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역참지기>
<역참지기(Станцио́нный смотри́тель)>는 알렉산드르 세르게이비치 푸시킨(Алекса́ндр Серге́евич Пу́шкин, 1799~1837)가 이반 페트로비치 벨킨(Ива́н Петро́вич Бе́лкин)이라는 가상의 집필자의 이름을 빌려 1830년 9월 14일에 완성한 단편 소설로, 소설집 <벨킨 이야기>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 소설에서 따와 1972년 레닌그라드 주(Ленингра́дская о́бласть) 가친스키 구(Га́тчинский райо́н) 브일라(Вы́ра) 마을엔 역참지기의 집(Дом станцио́нного смотри́теля)이라는 문학기념박물관이 세워졌다고 하니, 이 소설을 읽은 이후, 이 부근을 여행할 계획이시라면 한번쯤 들러보시는 것도 추천드립니다.
2. <역참지기>의 등장인물
<역참지기>의 등장인물은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나(я)는 이 소설의 화자이자 관찰자입니다. 그 또한 다른 여행객들처럼 두냐에게 마음이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이후에 다시 역참을 들르게 되었죠.
소설의 핵심 인물인 삼손 브이린(Самсон Вырин)은 14등관(러시아 관등제에서의 최하위 말단 관등)의 역참지기입니다. '작은 인간'의 원형으로 보여지는 인물로, 불쌍해 보이지만, 어떻게 보면 소유욕이 강하며 기존의 가족틀을 유지하려고 하는 무능 아버지였습니다.
두냐(Дуня)는 혹은 아브도치나 삼손노브나(Авдотья Самсоновна)는 브이린의 딸로, 역참에서 농사를 짓고, 애교 많고 상냥하고 명랑한 성격으로 역참에 머무는 여러 사람들에게 친절해 인기가 많은 소녀였습니다. 또 눈치가 빨라 상황을 잘 파악하고 읽어 대처를 잘 하는 인물이기도 했죠.
민스키 대위는 삼손 브이린의 역참에 잠시 들렸다가 그의 딸 두냐에게 연정을 느끼고 그를 페테르부르크로 데리고 간 페테르부르크로 가는 역참길을 이용하던 장교였습니다.
양조자의 아내는 삼손 브이린 사망 이후 그의 예전 집에서 남편과 아들 반카(Ванька)와 함께 살던 여성입니다. 그녀는 이후에 이곳을 다시 찾은 나(я)에게 '나'가 역참을 떠나고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간략하게 들려줍니다. 그의 아들 반카에게선 두냐의 이야기를 듣게 되구요.
3. <역참지기>의 줄거리
역참지기이자 홀아비인 삼손 브리인(Самсон Вырин)의 딸 두냐(Дуня)는 정말 아름답고 명랑하고 맑은 소녀입니다.
그렇게 아버지와 딸은 나름 행복하고 평범한 삶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부유한 기병 사관 민스키(Минский)가 그 역참에 도착했는데 공교롭게도 그 날 말이 준비되어 있지 않아 그는 이곳에 잠시 머무르게 됩니다. 그러다 두냐를 마주쳤고, 그는 아픈척을 하며 그녀와 더 친해졌습니다.
그리고 마차가 준비되었던 주일, 삼손은 딸에게 민스키에게 마을 외곽의 교회까지 태워주실거라고 하고 그녀가 그의 마차에 올라타게 그가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며 딸을 설득합니다. 그렇게 두냐는 그의 마차에 올라탔죠. 삼손의 말에 의하면 이 순간이 가장 후회되는 순간이라 하더군요... 그러나 이후 삼손은 그녀가 '그녀의 뜻에 따라' 자신을 민스키에게 맡겼고, 그렇게 그녀 자신을 페테르부르크로 데려갔다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이후 삼손은 페테르부르크로 올라갔고, 민스키와 또 그와 결혼해 즐겁고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는 딸 두냐를 발견합니다. 그리고 그에게 자신의 딸을 돌려달라 했죠. 그러나 민스키는 두냐가 그와 함께 행복할 것이고 이전의 상황으로부터 멀어질 것이라고 말하면서 5루블과 10루블 지폐 몇 장을 주며 삼손을 쫓아냅니다. 그는 홧김에 그 돈을 던져버리지만, 다시 찾으러 가보니 그 돈은 사라진 상태였습니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딸을 보고 싶었던 아버지 삼손은 그녀를 다시 찾아가지만, 두냐는 이미 아버지를 보고 오히려 놀라 넘어졌고, 민스키는 다시 그 노인을 거리로 내던져 버립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나'가 그 역참을 두번째 방문했을 때, 들은 이야기였습니다.
이후 삼손은 자신의 역참으로 돌아와 슬픔으로 밤을 지새우다가 어느날 사망하게 되었죠. 얼마 후, 세 명의 어린 자식과 유모, 그리고 검은 모시카 강아지를 데리고 온 부유하게 차려입은 한 여인이 6두 마차에서 내렸습니다. 그 때 한 소년이 역참지기의 무덤까지 안내해준다고 했지만, 그녀는 자신이 길을 안다면서 그 아이에게 5코페이카 은전을 주었습니다. 이윽고 그녀가 그의 묘지에 도착하여 오랫동안 묘지 언덕에 엎드려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여기까지의 이야기도 이야기 전달자 '나'가 3번째로 역참에 방문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나'는 그 여인처럼 아이에게 감사의 의미로 5코페이카를 줬죠. 그러면서 이번 방문 때문에 쓴 7루블에 대해서도 크게 아깝지 않았다고 말하며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이 이야기의 줄거리는 세 번의 역참 방문에 대한 여행자의 이야기로 구조화되었습니다.
첫 번째 방문에서 그는 역참의 관리인 삼손 브이린과 그의 매력적인 딸 두냐를 직접 만났습니다.
두 번째는 3년 동안 비어있던 삼손의 집에서 딸과 이별하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이자 세 번째, 그 집의 새로운 거주자들에게서 삼손과 두냐의 소식을 들으며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4. <역참지기>의 문학적 특성
<역참지기>는 분명 단편 소설이지만, 등장인물의 스토리는 모두 복잡하면서 긴 타임라인을 가지고 있어요. 몇 장 안되는 이야기이지만, 화자 '나'에 대한 것만 봐도, 5년간의 이야기를 담고 있고, '삼손'과 '두냐'는 딸이 어린 시절부터 그의 사망까지, 또 그 이후의 시간대에 대한 이야기까지 등장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그것뿐 아니라, 관계와 생각이 얽히고 섥히지만, 그 주인공 중 누가 나쁜 사람이고 착한 사람이라 단정지을 수 없는 사람들이 등장인물로 나옵니다. 이 모든 등장인물들은 자신의 개인적 특성과 사회적 정체성에 따라 행동하게 됩니다. 딸을 잃었다고 생각해 페테르부르크로 올라온 아버지, 가난한 집안에서부터 독자적으로 자신의 삶을 찾아가려는 딸, 그리고 그 딸에게 구원자처럼 나타난 부유한 장교 민스키. 이들 모두 자신의 입장에서 자신의 사고 방식에 따라 행동한 것이라고 볼 수 있어 입체적인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많은 비평가들은 '역참지기'가 모욕당하고 사회적으로 비난 받는 모습을 통해 현실주의 문학이 적용되기 시작했고, 그 대상 범위가 하급 관리까지 내려갈 정도로 확대되었다고 평가합니다. 그래서 그의 무시당하는 듯한 모습과 그로 인해 무너져 버린 모습이 보이는 듯 합니다. 또한, 작가 푸시킨은 낭만주의적이고 사실주의적인 시각으로 현실을 보려고 했는데, 이야기 속 화자들은 관습적이면서 감상주의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때문에 그 이중적인 입장과 시각이 같이 보여지는걸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삼손의 죽음의 원인이 외부적인 것이라기 보단, 자신의 집에 걸려 있던 <돌아온 탕아> 그림으로 만들어진 스스로가 만들어낸 도덕적 관념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라고 보는 평가도 있습니다. '돌아온 탕아' 이야기는 '루가의 복음서(누가복음)'에 등장하는 이야기로, 자식 중 한 명이 부모로부터 큰 재산을 받고 도시로 갔으나 방탕하게 돈만 쓰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는데, 아버지가 마치 구원자처럼 그를 끌어안아준다는 조건없는 사랑과 가족 간 관계 회복을 주제로 하는 일화입니다. 이에 따르면 두냐는 결국 민스키를 떠나고 자신에게 돌아와야 하는데,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했던 도덕적 신념이 깨져버리자, 스스로가 그녀를 되찾는 일종의 영웅이 되기 위해 도시의 민스키를 찾아갔다고 볼 수도 있죠.
또 다른 한편, 딸은 주체적으로 구원자처럼 보이는 민스키라는 남자를 따라가 자신의 삶과 가정을 이룩합니다. 어찌보면 현실적으로 가난과 궁핍 속에서 평생을 살게 될 운명에서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 조금이라도 더 나은 곳으로 떠난 현실성 있고 독립적인 사람이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에 맞춰 민스키 또한 그녀를 쾌락의 대상으로만 본 것이 아닌 구원자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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