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타기 염불사(오타기넨부츠지, 愛宕念仏寺)
천이백나한의 절(千二百羅漢の寺)이라고도 불리는 오타기넨부츠지(愛宕念仏寺, 오타기넨 염불사)는 교토시 우쿄구(右京区) 사가노(嵯峨野)에 있는 일본의 천태종 사원입니다.
이 절이 있는 아타고야마(愛宕山, 아타고 산)엔 오타고 신사(愛宕神社)도 있는데, 그 신사로 가는 참배길 겸 등산로의 시작점도 이 절이니 시간이 된다면 같이 가보시는 것도 추천드립니다.
오타기 염불사는 본존인 천수관음을 모시는 본당, 석상1200나한상, 석사여래석상을 안치한 다보탑, 일본 천태종의 개조 전교대사(伝教大師) 사이초(最澄, 767~822)를 모신 전교대사상(伝教大師像), 후레애관음(ふれ愛観音)을 모신 후레애관음당(ふれ愛観音堂), 삼보의 종(三宝の鐘), 나한동(羅漢洞), 절의 주방인 쿠리(庫裏), 에도 시대에 지어진 인왕문(仁王門)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중 본당(本堂)과 목조천관내공좌상(木造千観内供坐像)은 일본 중요문화재로 등재되었구요.
가마쿠라 시대에 만든 목조금강역사상(木造金剛力士像) 2구는 교토시 지정 유형문화재로 등재되어 있습니다. 이 목상은 교토시 내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금강역사상이라고 하네요.
휴일없이 매일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 연다고 합니다. 관람료는 300엔인데, 초등학생과 중학생은 무료라고 합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외국인 초중등학생 할인은 가능한지 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단체 할인도 있는데요. 10명부터 10% 할인을 해준다고 합니다.
구글맵 기준 JR사가아라시야마역(JR嵯峨駅)에서 오타기 염불사까지 걸어서 약 40분, 대중교통으로는 빠르면 15분 내에 도착할 수 있다고 합니다.
오타기 염불사의 사이트에 따르면 택시를 타면 5분만에 오지만 1000엔이 든다고 하네요...
교토버스(京都バス) 키요타키행(清滝行き) 62, 72, 92, 94번 버스를 타고 오타기데라마에(愛宕寺前)에서 하차하면 됩니다.
한큐 아라시야마역(阪急嵐山駅)에서 게이후쿠 아라시야마역(嵐電嵐山駅)을 경유해서 약 25분 정도 걸리는데 성인 기준 230엔이 듭니다.
차로는 교토역(京都駅) 기준으로 약 40분이 걸리구요. 다행히도 절 옆에 주차장이 있는데 승용차 10대 정도 밖에 주차할 수 없다고 하니 참고해주세요~
도보로 간다면, JR사가아라시야마역(JR嵯峨駅)에서 내려서 약 1시간 정도 걸어가야 한다고 합니다. 구글맵에서는 넉넉잡아 40분이면 간다고 하니 40~60분 정도 걸릴거라고 생각하면 좋을 듯 합니다.
2. 오타기 염불사의 역사
나라시대 766년, 쇼토쿠 덴노(称徳天皇, 718~770)가 지금의 교토 히가시야마구(東山区) 마츠바라도오리(松原通)가 있는 땅, 로쿠하라미츠지(六波羅蜜寺, 육바라밀사)의 근처에 오타고지(愛宕寺, 오타고사)를 세우며 역사가 시작됩니다. 당시엔 이 땅을 야마시로노쿠니(山城国, 야마시로국) 오타기고오리(愛宕郡)라 불렀는데, 이 절이 그 땅에 지어졌기 때문에 오타고지(愛宕寺)라고 불렀습니다.
헤이안 시대 초에는 진언종(真言宗) 토지파(東寺派, 동사파)의 말사(末寺)로 있었는데, 다이고 덴노(醍醐天皇, 885~930) 때엔 주변에 흐르던 카모가와(鴨川)로 인해 일어난 홍수로 절이 무너지고 흘러가버려 황무지가 되어버립니다.
이후, 다이고 덴노의 명으로 전등대법사(伝燈大法師)였던 천태종(天台宗)의 센칸 내공(千観内供, 918~984)이 그 황무지터로 가서 절을 다시 일으킵니다. 승려 센칸은 이후 여기서 머물며 염불을 외웠는데, 그래서 이름을 '오타기 염불사(愛宕念仏寺)'라고 이름짓고 천태종으로 편입시킵니다.
지금의 본존(本尊)은 본당(本堂)과 함께 가마쿠라 시대(1185~1333)에 만들어졌습니다.
특히 본존의 얼굴의 시선이 좌우대칭이 아닌 부처님의 엄격함과 부드러움이라는 양면성을 얼굴 왼쪽과 오른쪽면에 나누어 표현하고 있어 '자면비면의 천수관음(慈面悲面の千手観音)'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지장당(地蔵堂)에는 '화지요신(火之要慎)'이라는 팻말로 알려진 헤이안 시대에 만들어졌다고 여겨지는 아타고본지불(愛宕本地仏) 화제지장보살(火除地蔵菩薩)이 모셔져 있습니다.
시간이 흘러 1922년, 본당 보존을 위해 지금 오타고야마 입구쪽으로 절을 이전하고 다시 한 번 부흥을 꾀했으나, 태평양 전쟁(1941.12~1945.09) 중 주지가 없는 상태가 지속되었고, 거기다 1950년, 제인 태풍(Typhoon Jane)이 이 절을 덮치면서 또 한 번 큰 피해를 입고 폐사되었죠.
1955년, 승려이자 불상제작자인 니시무라 코쵸(西村公朝, 1915~2003)가 천태종 본산 엔랴쿠지(延暦寺, 연력사)로부터 무너진 이 절을 다시 일으켜달라는 부탁을 받았으나 잠깐 주저했습니다.
그 때 키요미즈데라(清水寺, 푸른물 절)의 관주(貫主, 주지) 오오니시 료케이(大西良慶, 1875~1983)가 그에게 "그만큼 상처가 나 있으면 풀 한 포기 잡아뜯어도, 돌 하나 움직여도, 넌 부흥자(復興者)다. 부흥자라 할 수 있다. 나 또한 거들테니"라는 격려를 받아 주지직을 승낙하고 절 복구 작업에 들어갔죠. 이후, 그는 전국을 뛰어다니며 사찰 정비에 집중하게 됩니다.
1980년 10년이나 걸린 산문(山門, 절의 정문)인 인왕문(仁王門) 해체 수리 작업이 시작되었으며, 이를 필두 본격적으로 절의 부흥에 힘쓰게 됩니다. 이듬해(1981년)부터는 일반 참배자들이 직접 나한상(羅漢像)을 저각해 봉납하는 '쇼와 나한조각(昭和の羅漢彫り)' 작업이 시작됩니다. 원래는 500구의 나한을 만드는 것으로 목표했으나 10년이 지난 1990년대엔 이미 그 수를 훨씬 뛰어넘은 1200구의 나한상이 경내에 봉납되었습니다.
3. 센과 치히로의 모티브가 되었단 썰이 있는 석상1200나한상
스튜디오 지브리의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시골마을로 차를 타고 가던 중 아버지가 길을 잘못들어 어떤 숲 속에 도착하게 됩니다. 이 때 석상 하나가 길을 막고 있어 아버지와 어머니는 차에서 내려 터널로 들어가게 되었죠. 이 때 그런 부모님이 못마땅한 치히로가 차에서 내려 빤히 쳐다보는데, 그옆에 한 석상 하나가 입을 벌리고 웃고 있습니다.
그들이 우여곡절 끝에 다시 차로 돌아와 이곳을 떠날 때 쯤에도 다시 석상이 등장하는데요. 이 땐 이 석상의 얼굴이 지워진 상태입니다.
1980년대부터 지은 나한상은 어느새 1200기나 만들어져 이곳에 봉납되었습니다.
겨울에도 색다른 풍경을 보여줍니다.
절은 공식적으로 재미삼아(?) 이 1200나한상이 일본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괴물의 아이>에 나오는 장면과 닮았다고 소개하곤 합니다. 절의 공식 인스타그램에 따르면 방문객은 이 나한상들을 보며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겨울왕국', '괴물의 아이'를 떠올린다는 의견을 많이 제시해줬다고 합니다. 교토에 가게 된다면 한 번 찾아가보고 싶네요ㅎ
'어원과 표로 보는 역사 시리즈 > 어원과 표로 보는 세계사, 세계문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동해 바다가 뻥 뚫려 보이는 일본 후쿠이현 에치젠정의 곶, 에치젠 미사키(越前岬) (0) | 2023.07.31 |
---|---|
러시아어 역사서 찾는 사이트 추천 - Исторические источники (0) | 2023.07.27 |
일본 국민 매실주(우메슈), 쵸야우메슈(초야우메슈) (0) | 2023.07.21 |
일본 효고현 고베시의 개인지 양인지 애매한 돌 장식물 (0) | 2023.07.15 |
전러시아 중앙집행위원회의 <은행 국유화에 관한 법령>(1917.12.27) (0) | 2023.07.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