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동래고등학교(동고)에서 옛 흔적을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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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원과 표로 보는 역사 시리즈/어원과 표로 보는 한국사, 한국문화

부산 동래고등학교(동고)에서 옛 흔적을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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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 산다면 한 번 쯤 들어봤을 동래고등학교. 교내외에서 약칭으로 동고라고도 불리며, 1898년에 설립되었으며, 현재의 명칭 또한 1951년에 정해졌을 정도로 역사도 긴 학교다.

동래부학교(1898.09.~1904.02) 삼락학교(1906.03~1907.11)
개양학교(1904.03?~1907.11)
사립 동명학교(1907.11~1916.10)
사립 동래고등보통학교(1916.10~1922.04)
관립 동래고등보통학교(1922.04~1925.04)
동래공립고등보통학교(1925.04~1938.04)
공립 동래중학교(1938.04~1950.08)
관립 동래고등보통학교(1950.08~1951.09)
동래중학교(1951.09~) 동래고등학교(1951.09~)
* 현재 동래고등학교 동문은 1922년 관립동래고등보통학교 개칭 이후 졸업생부터 인정함

시대가 급변하던 19세기 말, 새로운 교육을 가르쳐야겠다는 다짐아래 한문, 산수, 일본어 등 초등학교 수준의 교육을 위해 설립된 동래부학교와 배일 사상과 민족정신을 고양하기 위해 세운 삼락학교에서부터 시작된 동래고등학교와 동래중학교의 역사는 2023년 기준 125년이나 흘러왔다. 그 만큼 오랜 역사적 흔적이 이곳에 존재한다.

입구에서 조금만 걸어오면 흉상과 명비가 있다.

동래고등학교
6.25 참전 호국영웅 명비

건립취지

이 명비는 6.25전쟁에 참전하여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소중한 생명과 젊음을 바친 동래고등학교 출신
호국영웅들의 숭고한 애국정신을 기리고
후학들에게 나라사랑 정신을 일깨우고자
건립하였습니다.

2017년 10월 30일

부산지방보훈청 동래고등학교
22회
박정우

25회
박경진 박인규 서영수 송수영 오현덕 윤치봉 이동희 정인열 정인태 조용준
 최수철 정장순

26회
곽성호 김경보 김경식 김대성 김상호 김영규 김영진 김원수 김종복 김종학
박규환 박영철 박지웅 백만길 서귀줄 오성건 이승우 최규동 최용학 하팔수
허성종 한옥교

27회
강수호 강열주 곽태언 김만혁 김균재 김남규 김두성 김병곤 김병문 김병재
김병택 김복덕 김복조 김봉석 김상준 김성복 김성수 김영경 김영수 김영오
김영호 김용근 김용해 김인호 김일주 김재덕 김재욱 김재형 김정태 김정한
김종대 김종래 김종민 김종상 김지혁 김지환 김한옥  문백 문영조 문주복
박경래 박광록 박광식 박기복 박동규 박래현 박문정 박상진 박석환 박일해
박정무 박종상 박주용 박주욱 박지홍 박진수 박찬주 방문원 배광열 배정호
배준호 백남길 백만수 설진 손수모 신영철 어진상 임주완 오경환 오재원
우건수 우기진 유일권 이규현 이동원 이맹희 이상찬 이상태 이상화 이성옥
이영길 이오득 이재학 이정기 이정욱 이종규 이창기 이철환 임용성 임울근
장경출 전수상 정만오 정순봉 정영곤 정일모 조성관 차재윤 채병수 최광순
최영완 최우현 최종욱 최 희 한창석 한철우 홍종흠 황선창 황종기
28회
구만기 김강한 김규태 김균희 김극찬 김병조 김선곤 김수철 김신용
김신홍 김열봉 김영대 김영생 김용구 김원규 김원태 김인찬 김종만
김종석 김주택 김지덕 김진식 김철현 김태곤 김현준 노영운 도영봉
류수열 명종식 문경배 문광수 문광환 문성조 문영석 문장합 문한식
문학익 문한종 박선묵 박연수 박영대 박영대 박영환 박우창 박위식
박재호 박춘현 박효상 방창성 배영환 배정학 백영학 서태수 성부영
손천일 손충익 송흥복 신익순 안영필 양석모 오경수 오문갑 유정근
윤수관 윤임환 이동률 이상길 이상원 이종근 이창두 이철석 이태걸
임무섭 임영수 임인재 임정욱 임정희 임화주 장성민 장해룡 장호익
정석수 정인하 정정화 정종서 조안원 지달현 차상술 최남기 최동석
최영거 최영모 최영화 최희준 추영석 황경호

29회

강갑천 김덕수 김병규 김봉주 김선규 김소진 김용기 노재진 노진구
박명실 박문근 박문봉 박성엽 박학봉 백문수 손관일 신문기 신용화
신정균 신종명 신혁영 심재홍 양정모 양영문 어지홍 오정근 윤운성
윤재득 이경덕 이규식 이근택 이동관 이문재 이석형 이종화 임상섭
장덕삼 장일성 정인생 정장배 정종영 정홍구 조낙원 최용해 최정희
김정호

30회
김원근 김정배 김종근 박동욱 심상훈

흉상 앞면 흉상 앞면 기준 우측면
곽상훈 지사상
(郭尙勳志士像)
삼연 곽상훈 연보

* 1896년 10월 21일 기장에서 출생
* 1912년 동명학교 고등과 제4회 졸업
* 동래사립 고등보통학교 제1회 졸업
* 1919년 경성 고등공업학교 재학 중 3.1운동 참가
            탑동공원에서 만세시위 운동
▶ 운동경위 독립선언서를 문창호지에 베껴 찢어서 노끈으로 꼬아
                 몰래 숨겨와 동래고등보통학교 이환 선생님(동명1회)과
                 의논하여 동래고보 전학생과 동래 일신학교 전학생이
                 의거에 참가하도록 지도하셨다
                 그 후 서울에서 일경의 체포령이 내려 중국 상해 망명
                 전날 일본 앞잡이의 밀고로 검거되어 옥고를 치르셨다
                 해방까지 국내는 물론 상해 임시정부의 요원으로 조국
                 광복에 전력을 경주하셨다
* 1948년 제헌 국회의원
* 1949년 반 민족행위 처벌 재판 검찰차장
* 1950년 2대 국회의원(전원(全院)위원장)
* 1954년 3대 국회의원(부의장) 민주당 최고위원
* 1958년 4대 국회의원(국회의장)
* 1960년 대통령 권한 대행 5대 민의원(의장)
* 1969년 국토통일원 자문위원
              육영재단 이사장
              국민훈장 무궁화장 수상
              대한민국 국회의원 동지회장
* 1971년 제헌 동지회 회장
* 1972년 한국장학재단 이사장
              김구/윤봉길의사 기념사업 회장
* 1980년 1월 19일 선생님께서는 대한민국의 고국과 발전에 온 뜻을
             바치고 85세로 삶을 마감하셨다

입구에서 조금만 가다보면 이런 나무가 있는데,

이 둥근 향나무는 1937(년) 12월 본교와 부산 철도팀과의 럭비 시합 때 부상으로 사망한 고기윤(高基潤) 군(君)의 얼을 기념함
학우들의 조위금(弔慰金)에 그의 부형께서 사재를 더하여 그 넋을 교정에 심었음 본교사 화재로 손실되고 그 일부가 남았음
동래 고등학교
1970 11 3 건립

1937년 12월, 럭비 시합을 하던 중 다쳐 사망한 당시 학생이던 고기윤 군의 얼을 기리기 위한 위령비도 세워져 있다.

학교 건물 가운데는 이렇게 크나큰 시계와 학교 상징인 벌이 박혀 있었다. 

그 앞엔 100주년 기념탑이라고도 불리는 '동고교풍 신종여시(東高校風 愼終如始)'라고 적힌 돌탑이 하나 있다.

동고교풍은 '동래고등학교(東高)의 교풍'이란 뜻이며, 신종여시란 '일이 마지막에도 처음과 같이 신중을 기하라'는 뜻이다.

 

학교 본 건물에서 오른쪽으로 더 가면 체육관인 군봉관이 있다.

건물도 근현대 시절의 느낌이 나는 듯해 정말 여기가 역사가 깊은 곳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들이 축구를 하고 있다. 몇 십 년 전에도 학생들은 여기서 축구를 하고 있었겠지...그들 중 일부는 지금 축구를 하고 있는 학생들의 부모님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시비 앞면 시비 뒷면
깃발 

청마(靑馬) 유치환(柳致環)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 
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아 누구인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닯은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재직 망월 동문들이 뜻을 모아
이 시비를 세우다

최욱     (29회) 이인배(48회)
김일호 (33회) 신호광(49회)
김장웅 (36회) 김주식(50회)
김몽희 (41회) 이수원(52회)
장홍석 (47회) 남상직(52회)
진광호 (48회) 조태원(55회)

글씨 류영남
1995.12.

입구에서 큰 기념비가 있는 좁은 길로 들어가다 보면

교과서나 참고서에도 많이 실려 있는 청마 유치환의 깃발이라는 시가 보인다.

청마 유치환은 1908년에 거제도에서 태어나 1926년에 동래고등보통학교(현 동래고등학교)을 졸업하곤 교사 생활과 더불어 시를 썼던 분이다. 이분도 현 동래고등학교 동문이다.

시비를 돌아 더 안으로 돌아가면 큰 기념탑 하나가 있다.

안내판 건립기념비
항일운동기념탑

국가현충시설 제 40-1-20호
관리자 : 동래고등학교

이 탑은 1898년 동래부학교로 개교한 이래 일제강점기에 동래지역 3.1운동을 비롯하여 부산항일학생의거(일명 노다이사건) 등 무려 10여 차례 항일민족운동을 주도하고 그 선봉에 섰던 동래고 출신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들의 숭고한 일과 희생정신을 기리고, 이를 애국, 애족, 애교, 봉사의 동고정신과 신종여시(愼終如始)의 동고교풍으로 승화시켜 만세에 길이 전하고자 전 동문의 성금과 동래기영회, 부산광역시, 부산광역시교육청의 찬조금으로 개교 100주년을 앞두고 제34회 동고의 날에 즈음하여 1995년 11월 4일에 건립되었다.
탑의 구조와 규모는 지름 9m의 화강석 기반 중심부에 2단의 좌대를 만들어 그 위에 높이 3.3m의 청동으로 된 5인 학생군상을 올려세웠으며, 이 군상을 둘러싸고 정면에서 후면으로 높이를 늘려가며 좌우 대칭형의 기초탑신 10개를 세우고 기초탑신이 모이는 후면 중앙에 높이 9m의 중앙탑신 1개를 우뚝 세웠다. 5인 학생군상은 동고인의 표상으로서 횃불을 높이 든 모습은 항일운동의 선봉이었음을, 교련복 차림은 노다이사건을, 옷통을 벗은 두 사람은 자유와 정의를 수호하고 진리탐구에 앞장서고 있음을, 한복 차림은 민족얼의 계승자임을 나타내고 있다. 100년의 동고사를 10년 단위로 나눈 기초탑신은 고난과 시련을 극복하고 날로 발전하는 동고를 표현한 것이며, 중앙탑신은 오랜 역사와 자랑스런 전통 및 동고정신을 하나로 결집시켜 힘차게 웅비하고자 하는 동고인의 이상과 의지를 상징한 것이다.
본 기념탑은 동래고 이만오천 전 동문의 성금과

동래고등학교 동창회장 조영수(35회)
기념탑 건립위원장 문한기(32회)
재경기념탑 건립위원장 박관용(33회)
망월장학회 이사장 김성수(30회)
동래고등학교장 허광열 등의 열성과
동창회 고문 손유복(27회) 1억 성금
재경동창회고문 신동일(30회) 이천만원 성금
동래고 전신의 삼락학교 설립기구인 동래기영회
부산광역시청 부산광역시 교육청의 찬조금으로 건립되다

1995년 11월 4일

학생 신분이었지만 일제에 맞서 항일운동을 펼쳤던 동래고등학교 학생들의 모습을 조각하고, 그들을 기념하는 항일운동기념탑이다.

탑 뒷면에 새겨진 글귀
  임진왜란 때 왜군이 동래성을
무너뜨리고 동래부사 송상현공을
사살한 뒤 동래읍을 피바다로 만
들고 한국을 그들의 식민지로
삼은 기틀을 만든 것이 어언 사
백년이 넘는고나 그동안 우리
겨레가 삭혀온 고통이 얼마나
컸던가
  왜적에 대한 반항정신은 바로
그 뒤 동고의 정신전통으로 뻗어
오지 않았던가
  이제 동고가 세우는 이 백년
기념탑은 바로 왜적을 물리치고
자주독립을 맹세하는 동고정신
의 상징이라 하겠도다
   우리 동고인은 이 기념탑을
우러러 보며 평화의 자주독립의
수호를 영원히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동고 5회 졸업생
요산 김정한 지음 

탑 뒷면에 새긴 글귀는 부산지역의 대표적인 소설가이자 동래고등학교 5회 졸업생이었던 요산 김정한이 썼다.

여기까지만 보더라도 유치환, 김정환 등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 이 학교를 건너갔던 것 같다.

항일운동기념탑 뒷편의 작은 산책로로 들어가면, 2개의 기념비를 볼 수 있다.

 

기념비 앞면 기념비 앞면 기준 왼쪽면
고 설립자 대표 이상흔 공적 기념비
(故設立者代表李相昕功績紀念碑)
대정(大正) 5년(1916년) 3월 13일
교우회(校友會) 세움(立)

이상흔(李相昕, 1847~1915)은 동래에서 태어나 동래기영회에 가입해 삼락학교 설립에 도움을 주고, 이후 삼락학교와 개양학교가 합쳐 동명학교로 설립할 때 그 대표로 활동해 동명학교 설립자이자 동래기영회 대표로 활동했던 분이었다.

그렇게 1907년 동명학교가 설립되었고, 그는 1915년 사망 당시까지 설립자로서 학교장과 함께 학교를 이끌어갔다.

그가 사망하고 얼마 안지난 1916년 3월, 교우회는 그의 교육적 공적을 기리는 기념비를 세웠다.

그 비가 지금 동래고등학교 한편에 위치한 '고 설립자 대표 이상흔 공적 기념비'다.

동래고등학교 100년 기념비
동래고등학교 100년
빛나는 역사는 벌떼의 양식인 꿀의 힘이나니 한 발울방울마다
벌떼의 날개 짓은 땀과 눈물이어라
모교와 동창회를 사랑하는 열의와 정성으로 장학사업,
100주년기념사업, 체육부지원에 남달리 헌신한
고마운 일벌의 이름을 여기 항일운동기념탑 발치에
동고인 모듀의 정성을 모아 표석을 새기나니
-1억원 이상 출연 동문-
박정관(10회) 망월장학기금 1억원
손유복(27회) 100주년기념사업 1억원
조영수(35회) 망월장학기금 1억원
                      100주년기념사업 5천만원
박대성(42회) 축구부후원금 1억4천만원

2003년 11월 16일
동래고등학교동창회

그 바로 옆에는 1998년에 개교 100주년을 맞은 동래고등학교에 1억원 이상의 돈을 출연한 동문들 4명을 기리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이 기념비는 2003년에 지어졌다. 여기 적힌 사람들은 한 때 사회에서 큰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도 있었다.

 

박정관씨는 '민주시보 사장, 한미석유 사장, 한흥석유 회장, 부산상공회의소 부회장, 한국석유협회 이사' 등 사회, 경제면에서 큰 영향력을 펼친 분이었으며, 조영수씨는 동래고등학교 운동부에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는 분이셨다. 그 외 두 분은 어떤 분인지 찾을 수 없었으나 사회와 동문에 좋고 많은 영향을 끼친 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역사 깊은 동래고등학교 답사를 마치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오랜 세월 동안 많은 비바람을 맞으면서도 일제에 저항하고, 독립 이후에는 사회에 많은 영향력을 펼치고, 또 학생 교육까지 아낌없이 투자해온 많은 동래고등학교의 학생과 선생들은 미래에 투자하는 방법을 잘 아는 것 같았다.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우리는 광복을 결국 이겨냈고, 또 산업화를 통해 경제적으로 큰 성장을 했으며, 교육을 통해 많은 문화, 문학, 교육적인 업적도 남기고 있다.

최근에야 동문, 동창회와 같은 인식이 전보단 약해졌지만, 그럼에도 그런 명맥으로 아직 사람들이 모이고, 후배들을 돕는 이런 문화는 비록 동래고등학교를 다니진 않았지만 아직까지 내게 인간미와 감사함을 느끼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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