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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구 동래시장으로 들어가는 서편 출입로 오르막길 옆에 작은 표지석이 남아있습니다.
동래부 객사터 |
조선시대 때 전패(殿牌)를 모셔 두고 배례(拜禮)를 올렸으며 중앙 관원들의 유숙(留宿)과 외객(外客)을 영접하여 회의실로 사용하던 곳으로 일명 봉래관(蓬萊館)이라고도 불리었던 곳. |
전패(殿牌)는 '임금'을 상징하는 글자 전(殿)을 적어둔 위패이며, 궐패(闕牌)는 '궁궐'을 상징하는 글자 궐(闕)을 적어둔 위패입니다. 이 두 글자를 각각 새겨 상징을 만든 것입니다.
동래부 객사는 과거 조선시대 동래부에서 특별한 날에 위 사진과 같이 임금(殿)과 궁궐(闕)을 적은 위패에 절하는 망궐례(望闕禮)를 치르고, 또, 외부 관원들의 숙소로 쓰였던 곳입니다.
기록에 따르면 임진왜란 때 불탔다가 1612년부터 건물이 하나씩 복원되었고, 1646년, 동래 부사 민응협(閔應協)에 의해 다시 건립된 후, 1703년 또 불타버렸으며, 이는 1705년에 다시 지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쭉 쓰이다가, 1900년대부턴 공립동래보통학교로 쓰였고, 일제강점기 까지도 학교 건물로 쓰이다가, 1930년 동래공설시장을 개설할 때(목조 건물이 세워지기 시작한 것은 1930년, 공설시장으로 승격된 것은 1937년) 다 뜯겨 지금은 모든 흔적이 사라졌습니다.
시간은 흐르고, 1994년 8월, 부산직할시 동래구에서 현재의 위치에 동래부 객사가 있었다는 표지석을 세우면서 그 위치만 짐작할 수 있게 되었죠.
일제강점기 때 동래시장을 공설시장으로 만들면서 이 신성한 동래부 객사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정말 안타깝지만, 그 흔적을 찾아 위치를 밝힌 부산직할시 동래구와 이를 도운 많은 사람들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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