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 지리지에 기록된 신라의 강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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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지리지에 기록된 신라의 강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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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선조는 본래 진한(辰韓) 종족이다. 그 나라는 백제(百濟), 고려(高麗) 두 나라의 동남쪽에 있으며, 동쪽으로는 큰 바다에 접해있다.

- 두우(杜佑)의 《통전(通典)》
동쪽과 남쪽 모두 큰 바다로 경계가 된다.

- 유구(劉煦)의 《당서(唐書)》
동남쪽은 일본(日本), 서쪽은 백제(百濟), 북쪽은 고려(高麗), 남쪽 끝은 바다가 있다.

- 송기(宋祁)의 《신서(新書)》
진한(辰韓)은 마한(馬韓)의 동쪽에 있고, 동쪽으로 바다에 이르며 북으로는 예(濊)와 접해있다.

- 가탐(賈耽)의 《사이술(四夷述)》
마한(馬韓)은 즉 고려(高麗), 변한(卞韓)은 즉 백제(百濟), 진한(辰韓)은 즉 신라(新羅)이다.”

- 신라의 최치원(崔致遠)

김부식은 신라의 지리를 연구할 때 위의 5가지 기록을 사실이라고 판단했다. 위의 기록에 근거하여 지도를 그려보면 아래와 같다.

이를 현대 지리도에 다시 적용시켜보면 이렇다.

 

 

지금껏 김부식이 인정한 기록에 의한 신라의 위치를 살펴보았다. 그러나 김부식은 그의 입장에서 의심할만한 기록들도 적어두었다. 

“변한(卞韓)의 후예들이 낙랑(樂浪) 지방에 있었다.

- 《신·구당서(新舊唐書)》
낙랑군(樂浪郡)은 낙양(洛陽)의 동북 방향 5천리 거리에 있다. [주(석) : “유주(幽州)에 속하며, 옛 조선국(朝鮮國)이다.]

- 《한서(漢書)》와 《후한서(後漢書)》

앞서 변한은 백제라고 했으며, 그 후예들은 '낙랑'에 살고 있다고 한다. 낙랑과 낙랑군이 같은 지명을 말하는지 모르겠지만, 그 두 지역이 같은 곳이라고 가정하고 변한의 후예들이 살았던 곳과 낙양과의 거리를 계산해보았다.

현대 중국의 낙양과 지린과의 직선 거리는 대략 1590km이다.

당나라는 1리를 약 323m으로 보았고, 그 뒤를 이은 송나라 또한 1리를 323m로 보았다고 가정하고 계산하였다.

그럼 후한서에서 말하는 낙양과 낙랑군의 거리인 5000리는 대략 1615km가 된다. 낙양과 지린의 직선 거리가 약 1590km인 것을 감안하면, 낙랑군은 중국 지린의 부근에 있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시의 측량기술과 실제 지리적 거리와의 인식 차이 한계로 인해 실제로 낙랑군이 저 지역에 있었다고 보는 것은 힘들 것 같다.

 

중국 동북쪽 끝에 있는 유주(幽州)

또, 흔히 삼국지나 중국 고대 지도를 보면 알 수 있듯, 중국의 유주(幽州)는 보하이 해 부근에 붙어있는 지역이다. 저 지역 내에 낙랑군이 속해있다고 했기에, 낙랑군이 지린 성에 있었다고 보는 것에는 한계가 있을 것 같다.

 

 

낙랑의 위치 말고도 재밌는 기록들도 존재한다. 김부식은 아래의 이야기를 기록하면서 '모두 전해지는 소문이지 진짜 기록은 아니다'라며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는 식으로 넘어갔다. 장인(長人)에 관한 기록을 보며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동쪽으로 장인(長人)과 대치하고 있는데, 장인(長人)이라는 것은 키가 3장(丈)이며, 톱날 이빨과 갈고리 손톱으로 사람을 잡아먹었다. 신라(新羅)는 항상 쇠뇌(弩)를 쏘는 군사 수천 명을 주둔시켜 수비하였다”

- 《신당서》
동해의 외딴 섬에 대인국(大人國)이 있다.

- 전해오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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