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금정진 별장의 선덕, 김시도 영세불망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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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원과 표로 보는 역사 시리즈/어원과 표로 보는 한국사, 한국문화

마지막 금정진 별장의 선덕, 김시도 영세불망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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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금정구 금성동 1통 마을회관 앞에 큰 돌에 새겨진 비석 하나가 있습니다.

1707년 동래부사 한배하(韓配夏)가 금정산성의 중성(中城)을 축성하면서 금정산성과 산성 일대를 관리하기 위해 좌기청 6간, 좌우행랑 각 5간, 군기고 4간, 화약고 1간, 내동헌 3간, 별전청 4간 규모의 금정진 관아를 만들었고, 그렇게 금정산성 방비를 위해 세워진 금정진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20세기가 되어 일본이 한반도를 야금야금 먹어가던 당시, 이 금정진 또한 폐쇄됩니다. 그 당시 마지막 금정진 별장이었던 김시도는 이 인근의 토지 관련 세금을 면해주어 백성들이 잠시나마 덜 힘든 삶을 살 수 있게 도왔는데, 그 공을 기려 1907년 2월 죽전마을에 이 비석을 세웁니다.

김시도공 영세불망비
금정진의 마지막 별장 김시도가 산성마을 일대의 토지와 관련한 세금을 면해 준 공덕을 기리기 위하여 부락민들이 1907년 2월 비석골(죽전마을)에 비를 세웠다.

垈蒙云頉 結損辛苦 頌溢萬口 恩流三部
대몽운탈 결손신고 송일만구 은유삼부)

가옥이 들어서 있는 대지의 부세를 장부에서 빼어내어 면해 주었고/
전답의 결세에 따른 고통스런 부담을 덜어 주었네/
칭송하는 소리가 많은 사람들의 입에 넘치고/
은혜와 혜택이 세 부락인 공해,중리,죽전마을에 흐르고 있네

2005. 3.


금정구청장

아직까지 정식으로 문화재가 등록되지 않은 단순한 부산의 기념물이지만, 당시 산성마을의 마지막 대표 공무원이 마을을 어떻게 운영했을지를 짐작케 해주는 중요한 기념물이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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