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표>1876, 강화도조약 1880, 조선 한성부, 일본 공사관 설치 1880~1897.10.11, 재조선 일본 공사관 1882, 임오군란 1884, 갑신정변 1897.10.11~1906.01.31, 재대한제국 일본 공사관 1905, <을사조약> 1906~1910, 한국 통감부 1910~1945, 조선 총독부 |
표를 보기전에 각각의 직급을 알 필요가 있다.
먼저 공사가 무엇인지 알아보자. 공사(公使)란 국가를 대표하여 파견되는 외교 사절의 하나로, 외교부 장관의 감독과 훈령을 받아 조약국에 상주하는 외교 사절이고, 대사에 버금가는 계급이다.
대사 | |
공사 | 특명전권공사 |
전권공사 | |
변리공사 | |
대리공사 |
일본공사관(1880~1906)에서 근무했던 일본인 외교관들의 목록이다. 이들의 직책은 아래와 같이 변천을 겪었다.
재조선국대리공사->재조선국변리공사->재조선국특명전권대사->재대한제국특명전권대사 |
1877년부터 1882년까지 조선에 있었던 하나부사 요시모토는 <제물포 조약>(1882)을 체결했고,
1882년 갑신정변을 도와주었다가 청군의 개입을 들은 일본 정부의 명령으로 슬며시 발을 뺀 일본 공사는 다케조에 신이치로였다.
청일전쟁 중 경복궁 점령을 명령한 오오도리 게이스케.
1875년의 운요호 사건과 1876년 <강화도 조약> 체결 때 일본측 협상 대표였던 이노우에 가오루,
1895년 10월 을미사변을 일으킨 주범이자, 경복궁과 건청궁을 불지른 방화범인 미우라 고로도 공사로 있었다.
1896년에 맺어진 <베베르-고무라 각서>로 러시아군과 일본군이 조선에 주둔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각서를 맺은 사람이 고무라 주타로이다.
또 가토 마스오는 방곡령 철회를 요청했다.
위의 이야기를 보면 굵직굵직한 사건들에 일본 공사들이 끼여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 사실 이들은 일본제국이 대한제국을 지배하기 위한 발판 중 하나였던 것이다.. 한 왕조를 망국으로 빠트린 타국의 외교관들은 그 타국에게는 긍정적인 평가를, 망국에게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슬픈 이야기지만, 이젠 외교관들에 의해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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