행되고 있으니, 시간이 되시는 분들은 찾아가보시는 것도 추천드립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xWJkhQ9MN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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