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리뷰] "내가"의 '-가'가 일본어에서 왔다? 주격조사 탄생의 미스터리 (주지연,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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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한국어

[논문 리뷰] "내가"의 '-가'가 일본어에서 왔다? 주격조사 탄생의 미스터리 (주지연,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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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국어학계의 오랜 미스터리 중 하나인 주격조사 '-가'의 기원을 다룬 흥미로운 논문을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

우리가 매일 쓰는 '내가', '네가'의 '-가'가 사실 임진왜란 전후 일본어와의 접촉으로 생겨난 것일 수도 있다는 가설, 들어보셨나요?

저는 한국어와 일본어의 깊은 역사적 교류 속에서 문법적인 요소까지 전이되었을 가능성을 다룬 이 주지연 교수님의 <한국어 주격 조사 '-가'는 차용되었을까 -언어 간 문법 형식의 전이 가능성에 대하여->를 읽으면서 정말 신선한 충격을 받았거든요. 제가 느낀 흥미로운 지점들을 중심으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한국어 주격 조사 ‘-가’는 차용되었을까? -언어 간 문법 형식의 전이 가능성에 대하여- - 국어

본고의 목적은 주격조사 ‘-가’가 일본어로부터 전이되었을 가능성을 탐색하고, 언어 접촉으로 인한 문법 형식의 전이 양상을 살펴보는 데 필요한 몇 쟁점을 검토하는 것이다. 한국어 주격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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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가'의 기원을 찾는 새로운 시각

한국어 주격조사 '-가'는 원래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이'만 존재하던 시기를 지나 후대에 갑자기 등장했습니다.

이 기원을 두고 한국어 내부의 변화로 보는 내적발달론과 외국어의 영향으로 보는 접촉발달론이 맞서고 있죠. 본 논문은 특히 지금까지 주로 논의되지 않았던 '언어 접촉'을 통한 문법 형식의 전이 가능성에 주목합니다.

 

2. 기본적 논의: 왜 '-가'의 등장은 미스터리인가?

15세기까지만 해도 주격조사 '-가'의 흔적은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러다 17세기에 들어서며 문법화의 중간 단계 없이 매우 갑작스럽게 등장하는데요. 임진왜란 전후 시기인 송강 정철 어머니의 편지(1572)나 일본어 교습서인 <첩해신어>(1676) 등에서 그 흔적이 보입니다. 그런데 학계에서는 그동안 '문법 요소'는 어휘만큼 쉽게 빌려오기 어렵다는 통념 때문에 일본어 차용설은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학계에서는 '조사 같은 핵심 문법을 외국에서 빌려온다고?'라는 회의론 때문에 이 가설이 오랫동안 외면받아 왔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주지연 교수님의 이 논문은 꽤 흥미로운 주제였죠.

 

3. 차용 가능성 위계: 조사(助詞)를 빌려오는 게 가능할까?

논문은 여러 언어학적 위계를 통해 '-가'가 일반적인 방식으로 차용되었을 가능성을 먼저 검토합니다.

 

3-1. 접촉강도와 차용가능성 위계

Thompson and Kaufman(1988)에 따르면, 주격조사 같은 문법 형식이 전이되려면 '강한 접촉'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당시 한국어 전반에 일본어의 구조적 영향이 광범위하게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차용'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하긴, 특수 계층 일부만 쓴 것이 하나의 언어표현 전반을 바꾼다는 것은 불가능하진 않지만 쉽지 않은 일이긴 하죠.  

 

3-2. 문법구조적 결합 정도와 차용가능성 위계

Moravcsik에서 시작해 Booij와 Gardani로 이어진 논의에 따르면, 언어학적으로 '자립 형식 > 의존 형식(굴절(내재적 굴절>문맥적 굴절))' 순으로 차용이 잘 일어납니다. 그 중 주격조사는 문장에서 격을 결정하는 '문맥적 굴절'에 해당하여 위계상 가장 차용되기 어려운 단계에 속합니다.

 

그러면 다른 조사 차용도 보여져야 하거나, 그 이전 내재적 굴절 관점에서의 일본어 차용이 있어야 하는데, 아직 그런 증거를 학자들이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도 이 문법구조적 차용가능성이 힘들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3-3. 의미·화용적 기능과 차용 가능성 위계

Haspelmath and Tadmor(2009)의 주장에 따르면, 보통 도착어에 없는 개념을 채울 때 차용이 일어나는데, 한국어에는 이미 '-이'가 있었으므로 저자는 이에 대한 '기능적 빈칸'의 존재 가능성은 긍정하지만 '개념적 빈칸' 때문에 '-가'가 등장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여깁니다.

 

 

4. 언어 접촉 과정에서의 행위자성: 전이의 '주체'에 주목하다

여기서 논문은 Winford(2005) 등 '행위자성(Agentivity)'이라는 핵심 개념을 도입하여 반전을 꾀합니다.

4-1. 언어 접촉 과정에서의 행위자성(agentivity)

도착어 행위자성
(RL agentivity)
도착어 화자가 주도하며 어휘 항목 중심으로 전이됨 (차용)
출발어 행위자성
(SL agentivity)
출발어 화자가 주도하며 음운 및 통사 구조 중심으로 전이됨 (부과(imposition))

주격조사와 같은 핵심 문법 요소의 도입은 출발어 행위자성에 의한 '부과'의 결과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4-2. 한국어 주격조사 ‘가’의 전이 상황 검토

당시 조선에는 출발어 행위자성을 가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두 집단이 존재했습니다. 바로 피로인과 항왜죠.

피로인
(被虜人)
일본에 끌려가 10~30년간 생활하며 일본어가 우세해진 상태로 귀환한 조선인
일본어에서 영향을 받은 표현을 한국어로 표현했을 가능성이 큼
항왜
(降倭)
임진왜란 당시 투항하여 조선에 정착한 일본인
한국어 구사 시 일본어의 문법 구조를 부과(imposition)했을 가능성이 큼
선조가 '왜어 금지령'을 내릴 정도로 이들의 언어적 영향력은 상당했을 것으로 여겨짐

이들의 표현을 통해 주격조사 -가 를 포함한 다양한 일본식 표현이 한국어에 유입된 것으로 여겨집니다.

 

실제로 <조선왕조실록>에서 왕이 '원수인 오랑캐들의 말이 항간에 섞이지 않게 하라'고 이야기할 정도면, 피로인이든 항왜든 일본어 사용 집단의 표현이 한국어에 영향을 줬을 거라는 합리적인 생각이 들었습니다.

 

5. 결론: 미스터리를 푸는 새로운 열쇠

결론적으로 주격조사 '-가'는 일반적인 차용으로는 설명하기 힘들지만, 특수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유입된 출발어 행위자성 집단에 의한 전이로 보면 합리적인 설명이 가능해집니다. 학계의 정설을 넘어 새로운 분석 틀로 역사의 미스테리를 풀어가는 과정이 정말 흥미로운 논문이었습니다. 연구는 이런 식으로 해야한다는 생각이 들면서 우리말의 형성 과정이 얼마나 역동적이었는지 다시금 느끼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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