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키르기스스탄 잘랄아바트주 악시구

키르기스스탄 잘랄아바트주 악시구(Аксыйский район, Аксы району).
1935년 10월 29일에 타시-쿠미르구(Таш-Кумырский район, 1935.10.29.-1942.11.15.)라는 이름으로 행정구역이 세워졌다가, 잔니-졸구(Джаны-Джольский район, 1942.11.16.-1992.03.06.)로 잠시 바뀌었다가 악시구(Аксыйский район)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 불리고 있는 행정구역이죠. 키르기스스탄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이 행정구에 137103명이 살며 인구수는 증가세라고 합니다.
2. 악시 사건(악스이 사건)이란?

악시사건(Аксыйские события)은 2002년 3월 17일에 키르기스스탄 잘랄아바트주 악시구의 보스피예크(Боспиек) 마을 지역 주민들이 중국에 9만 헥타르의 영토를 넘겨주는 것에 반대하는 시위에 정부가 총격으로 진압하여 6명이 사망한 사건입니다.

이 사태는 악시 지역 출신 국회의원 아짐베크 아나르쿨로비치 베크나자로프(Азимбек Анаркулович Бекназаров, 1956-)가 2002년 1월 5일에 긴급 체포된 것이 이 시위의 직접적인 원인이었습니다. 그럼 도대체 왜 그가 체포되었을까요?
아짐베크 아나르쿨로비치 베크나자로프(Азимбек Анаркулович Бекназаров, 1956-)는 1995년에 살인사건 피의자를 석방한 건으로 긴급체포 되었습니다. 엄청 오래전 사건으로 인해 그가 체포된 까닭은 바로 그가 당시 대통령 아카예프가 1996년과 1999년에 장쩌민과 협약을 맺어 우존구-쿠우쉬(Узонгу-Кууш) 등을 포함한 125000 헥타르에 달하는 키르기스스탄 영토를 중국에 넘겼다는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엄연한 정치 탄압이었죠.


이 소식을 들은 야권의 셰랄리 나자르쿨로프(Шералы Назаркулов, 1950-2002)는 중국에 우존구-쿠우쉬(Узонгу-Кууш)를 양도하는데 반대하고 당시 연행되었던 악시 지역의 국회의원 아짐베크 베크나자로프(Азимбек Бекназаров)의 석방을 요구하며 단식 투쟁을 시작합니다. 이후 22일이 되는 2월 6일에 결국 페르보마이구의 한 정부청사에서 사망합니다.

아짐베크 아나르클로비치 베크나자로프의 긴금 체포와 셰랄리 나자르클로프의 단식투쟁을 본 당시 키르기스스탄 야권에서는 수도 비슈케크를 포함한 여러 지역에서 시위를 조직했으며, 그렇게 훗날 키르기스스탄의 제2대 대통령이 되는 당시 국무총리 쿠르만베크 살리예비치 바키예프(Курманбек Салиевич Бакиев, 1949-)와 그 정부 수반이 사퇴하며 당시 대통령 아스카르 아카예비치 아카예프(Аскар Акаевич Акаев,1949-)에 대한 지지가 낮아지며 권력이 약화됩니다.

그리고 희생자들은 2005년 튤립 혁명 이후에 에르딕(Эрдик, 용기) 훈장이 사후서훈되었습니다.


이후 민주화의 물결에 따라 악시 사건은 매년 기념됩니다. 그리고 비슈케크와 악시구 보스피예크 등 각지에는 그 사건을 기리기 위한 기념물이 세워집니다. 아카예프 정권의 부패가 영토 양도 문제와 정치 탄압이었던 지역구 국회의원의 긴급체포를 계기로 일어난 이 악시 사건은 키르기스스탄의 민주화가 시작되는 상징으로 후손들에게 기억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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