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바다에 빠진 어부 남편을 돌 위에서 기다리다 영원히 잠들어버린 아내를 모시다, 해운대 청사포 당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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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원과 표로 보는 역사 시리즈/어원과 표로 보는 한국사, 한국문화

[부산] 바다에 빠진 어부 남편을 돌 위에서 기다리다 영원히 잠들어버린 아내를 모시다, 해운대 청사포 당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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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포 당산과 손공장군비의 위치 (지도 출처 : 카카오맵)

부산 해운대구 중동의 청사포. 이곳에는 청사포당산과 손공장군비가 있습니다.

 

[부산] 바다와 철길이 만나는 남편을 기다리던 한 부인의 기억을 담은 해운대 청사포 마을 걷기

부산 해운대구 해운대 해수욕장의 동백섬에서 출발하여 미포, 청사포, 구덕포까지 이어지는 해운대 삼포길을 걷다 보면 청사포로 내려가는 길목 위에 지어진 다리가 있습니다. 이 다리에서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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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출처 : 카카오맵

청사포 당산
소재지 :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중2동 594번지
이곳은 단기경술년(1970년)에 건립되었으며, 당사 안쪽에는 '현동조비김해김씨신위(顯洞祖妣金海金氏神位)'라 쓴 위패가 있고, 당사 안 서쪽 벽에는 한지로 만든 성주 신체가 붙어 있다. 제의 날짜는 음력 1월 3일, 6월 3일, 10월 3일 자정이며 산신제, 본당제(골매기제), 거릿대장군제, 망부석제 순으로 제를 모신다. 김씨 골매기 할매를 모시게 된 연유는 300여년 전 청사포가 생겨날 당시 아리따운 어부의 아내가 남편이 배를 타고 고기잡이를 나갔다가 배가 파선되어 생사를 알 수 없음에도 그 남편이 돌아오리라 생각하고 매일 기다렸다고 한다. 현재 300여년 된 망부송(望夫松)도 어부의 아내가 심은 것이라 전해온다.

그 뒤 어부의 아내(김씨 할머니)가 망부석(望夫石)에서 바다를 보고 명을 다하자, 마을 사람들이 그 할머니의 정절을 기리기 위해 골매기 할매로 좌정시켰다고 한다. 거릿대장군제를 지내는 신역(13평)은 옛날 걸신, 잡신들을 모시던 신역이었는데, 이 마을이 생기고 어느 해 마을 앞바다를 항해하던 배가 풍랑을 만나 침몰하여 그 배에 타고 있던 이름을 알 수 없는 한 시신이 파도에 밀려 이 신역에 당도하자 그를 걸신과 잡신의 우두머리로 삼아 손장군(孫將軍)이라 칭하고 거릿대나무(Y형 나무로 굵기는 27cm, 높이는 75cm) 옆에 화강암 비석을 세우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이곳의 보호수로 지정된 망부송이라는 이름의 보호수가 있습니다. 1980년에 지정 당시 나이는 300살로 추정되며, 당시 기준 수고 15m, 나무둘레 2.9m였다고 합니다.  지정번호는 2-9-1이고, 관리자는 청사포 주민이며, 소재지는 해운대구 중2동 594-1이라고 하네요.

청사포 당산의 당집입니다. 가로 약 3m, 세로 2.7m, 높이 2.7m에 넓이 약 8㎡이며, 옛날에는 양쪽으로 여닫는 나무문이 있었으나, 최근 새로 외짝의 나무문으로 바꿨다고 합니다. 이 제당 내부의 벽면은 흰색이며, 장판은 노란색의 비닐을 깔아두었습니다. 이 대들보에는 '단기병술년(1970년) 10월 23일 오시(午時)에 기둥을 (새로) 세우고, 상량했다'는 글귀와 '임오년(2002년) 3월 초파일 오시(午時)에 상량했다'는 글귀를 통해 1970년에 수리하고, 2002년에 재수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출입문에서 정면의 벽에 나무로 만든 위패함을 붙여 두었고, 위패함 1m 쯤 아래에 인조대리석으로 다시 세운 제단이 있습니다. 이곳에는 골매기할매 현동조비김해김씨(顯洞祖妣金海金氏)를 모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출입문 기준 왼편에는 한지를 접은 신체를 두어 성주를 모시고 있으며, 출입문 기준 오른편에는 세존을 모시고 있습니다.

본당인 당집 뒤편에는 산신당이 있습니다. 앞문은 없는 독특한 형태를 가졌죠. 그 옆에는 제기와 기물을 보관하는 창고가 있습니다.

 

남편이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 그리고 한동안 그 사실을 알지 못했거나 애써 기억하지 않으려 했다는 이야기 구조는 부산 구포동 당숲의 당산의 전설과 비슷한 부분이 있습니다. 

 

이어지지 못한 슬픈 사랑이야기를 담은 구포동 당숲

부산 북구 구포동에서 삼경장미아파트 동북쪽에 큰 규모의 당산이 있습니다. 1949년 5월에 건립해 1969년에 중수했고, 1987년 5월 26일에 개수(고쳐 수리)를 했다고 하는데요. 1987년 개수 당시 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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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우리가 흔히 ‘당산’이라고 부르는 것들 가운데 일부는 단순한 신앙의 대상이 아니라, 당시에는 이어질 수 없었던 젊은 남녀의 사랑이나 비극적인 사연을 기억하고 위로하기 위해 남겨진 공동체의 기억이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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