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악령>
<악령(Бе́сы)>은 1870년부터 1872년까지 쓰이고 1872년에 첫 출판한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옙스키(Фёдор Миха́йлович Достое́вский, 1821~1881)의 6번째 장편소설로, 그의 역대 작품 중 가장 정치색이 강하게 드러난 작품입니다. 그래서 이 소설엔 테러리즘과 급진적 운동이 싹트고 있던 당시의 모습이 드러나죠.
이러한 <악령> 줄거리의 원형은 1869년에 한 혁명적인 테러집단에서 그 대표 С. Г. 네차예프(С. Г. Нечаев)가 그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같은 대학생 이반 이바노프(Иван Иванов)를 암살한 '대학생 이바노프 살인 사건(убийство студента Иванова)'이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한 <악령>은 혁명을 위해 어떠한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는 네차예프의 행태를 뜻하는 '네차옙시나(нечаевщина)'를 비판하고 있으며, 따라서, 소설 속 악령(Бе́сы)은 아나키즘과 무신론을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다른 말로 보면, <악령>은 반아나키즘, 반무신론, 반허무주의 소설이라고 볼 수 있죠.
참고로 이 '네차옙시나'는 나~중에 보리스 파스테르나크(Boris Pasternak, 1890~1960)의 말에서도 인용되는데요. 바로 스탈린의 대숙청을 보면서 '네차옙시나'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네차예프를 중심으로 썼던 혁명 조직의 규약인 <혁명가의 교리 문답(https://mspproject2023.tistory.com/1295)>도 읽어보세요~)
그런 의미에서 소련 초기엔 한 때 금서로 여겨진 적도 있었는데요. 다행히도 흐루쇼프 해빙기(Хрущёвская оттепель, 1950년대 중반~1960년대 중반)를 거치면서 도스토옙스키 작품집들의 실리면서 재출판되기도 하며 다시 널리 읽히기 시작했죠.
한편, 도스토옙스키는 영웅적 이데올로기에 대한 논쟁을 <죄와 벌>에서 이미 시작했었습니다. 그 소설에선 살인이라는 '죄'를 저질렀던 라스콜니코프가 과연 영웅이었는가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죠. 그러나 그 논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이 소설에서 다시 등장합니다. 바로 '사상을 위해 누군가를 희생시켜도 되는가?'하는 논쟁이 이 책에서 다시 열립니다.
2. <악령>의 등장인물과 간략한 줄거리
니콜라이 프세볼로도비치 스타브로긴(Николай Всеволодович Ставрогин)
그는 표트르 베르호벤스키와 다양한 혁명적 임무에 참여하며, 그들의 리더 격 혹은 신격으로 추앙받습니다. 잘생기고 카리스마 있으며, 스타일도 좋아 많은 여성과 남성에게 존경받지만, 10살 혹은 14살짜리 여자아이를 꼬셔 그녀가 자살에 이르게 만드는 등 비사회적인 모습도 보여줍니다. 그는 결국 자살합니다.
바르바라 페트로브나 스타브로기나(Варвара Петровна Ставрогина)
그녀는 자신의 부모님에게서도 엄청난 유산을 물려받았던 여성이자, 죽은 부유한 육군중장(генерал-лейтенант) 스타브로긴(Ставрогин)의 부인이면서, 중심인물 니콜라이 스타브로긴의 어머니이며, 스테판 베르호벤스키의 후원자이자 동거인입니다.
스테판 트로피모비치 베르호벤스키(Степан Трофимович Верховенский)
그는 한 때 니콜라이 스타브로긴의 가정교사였었으며, 표트르 베르호벤스키의 아버지입니다. 대학에서 강의를 하기도 했으며, 자유주의에 빠져있는 이상주의자입니다. 바르바라는 그가 자신의 양녀 다리야와 결혼했으면 했지만, 그는 그 결혼이 마음에 들지 않아 거절합니다. 친절하며, 공상적이면서, 그가 바르바바에게 얹혀사는 것을 보면 어느 정도 의존성도 보입니다. '아름다움'이 최고의 가치라고도 하는데, 이를 보면 <아버지와 아들>의 파벨 키르사노프처럼 당대 기준 구시대적인 인물처럼도 보입니다.
표트르 스테파노비치 베르호벤스키(Пётр Степанович Верховенский)
그는 스테판 베르호벤스키의 아들로, 27살입니다. 그는 바르바라가 있는 도시에서 '혁명 5인조(революцио́нная пятёрка)'라는 비밀 결사를 결성했고, 이 소설에서 벌어진 방화 사건, 살인 사건의 계획자이자 핵심 인물입니다. 장난끼도 있으면서 교활한 사람이기도 하죠. 그는 실제로 혁명가 세르게이 겐나디예비치 네차예프(Серге́й Генна́диевич Неча́ев, 1847~1882)와 사회주의운동가 미하일 바실례비치 부타셰비치-페트라솁스키(Михаи́л Васильевич Буташевич-Петраше́вский, 1821~1866)를 모티브로 해서 만들어진 인물이었습니다.
이반 파블로비치 샤토프(Иван Павлович Шатов)
그는 바르바라 페트로브나의 하인의 아들입니다. 젊었을 때 대학에서 퇴학당했고 유럽을 여행하고 돌아왔었죠. 그는 혁명 운동 그룹 '혁명 5인조'의 멤버로, 있었지만, 그들의 사상을 믿진 않았습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네차예프의 행동에 대해 극심하게 분노했었는데,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던 도스토옙스키 또한 자신의 생각을 그의 입을 통해 전달하죠. 그는 네차예프 사건의 희생자였던 전 인민의 징벌 멤버 И. И. 이바노프(И. И. Иванов)를 모티브로 해서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그런가 그는 네차예프를 모티브로 한 표트르 베르호벤스키에 의해 살해당하죠...
다리야 파블로브나 샤토바(Дарья Павловна Шатова)
그녀는 이반 샤토프의 여동생이자 바르바라 스타브로기나의 양녀로, 한 때는 바르바라에 의해 스테판 베르호벤스키와 결혼 이야기까지 나왔지만, 니콜라이 스타브로긴과 긴밀한 사이였던 것을 알았던 스테판에 의해 결혼은 성사되지 않게 됩니다.
알렉세이 닐리치 키릴로프(Алексей Нилыч Кириллов)
그는 27살의 젊은 건설공학자로, 표트르 베르호벤스키, 이반 샤토프, 니콜라이 스타브로긴의 지인입니다. 샤토프에 따르면 그는 스타브로긴의 광신도면서 인간혐오를 하게 되었고,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은 자신이 신이 되고, 그렇기에 어떤 행동에서도 자유로워진다는 인신론자가 됩니다. 그래서 그는 자유로워지기 위해 '자살'을 선택하죠...
역설적으로 그의 자살은 표트르 베르호벤스키의 이반 샤토프 살인을 숨길 수 있는 계기가 되었는데, 그가 키릴로프가 샤토프를 죽이고 자살했다고 퍼트렸기 때문입니다.
시가료프(Шигалёв)는 비르긴스키(Виргинский)의 부인의 형제로, 어두운 분위기에 그다지 잘생기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는 비밀 결사 아래에서 사회를 재구성할 수 있는 방법들을 만들었는데, 이 체계들은 표트르 베르호벤스키의 마음에 쏙 들었다고 하네요. 그렇지만, 그가 이반 샤토프를 죽이는 것은 자신의 생각에 위배된다고 말하기도 한 사람입니다.
3. <악령>의 예술적 특징
도스토옙스키는 소설에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나를 평생 괴롭혀온 그 것은 신의 존재'라고 썼을 정도로, 이 소설의 핵심은 '무신론과 신앙'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야기의 많은 부분은 신에 대한 믿음과 불신 사이의 긴장에서 발전하고,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의 말과 행동은 이 투쟁에서 그들 자신이 차지하는 위치에 따라 의견 차이가 생기는 것에서도 알 수 있죠.
도스토옙스키는 당시 무신론 확대가 러시아의 심화되는 사회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여겼습니다. 당시 러시아 정교회의 사상이 젊은 층을 중심으로 약해지면서, 카톨릭, 과학주의, 사회주의, 이상주의와 같은 러시아 입장에서 서구의 이질적인 사상들이 차곡차곡 들어오고 있었다고 본 것입니다.
주인공 스타브로긴은 신을 믿지 않고(무신론), 이성, 지성, 주체성, 자기본위(이기주의)를 갖고 있지만, 그의 스승 스테판이 알려준 영적 존재에 대한 갈망, 관능적인 열정도 같이 가지고 있었죠. 그렇게 그는 두려움과 도덕에 얽매이지 않고, 그의 삶은 자기 중심적인 삶을 살게 되는 실험이 되었고, 그럴수록 커져만 가는 권태감을 없애려고 발버둥치게 되었죠.
그 외 등장인물들은 이 스타브로긴의 영향을 받습니다.
표트르 베르호벤스키는 허무주의자였고, 냉소적이고 도덕적이며, 권력을 추구하려고 하게 됩니다.
이반 샤토프는 감정의 열정과 영적 갈망에 영향을 받게 되며, 이후엔 신인론에 빠지게 되었죠.
알렉세이 키릴로프는 스타브로긴의 무신론에 확신을 가졌고, 그로 인해 신 대신 인간의 우월성을 확고히 믿으면서(신인론), 죽음에 대한 공포를 이겨내기 위해 자살을 택하며 스스로를 해방시킵니다.
여기서 '자살'이라는 주제도 빼놓을 수 없게 되었는데요.
첫번째 자살은 신이 없고, 그로 인해 '고통에 대한 두려움'과 '내세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면 자살을 택해도 좋지 않을까하면서 스스로를 해방하려 했던 알렉세이 키릴로프의 자살이었습니다. 그의 마음속에서 그는 자신의 의도적인 죽음으로 고통과 두려움의 초월성을 인류에게 보여주고 하나님을 만들어 낼 필요성으로부터 해방시킬 사람이 되었죠.
두번째 자살은 니콜라이 스타브로긴의 자살입니다.
그는 사실 도시에서 군인으로 복무하고, 여행을 다니면서 많은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러면서 내면은 점점 황폐해져 갔죠. 그의 스스로와 남에게 가했던 행위들은 신과 규율을 존중하지 않는 신성모독적이었죠. 그러나 그것 때문에 그가 죽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합리적'이었기에 자살했다고 서술자는 말합니다. 그는 그 자신이 주장했던 신인론과 인신론 모두 부정했으며, 자의지가 굉장히 강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는 그 모든 중심에서 세상을 도구로 더 이상 성장하지 못했고, 그렇게 사망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이 책은 거의 그것이 다루는 당대의 러시아 문화에 대한 압축된 백과사전이며, 시들하게 비웃으며, 종종 기괴하고 재미있는 관점을 통해 걸러지고, 그것은 역사적 인물과 사건에 근거하여 재구성된 그 시절 문화의 주요 갈등에 대한 놀라운 '신화'를 만들어냅니다.
- 조셉 프랭크(Joseph Frank, 1918~2013)
이 소설을 풍자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당시 러시아 사회상을 까발린 풍자 소설이라는 것입니다. 앞서 이야기 했듯, 이 <악령>은 실제 사건과 인물을 모티브로 삼아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당대 사람들은 이 소설을 읽으면서 '어? 얘 그 신문에 나왔던 걔 아냐?'하면서 그 사건과 그들의 사상을 다시 한 번 생각했겠죠. 그리고 그것이 옳은가, 옳지않은가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을 겁니다. 작가 도스토옙스키는 이 풍자를 통해 아나키즘, 허무주의(니힐리즘), 무신론을 믿는 새로운 세대들을 풍자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공산주의가 옳고 그름에 관계없이 언젠가는 공산주의가 승리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승리는 천국과는 거리가 멀 것입니다. 현재 세계의 운명을 이끄는 사람들 중 누구도 그것에 대해 전혀 모를지라도, 우리는 이 승리가 언젠가 올 것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 도스토옙스키(Фёдор Миха́йлович Достое́вский, 1821~1881)
그는 이 소설을 통해서도 공산주의의 등장을 예고합니다. 그리고 인용구에선 나타나지 않지만 그 파멸까지도 예측하죠. 사실 인용구를 볼 필요도 없습니다. 허무주의, 무신론에 빠진 주인공들의 결말을 보면 '공산주의'가 어떻게 될 지를 충분히 예측할 수 있거든요. 무섭고도 신비한 소설이었습니다. 도스토옙스키 그 자신은 단순히 '당시 사회 중 강경파의 운동 상황을 비판하고 싶었다'라고 하지만, 그 끝은 1세기 이후에나 사라질 소련과 사회주의 진영의 몰락을 예고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가볍게 읽기 시작했지만, 마음이 조금 무거워졌던 책이었습니다.
'어원과 표로 보는 역사 시리즈 > 어원과 표로 보는 세계사, 세계문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바쿰의 <생애전>, 언문일치로 문학의 새 시대를 열다 (0) | 2023.06.26 |
---|---|
역사적으로 확인 가능한 역대 노브고로드 공작(표) (0) | 2023.06.24 |
<죄와 벌>, 영웅 심리와 살인은 인간을 어떻게 만드는가? (0) | 2023.06.17 |
러시아 문학 속 낭만주의, 개인의 문학적 감상을 깨우다! (0) | 2023.06.16 |
페초린의 이야기를 정리한 '나'가 쓴 <페초린의 수기> <서문> (0) | 2023.06.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