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이 끝난 뒤, 친구와 1927년에 개관한 통칭 프룬제 박물관, 정식 명칭 미하일 바실리예비치 프룬제 기념 집박물괌(Мемориальный Дом-музей М.В. Фрунзе)을 찾았습니다.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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Улица Фрунзе, 364, Первомайский район, Бишке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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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업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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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일 09:00-18:00
(매표소 : 09:00-17:00) |
전화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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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6 (312) 62‒50‒31
+996 (312) 66‒06‒04 +996 (312) 66‒06‒07 |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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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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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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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D 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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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은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9시부터 18시까지 열며, 비용은 30솜에서 160솜 사이로, 학생증 제시 시 할인이 있습니다. 이번에 갔을 땐, 현금 결제는 안되며, 카드 결제나 QR 결제만 된다고 하더군요. 카드는 마스터카드, 비자카드, 엘카르트, 유니온페이 등으로 결제할 수 있습니다. 결제 후 관람 티켓을 받습니다. 아랫부분이 살짝 찢어져 있는데, 3층의 표 검표 때까지 절대 분리하시면 안 됩니다!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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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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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실물 학생증 제시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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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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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중고생 및 단과대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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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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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학생(실물 학생증 제시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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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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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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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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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 관람(최대 12명)(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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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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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 테마 관람(최대 12명)(1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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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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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 비디오 및 사진 촬영 관람(최대 12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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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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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은 3층부터 시작되어 계단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 계단으로 내려와야 하죠. 엘리베이터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3층으로 가는 계단 옆에 실제 곰 가죽이 있더군요. 신기해서 찍었습니다.

3층에 도착하면 표 검사를 합니다. 직원이 표 아랫부분을 찢어서 다시 돌려주죠. 그러니 처음에 표를 받았을 때, 종이 끝부분이 달랑달랑한다고 해서 절대 그걸 떼지 마세요.


입구에는 소련의 흔적이 풍겨지는 장식이 입구에서 방문객을 맞아줍니다. 그 외에도 다양한 소련 혹은 소련 직전 혁명기의 무기들도 볼 수 있죠.

미하일 바실리예비치 프룬제(1885-1925)는 러시아제국 튀르키스탄 총독부 피슈케크(Пишпек, (현)비슈케크)에서 태어나 블라디미르 레닌이 이끄는 혁명에 뛰어들어,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후보위원, 소련 군사해사 인민위원, 소련혁명군사평의회 주석대리 및 주석 등 정치 군사 분야에서 큰 공을 세운 인물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루마니아인이었는데, 그래서 프룬제의 성씨 프룬자(frunză)는 루마니아어로 '잎(leaf)'라는 뜻입니다.


그와 관련된 기록과 유물뿐 아니라 혁명기의 기록과 유물, 소련 초기의 기록과 유물까지 이곳에서 전시하고 있습니다.

3층의 끝에는 1967년에 만들어진 거대한 미하일 프룬제 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그 오른편에는 당시 그가 썼다고 하는 악기, 쇼파, 탁자, 책꽂이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 박물관에는 이 전시품 외에도 총 약 1만 3천 점을 보유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제 계단을 통해 내려갑니다. 2025년 4월 30일 기준, 2층 '프룬제와 현대 홀'은 닫혀 있었습니다. 이곳은 시즌별로 다양한 주제의 전시가 열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1층으로 바로 내려왔습니다. 이곳에는 그가 실제로 살았던 생가가 있습니다. 이 집은 프룬제 가족의 별채라고 하는데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피슈케크 정착민들의 생활양식을 그대로 재현했습니다.

생가 중앙에는 2층짜리 작은 집 모형도 보이네요.


1885년 4월 2일, 이곳에서 공산당 및 소비에트 국가의 뛰어난 활동가, 레닌의 충실한 학생, 소련군의 사령관, 미하일 바실리예비치 프룬제가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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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입장할 때 최대 10명까지 입장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하며, 이 생가 안으로 음료나 다른 먹을 것을 들고가서는 안됩니다. 또 전시품들을 만져서도 안됩니다. 이 모든 것은 이 역사구조물을 보존하기 위해서입니다.

1885년 4월에 이곳에서 태어난 미하일 푸룬제는 1904년, 표트르 대제 공과대학교(Политехнический институт императора Петра Великого, 1902-1917)에 입학하기 전까지 이곳에서 살았다고 하네요. 그리고 그는 정치군사적 커리어를 쌓게 됩니다.


그 시절에 있던 다양한 주방도구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가운과 악기도 볼 수 있었구요.

식사를 하고 손님을 모시는 식탁도 볼 수 있었습니다.


거울, 쇼파 등도 볼 수 있습니다.

침실입니다. 이제는 너무 오래되어서 프룬제가 어디에서 잤는지조차 모른다고 합니다.


다양한 침대와 침실용품들이 보입니다.

소련의 초기 군사정치적 대업적을 이룬 농부의 아들 미하일 프룬제의 발자취를 볼 수 있는 멋진 시간이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키르기스스탄 수도의 예전 이름으로도 쓰였고, 도시 곳곳의 프룬제길, 그리고 비슈케크의 프룬제 동상 등 다양한 곳에 그 흔적이 남아 기억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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