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정산 자락의 동래 정씨 정인찬과 독립운동가 정성언의 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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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산 자락의 동래 정씨 정인찬과 독립운동가 정성언의 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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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산 고당봉과 갑오봉, 장군봉 사이의 등산로를 따라가다보면 옆에 무덤군 하나가 보입니다.

가장 왼쪽엔 정인찬(鄭寅讚), 그 옆엔 정성언(鄭聖彦), 그 옆엔 그의 가족묘가 있습니다. 

비문 앞면 비문 뒷면
처사 동래 정공 휘 인찬
(處士東萊鄭公諱寅讚)
동래 정씨(東萊 鄭氏)의 제12세손 예조참의공(禮曹參議公) 절(節) 할아버지의 후손인 8대손 가선대부공(嘉善大夫公) 두(斗) 할아버지의 자(子) 여덟 분 중 사자(四子, 넷째 아들)인 덕화(德和) 할아버지의 차자(次子, 둘째 아들) 철(哲)의 8대손이며, 자(字)는 원찬(元贊), 기(忌) 음 8월 6일이다.

배(配, 배우자) 고령 김씨(高靈 金氏) 할머님은 화장(火葬)을 하였고, 기(忌) 음 11월 말일(末日), 슬하에 사자(四子)이고, 현자손(賢子孫)들이 선조추모지성심(先祖追慕之誠心)이 지극하여 설비(設碑) 수축 하여 자자손손 무궁(無窮)한 발전을 기원하는 그 뜻을 받들어 31세손 진국근찬서(鎭國謹撰書)함

서기 2001년(신사(辛巳)) 윤4월 26일

동래정씨 참의공파 정인찬(鄭寅讚)이란 분의 묘소라고 합니다. 동래 정씨 공식 사이트에서 전자 족보를 찾아봤으나, 정절의 아들 외에 그 후예들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 없어 더 이상의 설명을 할 수 없어 아쉬웠습니다.

비석 앞면 비석 뒷면
3.1독립운동유공자
동래 정공(東萊 鄭公) 휘(諱) 성언(聖彦) 지(之) 비(碑)
동래 정씨(東萊 鄭氏) 예조참의공(禮曹參議公) 휘(諱) 절(節) 후손(後孫)30세 성언(聖彦) 불명(佛名) 학명당(鶴鳴堂)
1919년 3월 17일 범어사(梵魚寺) 명정학림(明正學林) 졸업 송별회 석상(席上)에서 독립운동 거사(擧事) 결의(決議)
거사지 동래시장을 향하던 중 밀고로 무산
다음날 18일, 19일 우일(雨日, 비오는 날) 독립만세를 고창시위(高昌示威) 중 일경(日警) 총(銃)에 부상을 당하여 피신(避身)
입원(入院) 가료(加療) 중 일본 헌병에 피포(被捕, 체포)
고문으로 신체 장애(障碍)임에도 부산지방법원에서 징역 6월형을 받고 대구감옥에서 옥고(獄苦)
만기 출옥 후 독립운동 동지(同志)와 가족 등 물심양면 도와준 것이 탄로되어 경찰에 피포(被捕, 체포)
고문으로 평생 불구(不具)
여병(餘病)으로 59세로 일생을 맞이하였음이 고귀한 정신의 뜻을 기리기 위하여 현 금정중학교정(金井中學校庭), 범어사 경내 독립운동유공자비가 건립봉안되어있음
양위(兩位) 모두 화장(火葬)으로 모시고 유자(有子) 4남1녀 대통령 국가유공자 포상(褒賞)
애국지사(愛國志士) 아버지 업적을 대대손손 기리기 위하여 건립

비석 하단(下壇)에 양위(兩位) 및 후자(後子) 위비봉안함(位卑奉安函)을 설단(設壇)
2006년 윤7월 27일 장자 진국(鎭國) 삼가 씀[謹書]

그 오른편에는 3.1운동 당시 부산에서 독립만세운동 거사를 치뤘다가 옥고를 당하신 정성언(鄭聖彦)의 묘가 있습니다. 그는 범어사의 명정학림를 졸업한 1919년 3월 17일 만세운동을 결의합니다.

 

1919년 3월 18일, 명정학교와 범어사 지방학림 학생들이 만세 운동을 펼치려다 밀고로 일부가 잡혀갔는데, 이 때  검거를 피한 학생들이 오후 6시경 동래읍성 서문에서 모여 이곳 남문까지 시위를 하고 흩어졌다고 합니다. 다음 날 1919년 3월 19일 아침, 학생들은 독립 사상을 고취하는 내용의 격문을 배포하고, 오후 5시쯤에 동래읍성 남문 근처에서 시위를 개시하였습니다. 이 때 받은 총격으로 병원에서 치료를 하다가 일본경찰에게 끌려가 고문당하다가, 감옥에 수감된 것으로 보입니다.

 

출소 이후에도 그의 독립 의지는 꺾이지 않았고,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도와주다가 또 잡혀 고문당했고, 그렇게 돌아가실 때까지 몸 한 쪽이 불편한 상태로 지내셨다고 합니다. 그를 기리기 위해 그의 아들이었던 정진국(鄭鎭國)이 이 기념비를 세웠다고 합니다. 지금도 그의 이름은 동래의 부산 3.1독립운동기념탑과 금정중학교 내의 삼일운동유공비와 범어사 인근의 삼일운동유공비에 기록되어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 옆에는 동래시장에서 3.1 만세 운동을 펼쳤던 독립유공자 정성언의 후손들의 가족묘가 있습니다.

비문 앞면 비문 뒷면
동래 정씨(東萊 鄭氏) 참의공파(參議公派)
3.1 독립운동 유공의사(有功義士) 성언(聖彦)
불명(佛名) 학명당(鶴鳴堂)
장자 진국(鎭國) 가족위(家族位) 봉안(奉安)

현고(顯考, 고 부친) 동래 정공(東萊 鄭公) 진국(鎭國)위(位)
현비(顯妣, 고 모친) 유인(孺人) 순흥 안씨(順興 安氏) 위(位)
현비(顯妣, 고 모친) 유인(孺人) 남양 홍씨(南陽 洪氏) 위(位)
32세손 장자 기영(起泳)(영상(永相))
            차자 보영(保泳)
            삼자 은영(殷泳)
 

2006.9.   설단(設壇)

그 옆엔 독립운동을 했던 정성언의 첫째 아들 정진국씨의 가족묘가 있습니다.

등산을 하다 우연히 발견한 동래 정씨 참의공파 후손들의 가족묘였습니다. 그 중 한 분은 3.1운동에서 만세운동을 펼쳤던 분이셨어요. 하마터면 이 땅에 자유를 주고자 노력하신 분의 흔적을 그냥 지나칠 뻔 했습니다. 그 분이 그 높은 금정산 자락에서 아래를 내다보시면서 무슨 생각을 하실까 하면서 오르던 등산길을 다시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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