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코닉 화법이란? - 스파르타와 화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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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코닉 화법이란? - 스파르타와 화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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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도니아의 필립 대왕이 스파르타에 주저리주저리 최후통첩을 보냈다. "즉각 항복하는 것이 좋을 거다. 만약(if) 내가 군대를 이끌고 너희 나라로 들어갈 경우에는, 내가 너희의 농장을 파괴하고, 너희 백성을 도살하고, 너희 도시를 무너뜨릴 테니까." 스파르타의 공식 답변은 딱 한 단어였다. "만약에(if)" 스파르타의 승리다. 수사학에선 이런 축약어법을 라코닉(laconic)이라 부른다. 소크라테스도 탄복했다는 스파르타 사람들의 라코닉이 요즘 한국사회에서도 뜨고 있다.

- 부산일보

1. 라코니아

빨간색으로 칠해진 곳이 라코니아(Laconia, Lakonia)다.

라코니아(Laconia, Lakonia)는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남동쪽에 위치한 역사적 지명이자 현재의 그리스의 행정 구역 중 하나이며, 행정 중심지는 스파르티(Σπάρτη) 즉 스파르타다.

북쪽으로는 아르카디아에, 서쪽으로는 메시니아에 접해있으며, 남쪽에는 키티라 섬, 안티키티라 섬, 크레타 섬 등이 위치해있다. 한편, 라코니아를 가로지르는 에우로타스 강(Εὐρώτας)이 있는데, 이 강변에는 감귤류, 올리브 나무 등이 많이 자라며, 목초지로도 쓰인다. 이러한 영향으로 라코니아는 펠로폰네소스 반도와 그리스 전역에서 가장 큰 오렌지 생산지가 되었다.

이 지역의 남쪽에 있는 알레포트리파 동굴(Alepotrypa Cave)에서 발견된 흔적을 통해 이미 신석기 시대 때부터 사람이 살았음을 알 수 있고, 바피오 무덤 유적에서 발견된 고고학적 유물을 통해 크레타 섬의 미노아 문명에서 사용된 청동기 예술 작품이 다량 발굴되면서, 라코니아 지역이 미노아 문명과 문화적으로 연관이 있었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기원전 13세기경, 미케네 문명을 멸망시키며 남하한 도리스인은 기원전 10세기경, 후대에 스파르타(Σπάρτα)라고 알려진 라케다이몬(Λακεδαίμων)을 세웠는데, 이 지역도 자연스레 스파르타의 영역이 되었다. 당시의 도시국가 이름부터 이미 라콘(Λᾰ́κων)의 구역(δῆμος)이라고 불린 것을 보아, 기원전 10세기에도 이 지역을 라콘이라고 불렀음을 알 수 있다.

이후 스파르타의 주도로 기원전 6세기부터 4세기까지 펠로폰네소스 동맹의 영역으로 남았으며, 기원전 2세기부터 4세기까지 로마의 손에 들어가게 된다.

이후 동로마 제국(395~1453)에 속했다가, 제4차 십자군 원정(1202~1204) 이후에는 라틴 제국(1204~1261)의 아카이아 공국(1205~1432)에 속하게 된다. 이후 동로마제국의 모레아 전제공국(1349~1460)에 소속되어 약 17세기 가량 라코니아는 크리스트교의 영역이었으나, 1460년, 오스만 제국(1299~1922)의 영토가 되며 이슬람교의 영역으로 바뀌게 된다.

그렇게 오스만 제국에게 속하게 된 지 약 360여년이 지난 1821년, 그리스 독립 전쟁(1821~1829)이 일어나 그리스 제1공화국(1822~1832)이 건국되었고, 이 때부터 이 땅은 헬렌(그리스)의 손에 다시 들어오게 되었다.

2. 라코닉(laconic) 화법=라콘식 화법

종종 라코니즘(laconism)이라고도 부르는 라코닉 화법 혹은 라코닉(laconic)무뚝뚝하고 일부 단어가 생략된 간결한 화법 혹은 답변을 말한다. 옛 도시국가 시절, 라케다이몬(스파르타) 사람들은 줄여 말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래서 이들의 화법을 '라콘식'이라는 뜻의 라코닉(laconic)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이러한 라코닉 화법은 군사 훈련이나 작전과 같은 상황에서의 효율성을 가지며, 스토아 학파와 같이 철학적 근거를 논할 때나 강조하고 싶을 때 유용했으며, 거만한 상대를 비하할 목적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마케도니아가 그리스 북부와 남부를 차례차례 점령하던 중이었다.

마케도니아는 그리스 남부 대부분을 차지했다.
이러한 때 그대 라케다이몬(스파르타)은 우리와 친구가 되겠는가, 적이 되겠는가?

- 필리포스 2세

이 때 스파르타는 말했다.

둘 다 아니다

- 스파르타

이에 인내심을 잃은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2세는 다시 한 번 스파르타에 서신을 보냈다.

만일 내가 라코니아를 침략한다면, 내가 너희의 농장을 파괴하고, 너희 백성을 도살하고, 너희 도시를 무너뜨리고, 너를 쫓아내리라

- 필리포스 2세

이에 스파르타는 공식 답변을 해왔다.

그런다면(if)

- 스파르타

분을 참다 못한 필리포스 2세는 결국 라코니아 지역을 침공해 스파르타를 그 지역에서 몰아냈다...ㄷㄷ

참고로 이런 방식의 화법을 쓰는 서양의 다른 역사적 문화로는 아이슬란드인의 사가가 있으며, 집단으로는 오스트레일리아인, 미국의 카우보이, 뉴잉글랜드인, 북부 잉글랜드에서 온 사람들이 있다.

3. 라코닉(laconic) 화법 예시

상대를 깔보는 듯한 단순한 화법으로 대답을 듣는 이에게는 분노를 제3자의 입장에서는 웃음을 선사하는 이 라코닉 화법의 예시를 몇가지 살펴보며 글을 마치겠다. 이 중 스파르타의 전설적인 입법관으로 알려진 리쿠르고스에 대한 일화가 많다.

고위 공직자들 "우리 이 땅에 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합니다!"
리쿠르고스 "너네 가족이랑 (먼저) 시작하세요"
누군가 "스파르타가 모국을 외세로부터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인가요?"
리쿠르고스 "너부터 가난하게 살고, 동료보다 많은 걸 소유하기 바라지 말라"
누군가 "도시를 둘러싸는 방어벽을 어떻게 쌓는 것이 현명할까요?"
리쿠르고스 "벽돌이 아닌 사람으로 쌓아야 한다" (사람이 잘 지켜야 한다는 뜻)

누군가 "그럼 이 동방의 성벽은 어떠한 것 같습니까?"
리쿠르고스 "여성을 위한 훌륭한 숙소구나!" (내실의 중요성을 강조, 남자와 여자의 임무 차이를 알림)
여행자 "왜 스파르타인들은 그들의 밭을 자신들이 아닌 노예(helot)에게 맡기는 것입니까?"
아나칸드리다스 2세(Anaxandridas ii) "밭을 돌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를 돌보는 것입니다"
(스파르타인들은 밭이 아닌 스파르타를 돌보아야하며, 노예들은 노예들이 맡은 밭을 돌보아야한다는 의미)
누군가 "누가 가장 모범적인 스파르타인입니까? 왜 대답을 안해주십니까? 전하~"
데마라투스(왕) "최소한 너는 아니다"
페르시아 장군 "그대는 공적 자격으로 온 것인가, 사적 자격으로 온 것인가?"
폴리크라티다스(Polycratidas) "우리가 성공하면 공적이고, 그렇지 않으면 사적이다"

이후의 3가지 이야기는 영화 300 시리즈의 배경이 되었던 페르시아와 스파르타의 결전으로 여겨지는 기원전 480년에 일어났던 테르모필레 전투와 관련된 라코닉 화법의 예시다.

고르고 "남편이시여, 그대가 전투로 나아가는데 소인은 무엇을 하면 좋으리까?"
레오니다스 1세 "좋은 남자와 결혼해서 좋은 아이를 낳거라"

(레오니다스 1세는 테르모필레 전투에서 결국 사망하고 만다...)
페르시아군 "우리의 화살이 태양을 가릴 것이다!"
스파르타군 "그럼 그늘에서 싸울 수 있겠군"
페르시아군 지휘관 "(전투에서 졌으니) 그대들은 항복하고 무기를 넘겨라"
스파르타군 "와서 가져가라"

가오나 허세가 몸에 배었다고 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 속에 뼈가 담겨 있기 때문에 더욱 재미와 교훈을 많이 주는 화법이다. 요즘 실생활에서 응용해도 꽤 재밌고, 유익할 만한 화법이지만, 사용하고 싶다면 상대가 열불날 수도 있으니 조심해서 사용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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