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세기 신라 경덕왕 때 지어진 월정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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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세기 신라 경덕왕 때 지어진 월정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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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덕왕(景德王)) 19년(서기 760년)
봄 정월,  도성(都城) 인방(寅方, 북동쪽)에서 북을 치는 것 같은 소리가 있었다. 사람들은 이를 귀고(鬼鼓, 귀신북)이라고 일컬었다.
2월, 궁(宮) 안에 대지(大池, 큰 연못)을 뚫고,  궁궐 남쪽 문천(蚊川)의 위에 월정(月淨)·춘양(春陽) 두 다리(二橋)를  일으켰다.
여름 4월, 시중(侍中) 염상(廉相)이 (관직에서) 물러났다. 이찬(伊飡) 김옹(金邕)을 시중으로 삼았다.
가을 7월, 왕자( 王子) 건운(乾運, 혜공왕)을 왕태자(王太子)로 봉했다.

- <삼국사기><신라본기>

경북 경주 교동 남천을 지나는 다리 중 복원된 다리 월정교를 찾았습니다~ 

월정교(月精橋, Woljeonggyo(Bridge))
월정교(月精橋)는 <삼국사기>에 통일신라 경덕왕 19년(서기 760년) "궁궐 남쪽 문천(蚊川) 위에 월정교(月淨), 춘양교(春陽) 두 다리를 놓았다."라는 기록이 있다. 현장에 배모양의 교각만 전해지고 있었으나 오랜 고증을 통해 누교(樓橋, 누각 등이 있는 다리)를 복원하였다.


발굴조사 결과, 월정교는 길이가 60.57m이며 교각 사이에서 불에 탄 목재와 기와가 출토되어 교각 위쪽이 누각(樓閣)과 지붕으로 연결된 누교였을 것으로 확인되었다. 동쪽 약 700m 상류에 센 물살에 견딜 수 있도록 배모양의 교각 뿐만 아니라, 다리의 규모와 축조방법, 석재의 색깔, 재질까지도 유사한 춘양교아 위치하고 있다.

원효대사(元曉大師)와 요석공주(瑤石公主)의 사랑 이야기가 얽힌 유교(楡橋)의 흔적도 월정교 19m 하류에 보존되어 있다. 월정교는 신라의 문화적 수준과 교량의 축조기술, 의장, 교통로 등 신라왕경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통일신라의 문화적 품격을 직접 느낄 수 있는, '남천 위에 세워진 누각 다리[蚊川樓橋, 문천누교]' 월정교는 주야로 단청누교의 아름다움을 과시하고 있다. 월정교는 '형산강 팔경(2016)'으로 선정되었고, 월정교와 춘양교지는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제457호)으로 지정 보전되고 있다.

월정교의 입구에는 사자가 서있는 입구 기둥 2개가 있고, 그 뒤 계단이나 경사길을 올라 월정교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다리의 2층 누각에는 '월정교(月精橋)'라 쓰인 현판도 보입니다. 이곳은 자전거, 애완동물 출입금지 구역이면서 흡연 금지 구역, 음식물 반입 금지 구역입니다!

월정교 관람시간 안내
월정교 개방시간 09:00~22:00 (13시간)
2층 문루 홍보관 관람시간 10:00~20:00 (10시간)

* 우천 시 관람 중단

가파른 계단을 따라 월정교 문루로 올라가면 옛날 경주 지도, 월절교지 인근에서 발굴된 월정교 관련 흔적, 월정교와 월정교 문루에 대한 건출에 대한 간단한 볼거리들이 있습니다. 참고로 이곳에 올라가도 창문이 열려있지 않기 때문에 2층 뷰는 볼 수 없습니다! 

신라왕경도
신라왕경도는 삼국사기, 삼국유사의 기록과 1994년까지 발굴조사된 유구를 중심으로 고증하여 제작했다.

신라에서 중국식의 도시계획이 이뤄진 것은 5세기 말부터 6세기 초반에 걸친 시점으로 추정되고 있다.

7세기 중반 선덕여왕 때 첨성대와 황룡사 9층 목탑이 만들어지고 월성에 한정되어 있었던 궁궐의 범위를 벗어나 사방으로 확장하는 등 완비된 도시로서의 기틀이 마련됐다.

7세기 중후반 무렵에는 월지를 포함한 동궁이 확장되어 넓은 지역에 궁성이 확장되었다. 8세기~9세기 대에는 별궁의 조영과 더불어 연못을 파고 섬을 만들며 수목을 심어 조경한 정원을 갖춘 귀족들의 원지와 함께 35곳의 금입택이 자리 잡고 있어서 화려하고 장엄한 왕경을 형성했다.

60m 정도이지만 웅장한 모습과 구조 덕에 엄청 길게 늘어져 보이니 더 멋지고 아름다워보이네요~ 이곳 월정교는 야경도 아름답구요, 뷰도 아름다우니 인생샷 하나 건져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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