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산할배와 당산할매를 모시는 부산 동구 당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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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산할배와 당산할매를 모시는 부산 동구 당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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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동구 초량동 초량이바구길에 속하는 168계단을 다 오르면 이바구공작소와 당산으로 가는 방향의 오르막 샛길이 보입니다. 이곳을 조금 오르면 왼쪽 초일경로당이 보이는데, 여기서 오르막을 따라 더 올라가면 됩니다!

당산(동구 당산제) 제당의 건립 : 1993년 4월에 개축
제의 날짜(연2회) : 음력 3월 16일 아침 7시경
                                 음력 9월 16일 아침 7시경
마을의 수호신인 당산신(당산할아버지와 당산할머니)에게 마을의 풍요와 평안 등을 기원하는 지역공동체적 의례이다.
동구 당산제는 극심한 사회변화 속에서도 보존되어 오는 우리문화유산으로서 일제시대 민족말살정책의 일환으로서 박해도 많이 받았고, 1970년대 새마을운동시에는 낡은 미개한 문화라 하여 배척당하는 속에서도 현재까지 보존되어 내려오고 있다.
현재는  동구청장을 비롯한 초량2동장, 지역의 구의원들과 지역주민들이 함께 참여하는 마을의 행사로 발전하였으며, 이 당산제가 올려지는 날에는 마을의 사람들이 모여서 덕담을 나누는 등의 친목을 다지고 있다.
당산제가 기행되지 않는 날에는 무속인들이 찾아와 제사를 올리거나 자녀의 진학을 기원하는 등 여러가지 축원을 기원하는 마을 주민들이 이용하고 있다.

전통적인 담벽의 모양을 모사한 듯한 벽이 보입니다. 이 초량주산제당과 관련한 <초량주산제당중수기(草梁主山祭堂重修記)>라는 기록이 있는데, 그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瀛海之上有山曰四屛若遠若
近靈秀傑特望之若四圍屛障
然其下居者盖數千百家鱗錯
櫛比成一大都會直山之南有
一間祭堂里之人凡穰災祈福
皆於是輒獲靈驗春秋虔亭歲
以爲常者其來久矣堂之建未知
閱其朒朓而木橐瓦老上兩旁風
幾不能支里中老少有志爰謀
修葺之方一里胥勤無幾何醵
金爲六百餘圓之多於是仍舊
貫而增新制煩然改觀閱三個
月而工告訖且取其嬴餘爲春
秋亭祈之資日金君聖濟踵門
曰請有述盖五岳鍾靈人物毓焉
二氣交感鬼神享之柴望山川
乃國之常祀固不敢擬議於凡
庶故李氏之旅泰山所以取譏也
至若鄕黨州里各有主屹此今
日山祭堂之所由設也傳曰非其
鬼而祭之謟也書曰至誠感神此
山乃里之主山則居此土者不在
非其鬼而祭之之例且使當祭者
極其誠敬以集自家精神則神之
格思信乎洋洋如在也可不勉矣哉
逐書此而歸之時歲辛未建巳之月也
通訓大夫前外部參書官蓮城李光昱記
바다 위에 산이 있으니 사방 막을 것 같기도 하고 멀기도 하며
영롱하고 뛰어나 바라보면 사방을 막는 병풍 같다.
그 (산) 아래에는 수천 백 가구의 집들이 빗처럼
빗처럼 빽빽하게 모여 큰 도읍을 이루고 있으며, 산의 남쪽에
한 간의 제당이 있으며, 마을 사람들은 모두 재앙을 막고 복을 기원하며
모두 이에 따라 즉시 신령한 감응을 얻었으며, 춘추에 몸숙여 정성을 다해 봉사한다.
이를 오랫동안 해왔으니, 당(堂)이 언제 지어졌는지는 알 수 없다.
그 뒤틀리는 낡은 모습을 보니 나무 궤짝과 낡은 기와 위에 양옆으로 바람이 분다.
마을 안 늙은이와 절음이들이 뜻을 모아 의논했으나 거의 감당할 수 없었다.
수리하는 방법으로 한 마을이 함께 힘쓰니 곧 갹출할 수 있었다.
돈이 600여원이나 되었다. 여전히 그러했다.
예전처럼 그리고 새로운 제도를 더했지만, 번거롭게 석 달 동안 바뀌었다.
그리고 공사가 끝났다고 일렀고, 남은 것으로 봄
가을용 정자 지을 돈으로 삼았다. 일금군(日金君)이 성스럽게 다스리자 문으로 와
아뢰길, 써서 말하온데, 오악(五岳)의 령(靈)이 모여 인물이 난 곳이라 
이기(二氣)가 교감하여 귀신(
鬼神)을 모시며, 산천으로 나무를 쌓아 보는 곳이라
이는 나라의 상사(常祀)로 무릇 평범한 일에 비교하여 논할 수 없다.
대개 이씨(李氏)의 태산(泰山) 여행은 그런 까닭에 비웃음을 사게 된 것이다.
이르러 향당주리(鄕黨州里)에 각각 주인이 있어 굳게 서서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일산제당(日山祭堂)의 설립 까닭은 전하는 바에 따르면, 그렇지 않다.
귀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은 겁내는 것(이 아니다)
(이) 산은 곧 마을의 주산(主山)인데,  곧 이 땅에 살지 않는 자가
그렇지 않은 귀신에게 제를 지내는 것은 예에 맞지 않, 제사를 지내야 할 자로 하여금
그 극진히 정성을 다한 공경함에 따라 자신의 정신을 모으면 신과 같이 되어,
사리와 믿음이 확실해 마치 물결이 출렁이는 듯한 큰 기쁨이니 어찌 애쓸 필요가 없겠는가?
그렇게 글을 쓰고 돌아단 때는 신미 사월(巳月, 음력 4월)이더라.
통훈대부 전(前) 외부참서관 연성(蓮城) 이광욱(李光昱) 씀

입구로 들어와 바로 왼편 계단 위로 보이는 곳이 할매제당입니다. 

정동쪽을 바라보는 할매제당에는 할매도(당산할매도)가 모셔져 있습니다.

그 옆에는 경신맹하(庚申孟夏, 경신년 초여름)에 쓰인 '신령각(神靈閣)'이라는 편액이 걸린 제당이 있습니다.

할배제당은 돌담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그곳에서 고개를 왼편으로 젖히면 할매제당이 보입니다.

할매제당과 마찬가지로 정동쪽을 바라보고 있는 할배제당(혹은 신령각)에는 정중앙에 산신도가 모셔져 있으며, 오른편에는 5명의 신장을 그린 신장도(神將圖)가 모셔져 있습니다. 마을이 번창하길 비는 민속의 한 흔적을 지금 이곳 168계단과 중앙공원 사이의 당산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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