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오쿠란 어떤 곳인가? - 오오쿠의 의미와 연혁

2개월 전 넷플릭스에서 반영 시작한 일본 애니메이션 <오오쿠(大奥)>. 제목에도 쓰인 '오오쿠(大奥)'가 어떤 곳인지 궁금해 찾아봤습니다.
직역하면 '큰 안'이란 뜻의 오오쿠(오오오쿠, 大奥)는 에도성(江戸城)에 있었던 쇼군가(将軍家)의 정실부인, 자녀, 측실, 여자시녀(奥女中) 등을 위한 이른바 '쇼군이라는 1명의 남성과 여성들과 아이들만 살던 거처'를 말합니다.


보통 단순히 '오오쿠'라고 하면 '에도성(江戸城) 혼마루(本丸) 오오쿠(大奥)'를 말하는데, 여기서도 그에 맞춰 설명할 겁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일본 무가(武家)의 저택은 크게 의례나 정치를 하는 공적인 공간인 오모테(表)와 일상생활을 하는 사적인 공간인 오쿠(奥)로 구분했습니다. 여기서 착안해 막부의 쇼군이 머무는 에도성의 정무 공간과 일상 공간을 어느새 오모테(表)와 오쿠(奥)로 구분했죠. 그러다 오오쿠(大奥)라는 말이 등장합니다.

에도 막부 제4대 쇼군 토쿠가와 이에츠나(徳川家綱, 1641~1680) 때 문헌으로 오오쿠(大奥)라는 말이 등장했고, 제5대 쇼군 토쿠가와 츠나요시(徳川綱吉, 1646~1709) 때 공식적으로 오오쿠(大奥)라는 호칭이 정착합니다. <토쿠가와 '오오쿠' 사전(徳川「大奥」事典)>에 따르면, 1684년, 다이묘 홋타 마사토시(堀田正俊, 1634~1684)가 성 내에서 살해당한 사건으로 인해 에도성도 쇼군의 오모테(表)와 오쿠(奥)을 구분해야 할 필요성이 생기면서 확정되었다고도 합니다.
막말이 되자 에도성에 소속된 혼마루 오오쿠 또한 격변하는 정치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됩니다.
통상 조약 체결 문제와 13대 쇼군의 후계자 문제가 대두되었고, 이 때 보수파 난키파(南紀派)와 통상파 히토츠바시파(一橋派)가 다투었는데, 이 때도 오오쿠의 사람들을 자신들의 편으로 끌여들이는 일이 발생합니다.

난키파는 13대 쇼군 토쿠가와 이에사다(徳川 家定, 1824~1858)의 생모 혼쥬인(本寿院, 본수인, 1807~1885)과 오오쿠죠츄의 최고직급인 죠로오토시요리(上臈御年寄)였던 우타하시(歌橋, 1807~1877)를, 히토츠바시파는 쇼군 이에사다의 정실 텐쇼인(天璋院, 천장원, 1836~1883)에 접근해 쇼군에게 직접 압력을 가하려고 했죠.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을 오오쿠 공작(大奥工作)이라고 합니다. 결국 난키파가 밀던 토쿠가와 이에모치(徳川 家茂, 1846~1866)가 1858년 쇼군에 등극하게 되며 히토츠바시파는 실각합니다.

1868년 1월 말, 보신전쟁(戊辰戦争, 1868.01~1869.06)의 시작을 알린 토바・후시미 전투(鳥羽・伏見の戦い, 1868.01)에서 토쿠가와 요시노부(徳川 慶喜, 1837~1913)의 막부군이 패배하고, 신정부군이 <토쿠가와 요시노부 추토령(徳川慶喜追討令)>을 발표한 뒤, 13대 쇼군 이에사다의 정실 텐쇼인과 14대 쇼군의 정실이자 코메이 덴노의 여동생으로 카즈노미야(和宮)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세이칸인노미야(静寛院宮)가 각각 사쓰마 번과 조정에 전쟁을 멈춰줄 것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보낸 일도 있었죠.

이후 1868년 에도성의 문이 열렸고, 카즈노미야(和宮)와 이에모치의 생모 지츠죠우인(実成院, 실성인, 1821~1904)는 시미즈테이(清水邸)로, 텐쇼인과 혼쥬인은 히츠바시테이(一橋邸)로 쫓겨나게 되며 오오쿠의 문도 닫힙니다.
이런 역사를 가진 오오쿠의 예산은 <토쿠가와 '오오쿠' 사전(徳川「大奥」事典)>에 따르면, 막부 재정 지출 전체의 3~8%로, 대략 1년에 20만 료우(両, 량)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점차 증가해 막말인 1862년 예산이 45만 냥을 이미 넘었으나, 1866년에 다시 17만 냥으로 삭감했다고 하네요.
2. 오오쿠의 구조

에도성에는 혼마루오오쿠(本丸大奥), 니노마루오오쿠(二丸大奥), 니시마루오오쿠(西丸大奥) 이렇게 3개의 오오쿠가 있었습니다. 혼마루오오쿠(本丸大奥)에는 현재 쇼군의 부부가 있었으며, 니노마루오오쿠(二丸大奥)에는 현재 쇼군의 생모나 이전의 쇼군을 섬겼던 측실(側室)이 있었고, 니시마루오오쿠(西丸大奥)에는 쇼군직 상속자의 부부나 은퇴한 쇼군의 부부가 살았습니다.

그 중 혼마루오오쿠(本丸大奥)는 혼마루고텐(本丸御殿)의 맨 뒷구역에 있습니다. 이 혼마루고텐은 앞부터 오모테(表), 나카오쿠(中奥), 오오쿠(大奥)로 구분되는데요. 그 중 오모테와 나카오쿠는 하나로 이어진 어전(御殿)이지만, 오오쿠는 오모테, 나카오쿠와 분리되어 있었으며, 동(銅)으로 만든 담으로 경계가 지어져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유일하게 나카오쿠와 오오쿠가 이어진 유일한 복도 하나가 있었는데, 이 복도가 일본 에도 시대를 배경으로 한 역사물이나 다큐, 애니메이션, 게임 등에 나오는 오스즈로카(御鈴廊下, 오스즈 복도)다. 위 <오오쿠> 예고편 처음에도 볼 수 있듯, 쇼군이 오오쿠로 드나들 때 방울 달린 끈을 당겨 방울을 울리게 해 오오쿠의 출입구인 고죠구치(御錠口)를 열리게 한 데에서 '방울복도'라는 뜻의 오스즈로카라고 불리게 되었다네요~

이 혼마루오오쿠는 크게 히로시키무키(広敷向), 나카츠보네무키(長局向), 고텐무키(御殿向)로 구성됩니다.
히로시키무키(広敷向) | 오오쿠(大奥)의 현관문. 남성 히로시키 관리가 있었기에 고텐(御殿)과는 죠구치(錠口)로, 나카츠보네(長局)와는 나나츠구치(七つ口, 저녁7시(夕七つ, 현대 기준 오후 4시)에 닫혔기에 붙여진 이름)로 막혀져 있었음. |
고텐무키(御殿向) | 오코자시키(御小座敷, 쇼군의 침소), 미다이도코로(御台所, 쇼군 부인)의 거처, 치도리노마(千鳥之間), 고후쿠노마(呉服之間)와 같은 오오쿠죠(大奥女中)의 근무대기소[詰所], 역대 쇼군들의 위패가 있는 장소 등이 있었음. |
나카츠보네무키(長局向) |
2층으로 구성된 오쿠죠츄(奥女中)의 거처. 죠츄(女中, 여성하인급)의 지위에 따라 거주공간이 배정되었다. |
3. 오오쿠에 머물던 여성들의 신분과 입장
3-1. 미다이도코로(御台所)=쇼군의 정실(正室)

오오쿠의 제1 여주인이자 주재자(主宰者)가 바로 쇼군의 정실(正室)인 미다이도코로(御台所)입니다.
에도 막부 3대 쇼군 토쿠가와 이에미츠(徳川 家光, 1604~1651) 이후부터 미다이도코로(御台所)는 오섭가(五摂家)나 사친왕가(四親王家)에서 맞이하는 것이 관례가 됩니다. 그래서 해당 가문에 해당되지 않았던 시마즈가(島津家) 등에서 미다이도코로를 뽑을 땐, 오섭가나 사친왕가의 양녀로 들어가 뽑는 식으로 운영한 적도 있었습니다.
한편, 정실이 사망한 뒤, 새로운 정실을 맞지 않아 미다이도코로가 빈 적도 있었다고 하네요. 그럴 땐 선대 쇼군의 정실이나 생모가 미다이도코로 대신 오오쿠를 통괄하였다고 합니다.
3-2. 쇼군의 측실(側室)
쇼군의 측실은 기본적으로 쇼군의 정실의 시중을 드는 오츄로(御中﨟) 중에서 뽑힙니다.
쇼군이 눈에 띈 오츄로의 이름을 오토시토리(御年寄)에게 알리면 그날 저녁에는 잠자리를 준비하고 쇼군의 침소인 '오코자시키(御小座敷)'에 대기해 밤을 같이 보냈다고 합니다.
미다이도코로를 모시는 츄로(中﨟)가 쇼군의 눈에 띄였을 경우에는 쇼군을 모시는 오토시토리가 미다이도코로를 모시는 오토시토리에게 요청해 '미다이도코로 요승(御台所了承)'이란 절차를 밟아 잠자리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미다이도코로를 모시는 츄로(中﨟)에게 거부권은 있었지만, 그렇게 했다면 '영원한 쉼(에이노오이토마(永のお暇))' 상태가 되어 사직하고 오오쿠를 떠나야 했다네요. 그러니 대부분은 허락했을 듯 합니다.
쇼군과 잠자리를 마친 츄로(中﨟)는 '오테츠키(御手付き)'라 불리며, 임신하여 여자를 출산하면 '오하라사마(お腹様)', 남자를 출산하면 '오헤야사마(お部屋様)'가 되고, 드디어 정식으로 측실(側室)이 됩니다.


게다가 그녀의 아들이 쇼군 상속자로 뽑혀 쇼군직에 오르면 그 쇼군의 생모가 되어 시대에 따라서는 쇼군의 정실인 미다이도코로를 훨씬 능가하는 절대적인 권위와 권력을 가지기도 했다고 합니다. 대표적으로 5대 쇼군 도쿠가와 츠나요시의 생모 케이쇼인(桂昌院)이 있습니다.
다만 오오쿠측에서 이를 계속 두고볼 순 없었기에, 쇼군의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유모에게 검은 천으로 얼굴을 가리는 등의 대책을 마련해 측실이 더 이상 정실보다 높은 위치에 있을 수 없게 조치하며, 측실 또한 일개 하녀[女中]의 위치에 머물게 했습니다. 물론, 실제로 측실의 아이가 쇼군이 되었다면 오카미(上)라고 부르는 등 어느 정도 대접을 받게 되었죠.
3-3. 오오쿠죠츄(大奥女中, 오오쿠여중)

오오쿠(大奥)에 사는 여성들 대부분이 죠츄(女中) 그러니까 하녀였습니다. 다행인 점은 급료를 받았다는 것이죠. 이 오오쿠죠츄가 가장 많았을 땐 1000~3000명 정도 있었다고 전하는 이야기들도 있을 정도로 꽤 많았습니다.

미다이도코로의 일이나 상담을 담당했던 최고직 죠로오토시요리(上臈御年寄)부터 오오쿠 내의 모든 일을 관장하던 최고 권력자인 오토시요리(御年寄), 오토시요리의 지시를 따르는 대리역의 츄도시요리(中年寄), 쇼군이나 미다이도코로의 신변을 보호해주는 츄로(中﨟), 오토시요리의 지시로 물자조달을 하는 히로시키(広敷) 관리에게 요청하는 바깥 출입을 하던 오모테즈카이(表使), 오오쿠에서의 일들을 기록하는 오쿠유히츠(奥右筆), 밥상이나 다양한 도구 운반부터 대면소(対面所, 접견실) 청소 등을 담당한 오츠기(御次), 오오쿠의 잡일을 모두 담당하는 하녀인 오하시타(御半下) 혹은 오스에(御末) 등 다양한 직책이 있었습니다.
쇼군의 여성이 계급 사회 하에서 함께 지내고 각각의 일을 했던 에도성의 가장 크고 깊숙한 오오쿠.
지금 보기에 정말 갑갑하고 힘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또 그 속에서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끼리 조금의 여유를 가지기도 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네요.
아참, 드라마와 만화 <오오쿠>는 에도 막부 시기에 아카즈라호소(赤面疱瘡, 적면포장)이라는 남자들만 걸린다는 가공의 전염병에 걸려 남자들이 사망하자, 여성들이 무가의 대를 잇기 시작했다는 가상 역사 설정을 바탕으로 이야기가 이뤄집니다. 여자가 쇼군이 되었으니, 쇼군의 사생활 공간이던 '오오쿠'도 자연스레 '남성들의 오오쿠'가 되었죠. 그러면서 오오쿠의 남성들과 여성 쇼군 사이에 겪게 되는 이야기를 푼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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