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이드의 여왕>, 환상과 현실 속에서 도박에 빠져 버린 한 독일계 남자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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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드의 여왕>, 환상과 현실 속에서 도박에 빠져 버린 한 독일계 남자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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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스페이드의 여왕>

1834년 출판된 <스페이드의 여왕> (출처 : litfund)

<스페이드의 여왕(Пи́ковая да́ма)> 알렉산드르 세르게이비치 푸시킨(Алекса́ндр Серге́евич Пу́шкин, 1799~1837)이 신비한 요소들을 더해 1833년에 쓰기 시작해 1834년에 발표한 단편 소설입니다.

1890년 <스페이드의 여왕> 초연에서 작가 차이코프스키(가운데)와 Н. Н. 헤르만 역의 피그네르(Н. Н. Фи́гнер, 좌측) 그리고 부인이자 리자 역의 М. И. 피그네르(М. И. Фи́гнер)

이 소설은 이후 П. И.  차이코프스키(П. И. Чайко́вский, 1840~1893)가 1890년 12월에 발표한 동명의 유명한 오페라 <스페이드의 여왕(Пи́ковая дама)>로 각색되기도 했고, 여러 번 영화화도 될 정도로 유명한 소설입니다.

좌측부터 <이집트의 밤>, <바실리예프스키의 외딴 작은 집>, <손님들이 별장으로 모여들었다...>

번외로, 이 소설은 푸시킨의 <바실리예프스키의 외딴 작은 집(Уединённый домик на Васильевском)>이나 <손님들이 별장으로 모여들었다...(Гости съезжались на дачу…)> 그리고 미완성작 <이집트의 밤(Еги́петские но́чи)>와 연관된 점이 있기 때문에, 같이 읽어보는 것도 추천드립니다.

 

2. <스페이드의 여왕>의 등장인물과 줄거리

헤르만
(Германн)
이 이야기의 주인공.
독일인 아버지에게서 태어났으며, 계산적이고 위험을 회피하는 듯한 성격을 보여줌.
육군 공병 장교로서 적은 봉급으로 생활하고 있었음.
하지만, 확실히 이길 수 있는 필승법을 배웠다고 믿게 됨.
그 이후, 욕심이 그를 능가하는 타고난 도박꾼의 모습을 보임.
도박에 실패해 정신병원에 입원.
리자베타 이바노브나
(Лизавета Ивановна)
백작 부인의 피후견인.
헤르만이 백작 부인에게 접근하고 그녀의 비밀을 발견하기 위해 리자와 잠깐의 연정을 나누는 듯함.
아름답고 수줍음이 많은 성격.
신선한 얼굴과 반짝이는 검은 눈을 가지고 있고, 얼굴이 붉어지는 경향이 있음.
후에 집사의 아들과 결혼하고, 가난한 친척 소녀를 맡아 키우게 됨.
백작 부인
(графиня)
톰스키의 할머니.
파로(카드 게임)를 이기는 방법에 대한 비밀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함.
젊은 시절 모스크바에서 온 비너스로 알려질 정도로 아름다웠음.
늙은 지금도 정교한 옷과 많은 층의 화장과 장식을 함.
이로 인해 그녀의 만년에 허영심이 강하다고 묘사됨.
폴 톰스키
(Поль томский)
백작 부인의 손자.
포커 게임 중, 백작 부인이 파로에서 승리하기 위한 비밀 공식을 어떻게 얻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함.
체칼린스키
(Чекалинский)
모스크바에 있는 그의 집에서 게임을 진행하는 부유한 도박꾼.
이야기의 끝에서, 헤르만은 체칼린스키에게 세 번째 내기를 짐.
60세의 그는 은발, 신선한 얼굴, 반짝이는 눈, 밝은 미소, 점잖아 보이는 성격으로 유명함.

이 소설에서도 푸시킨이 가장 좋아하는 예측할 수 없는 운과 행운 그리고 운명이라는 주제가 나타납니다.

<스페이드의 여왕> 중요 인물 관계도

젊은 군사 기술자 헤르만(Германн)은 평범한 삶을 살며 재산을 축척하는 검소해보이는 인물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도박에 참가하지 않고, 도박판을 보기만 하는 구경꾼이었죠. 그의 친구 톰스키(Томский)는 그의 할머니인 백작 부인(графиня)이 파리에서 카드게임으로 많은 돈을 잃었다가 지인인 생 제르맹 백작(Граф Сен-Жерме́н)에게 찾아가 3장의 카드 이야기를 들으며 큰돈을 벌었다는 이야기를 해줍니다.

<스페이드의 여왕>의 백작 부인의 모티브가 된 나탈리아 페트로브나 골니츼나(Наталья Петровна Голицына, 1744~1838) (출처 : http://www.ng.ru/style)

헤르만은 우선 백작 부인의 피후견인이자 항상 백작 부인에게 핍박받는 리자(Лиза)를 유혹하고, 백작 부인의 침실로 들어가 그녀의 소중한 비밀을 알아내려고 애원하고 위협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권총으로 자신을 겨누는 모습을 보고 놀라 심장마비로 사망하죠. 헤르만은 양심의 가책을 받았으나 장례식에 참가했는데 그때 죽은 백작 부인이 한쪽 눈을 깜빡인 듯한 것처럼 느껴 잠시 충격에 빠지죠.

 

이후 그날 늦은 밤, 꿈속에서 백작 부인이 헤르만에게 카드게임에서 21점을 주는 전설적인 카드 3개의 조합인 '3(тройка), 7(семёрка), 에이스(туз))'를 듣게 되었습니다. 대신 하루에 1개 이상의 카드를 걸지 말아야 한다는 경고와 리자와 결혼해줄 것, 그리고 이후엔 더 이상 도박장에 나가지 말 것이란 조건을 두곤 사라져 버리죠. 그렇게 헤르만의 머릿속엔 '3, 7, 에이스'라는 조합이 머리에 콱 박혀버렸고, 그가 보는 모든 것을 이 3개의 카드에 대입시켜 버립니다.

실제 대상 카드로 대입
날씬한(стройна) 소녀 3 하트(тройка червонная)
7시 5분 5분전에 7시(без пяти минут семёрка)
모든 뚱뚱한 남자(Всякий пузастый мужчина)
거대한 거미(огромный паук)
에이스(туз)
무성한 그란디플로라 꽃(пышная грандифлора) 3(тройка)
고딕 건물의 대문(готические ворота) 7(семёрка)

이후 페테르부르크에 저명한 도박가이자 백만장자인 체칼린스키(Чекалинский)가 도착합니다.

헤르만은 자신이 상속받은 돈을 포함한 모든 자본 4만 7천 루블을 3(тройка)에 걸고, 이기게 됩니다. 그렇게 그는 그의 재산을 2배로 불리게 됩니다. 다음 날, 헤르만은 모든 자본 9만 4천 루블을 7(семёрка)에 걸고, 또 이겨 자산을 2배로 불렸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 헤르만은 에이스(туз)에 모든 돈 18만 8천 루블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이겼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갑자기 체칼린스키가 '당신의 스페이드 퀸은 졌다'라고 말합니다. 분명 자신은 에이스에 걸었다고 생각했지만, 눈을 씻고 봐도 그는 스페이드 퀸에 돈을 걸었던 것입니다... 그 때 그 스페이드 퀸 카드에서 백작 부인이 윙크를 하는 것을 보고 정말 미쳐버리게 됩니다. 모든 재산을 잃은 헤르만은 오부호프 병원(Обу́ховская больни́ца) 17호실에 갇히게 됩니다. 그곳에서 그는 그 어떤 반응도 하지 않은 채 계속 '3, 7, 에이스!(Тройка, семёрка, туз!) 3,7, 퀸(Тройка, семёрка, дама!)'이라고 빠르게 중얼거리면서 소설은 끝이 납니다.

 

이후 리자는 관청에 근무하고 상당한 재산을 가졌던 백작 부인의 집사의 아들이자 매우 착한 청년과 결혼했고, 그녀는 가난한 친척 소녀를 맡아 키우게 됩니다. 톰스키는 대위로 승진했고, 공작의 딸 폴리나와 결혼까지 성공하게 됩니다.

 

3. <스페이드의 여왕>의 문학적 특징

도박과 탐욕에 관한 영원한 이야기

- 비평가 게리 로젠실드(Gary Rosenshield)

헤르만은 백작 부인이 그에게 카드에 대한 비밀을 알려주고 허락하기도 전에 이미 도박판을 지켜보는 것처럼 도박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비평가 나단 로젠(Nathan Rosen, 1909~1995)는 이 책을 읽고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에서 헤르만의 치명적인 실수는 자학 행위'라고 규정하기도 했는데요. 처음부터 도박판에 발을 들여 있었고, 겉으론 드러내지 않았으나, 필승법을 가지게 되자 가학적으로 모든 정신을 3장의 카드에 집중시키고, 끝에 가서도 제대로 살피지 못하고 스페이드 퀸에 모든 재산을 걸어 탕진하게 됩니다. 결국 헤르만은 타락한 영혼의 탐욕 때문에 스스로를 벌하게 된 셈이죠.

 

보는 것이 그래서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인간의 신체 중 '눈'은 '시각'하는 기관이기 때문에 그 중요성을 이루 말할 수 없는데요.

헤르만이 처음 도박판에서 카드 게임을 본 것, 헤르만과 리자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기 위해 헤르만은 편지의  글자로, 리자는 창문 안의 자신의 모습으로 서로를 보여준 것, 헤르만이 겨눈 총부리를 보고 놀란 백작 부인, 장례식장에서 헤르만이 백작 부인이 눈을 깜빡이는 듯한 걸 본 것, 꿈 속에서 헤르만이 백작 부인의 유령을 본 것, 세번째 도박판에서 헤르만이 카드에서 백작 부인의 모습을 본 것... 소설은 '보는 것'에서 시작해 '보는 것'으로 끝납니다. 이 소설의 마지막을 생각해본다면, 지금 내가 무엇을 보고 어떤 행동을 하는지가 정말 중요한 것 같네요.

노파는 한마디 대꾸도 하지 않았다.
헤르만은 일어섰다.
"이런 마귀 할멈같으니라고!"
그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
"그렇다면 내가 입을 열게 해주지......"
이 말과 함께 그는 주머니에서 피스톨을 꺼냈다.
피스톨을 보자 백작 부인은 두번째로 강한 감정을 드러내 보였다. 그녀는 총알을 막기라도 하듯 고개를 저으며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더니 뒤로 나자빠지고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어린애처럼 굴지 말라고."
헤르만은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마지막으로 묻겠다. 3장의 카드가 무엇이지? 말할거냐? 안 할거냐?"
백작 부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헤르만은 그녀가 죽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헤르만의 탐욕은 도박 집착과 돈에 대한 강한 욕망의 형태로 나타나는데, 리자와 백작 부인과의 거래에서 드러납니다. 헤르만은 리자를 처음 본 순간부터 리자와 그녀의 상처받은 순결성을 이용해 그녀를 꼬드기고, 백작 부인에게 접근해 그녀가 가지고 있는 도박 비밀을 알아내려 시도합니다. 그리고 그의 타락한 모습은 백작 부인을 죽음에 이르게 할 때 절정을 보이게 됩니다. 그녀가 죽은 것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말입니다...

 

그런데 그는 도대체 왜 그렇게 카드에 집착했을까요?

제가 보기엔 우연과 자연적인 흐름을 깨부수고 자신이 특정한 체계에서 몇 가지의 버튼(여기선 카드 3장)을 눌러 조작할 수 있다는 그러니까 불규칙성과 예측불가한 것, 그리고 우연을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에 생긴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모든 것이 흘러가는 그 자체로 느끼고 생각하면 되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자신의 목표인 돈과 권력의 수직 상승만 바라보며 그러한 걸 보지 못했다는 거죠... 그래서 헤르만에 3장의 카드에 집착한 것 같습니다.

 

한 편,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옙스키(Фёдор Миха́йлович Достое́вский, 1821~1881)에 따르면, 이 소설은 '환상과 예술의 정점'을 나타낸다고 합니다. 푸시킨은 장례식날 밤에 나타난 백작 부인의 모습은 과연 실제로 나타난 유령인지, 아님 헤르만이 초자연적인 세계에 들어가 만난건지, 아님 단순히 환영뿐인지에 대한 답을 명확하게 내주지 않습니다. 순전히 읽는 독자들의 해석에 맡긴것이죠. 그래서 조주관 교수는 다양한 비평을 정리해서 이 소설이 사실과 환상이 적절히 섞인 낭만적 리얼리즘의 소설이라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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