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검뜸마을(신암마을)의 유래를 기억한 어르신들의 쉼터, 서검뜸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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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원과 표로 보는 역사 시리즈/어원과 표로 보는 한국사, 한국문화

서검뜸마을(신암마을)의 유래를 기억한 어르신들의 쉼터, 서검뜸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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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키남산아파트의 동쪽, 남산초등학교의 북쪽, 남산역의 서남쪽의 골목에 위치한 서검뜸회관입니다.

서검뜸회관 건립기
이 곳은 조선 숙종 46년(서기 1720년) 은진 송씨(恩津宋氏)가 입향(入鄕)한 이래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그 당시 문무(文武)가 조화된 나라의 동량(棟梁)이 배출되라는 뜻으로 서검서당(書劍書堂)을 개설하였으니, 서검뜸[書劍-]이라 불려 오다가 신암(新岩)은 일제강점기(日帝強占期)에 옛지명 말살책에 의해 지은 것으로 보인다.
서검뜸은 울창한 소나무와 돌로 산자(山紫)가 수명(水明)하여 백학(白鶴)이 놀던 곳으로 뒷산은 학산(山)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이런 서검뜸회관을 건립함에 동참해주신 분들의 정성을 기리기 위하여 이 돌에 새겨 기념코자 한다.
1997년 10월 25일
서검뜸회관 건립 추진위원회

은진 송씨가 1720년 이곳에 들어오면서 마을이 만들어졌는데, 이 때 서검서당을 지었기에 당시 '서검뜸'이라고 합니다. 국어국문학과 조항범 교수의 글에 따르면 이 '뜸'이란 말은 '동네를 이루는 작은 구역'이란 뜻이라고 합니다.

한 동네는 몇 집씩 모여 이루어진 소구역이 어울려 이루어진다. 이러한 동네를 이루는 소구역을 흔히 ‘뜸’이라 한다.

- <부여 지방의 지명(扶餘 地方의 地名)>, 조 항 범 / 충북 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https://www.korean.go.kr/nkview/nklife/1994_1/4_4.html)

이후 일제의 정책으로 신암(新岩)으로 고쳐져 지금까지 그렇게 불린다고 합니다. 다른 기록에 따르면, 김한주(金漢柱)의 준호구(準戶口)에 1898년(고종 35) 2월부터 이곳을 신암동(新岩洞)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하네요. 대략 19~20세기에 이곳은 '신암'이라 부르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을 듯 합니다.

그리고 이 마을의 뒷산에 백학이 많이 살아서 그 산을 학산(山)이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지금은 남산역 인근의 작은 길의 이름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서검뜸회관 건립성금 명단
위원장 김원기
총무 공회일
성금자 송우철(宋祐哲) 박원근 양상진 송치복 손화경 송광수 송진모 철재성 배진수
송용호 김수곤 박익근 공희은 송만조 송두만 박일선 김임수 박우군 김성두 송천석 오삼술 김현중 이진세 송두복 김종봉 김대봉 양상모 김용이 오정술 이근우 김원택 박태근 이명수 송태수 송건수 송진우 이태우 양만표 양만석 김종배 김종경 송우동 이승환 이새혁 이상범 이석용 박수환 박장호 김일중 노병술 오덕술 안수제 김진상 손승환 정길주 손광욱 권사곤 유갑주 구사수 김홍재 이상곤 최수용 김정곤 김덕만 송인수 송진해 박일라 공희광 김종국 박일국 송종석 송우석 김용호 최동현 김수관 지형식 안성관 하철민 박상모  
성금단체 서검뜸찬물샘친목회, 은진송씨유익공종중(恩津宋氏有益公宗中), 서검뜸노인회, 서검뜸어머니회, 남산동새마을금고, 신암간이상수도조합, 남산동청년회, 남산동청년회역대회장협의회, 남산동통장연합회
후원 국회의원 김도언, 금정구청장 윤석천, 금정구의회전의장 송진형, 부산시의회의원 고봉복, 금정구의회의원 김병일

은진 송씨가 마을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답게 은진송씨유익공종중(恩津宋氏有益公宗中)을 포함한 다양한 송씨 인물들, 그리고 각계각층의 사람과 지역 단체가 이 서검뜸회관을 건립하기 위해 성금을 했다는 기록을 이 건립기 뒷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문이 두개가 있는데요. 서쪽에 난 문엔 '신암부락 새마을계'라는 현판이 걸려 있고, 이곳이 2014년 최우수 경로당으로 인증되었다는 현판도 붙어있습니다.

그리고 동쪽 큰 입구에는 경로당 입구가 보이는데요. 1층엔 할머니들이 쉬시는 신암경로당이, 2층엔 할아버지들이 쉬시는 서검뜸경로당이 있다고 합니다. 이 두 경로당은 사단법인 대한노인회 부산금정구지회에서 관리하는 듯 합니다. 1997년 지어진 서검뜸회관은 당시 마을의 많은 어르신 뿐 아니라, 이곳에 처음 도착했다는 은진 송씨, 지방과 지역의 각계각층이 모여 만든 회관이었습니다.

 

우연히 지나가다 발견했는데, 이 회관 건립기를 통해 남산동 신암마을((구) 서검뜸)의 역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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