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운대에 세워진 임진왜란 부산포해전의 영웅을 기리는 정운공 순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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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운대에 세워진 임진왜란 부산포해전의 영웅을 기리는 정운공 순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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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위치와 지도상의 위치는 꽤 다르니 참고 바랍니다.

경고문 안내문
1. 이 지역은 군사작전 지역이므로 무단출입(채집행위 등)을 금하고 있습니다.
2. 이 지역 안에 출입하고자 할 때에는 부대장의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3. 군사작전 지역 통제를 위한 경고간판, 철조망 등 훼손을 금지하며 이를 위반할 경우 법에 의해 처벌됩니다.
정운공 순의비 관람은 자유롭게 출입하여 관람하시면 되겠습니다.
* 정운공 순의비는 현지점부터 약 450m에 위치해있습니다.
* 단 군사작전 및 군 관련업무 시 출입문이 폐쇄될 수 있습니다.

부산 사하구 다대동의 몰운대 내 다대진동헌을 조금 지나 나오는 관리사무소와 큰 삼거리 쪽에서 동남쪽 방향으로 조금 더 가면 '군사작전 지역' 안내판이 붙어 있습니다. 군사작전 지역이라 입구 사진을 찍지는 않았지만, 앞에 큰 출입문이 있고, 위와 같은 경고문과 안내문이 있습니다. 해당 지역의 장이 허락했기에 군사작전 혹은 군 관련업무로 출입문이 폐쇄되지 않는다면, '정운공 순의비'는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 첫번째 관문에서 약 450m를 더 가면 정운공 순의비가 나옵니다. 솔직히 조금 긴장되었어요.

안내문
정운공 순의비 관람은 자유롭게 출입하여 관람하시면 되겠습니다.
* 정운공 순의비는 현지점부터 약 350m에 위치해있습니다.
* 단 군사작전 및 군 관련업무 시 출입문이 폐쇄될 수 있습니다.

약 2분 정도 약경사가 있는 길을 따라 100m를 가면 제2출입문이 나옵니다. 이곳에서 정운공 순의비까지 약 350m라고 합니다.

그렇게 4분 정도 가파른 경사를 따라 올라가면 드디어 '정운공 순의비' 뒷면을 볼 수 있습니다!

정운공 순의비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20호)
정운공 순의비는 임진왜란 때 부산포 해전에서 전사한 정운(鄭運, 1543~1592) 장군의 공덕을 추모하기 위해, 조선 정조 22년(1798) 정운의 8대손인 정혁이 다대포 첨사로 왔을 때 세운 것이다. 정운 장군의 본관은 하동이며, 영암에서 태어나 1570년 무과에 급제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경상도로 출전할 것을 주장하여 옥포·당포·한산도 해전에서 큰 공을 세웠다.

부산포 해전에서는 우부장(右副將)으로 출전하여 맨 앞에서 싸웠는데, 이순신 장군의 지휘 아래 일본 군함 500척과 싸워 100여 척을 격파하는 등 큰 승리를 거두었다.

비문에는 정운 장군이 수군 선봉으로 몰운대 아래에서 일본군을 만났을 때 몰운(沒雲)의 ‘운’ 자가 자기 이름의 ‘운(運)’과 음이 같다 하여 이곳에서 죽을 것을 각오하고 싸우다가 순절하였다고 적혀 있다. <충장공실기>와 <충무공전서>에는 정운이 부산포 해전에서 순절하였다고만 기록되어 있다.

비석의 앞면에는 ‘충신 정공운 순의비(忠臣 鄭公運 殉義碑)’라는 8자가 적혀 있고, 뒷면에는 정운공의 순절 사적이 기록되어 있다. 비문의 내용은 이조판서 민종현이 짓고, 훈련대장 서유대가 글자를 썼다고 한다.

1972년 6월 26일 부산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으며, 1974년 부산시에서 비각(碑閣, 후세에 역사적 업적을 전하기 위해 세운 비석을 보호하거나 기념하기 위해 세운 건물)을 세워 비석을 보호하고 있다.

정운공 순의비입니다.

비문의 앞에는 '충신정운공순의비(忠臣鄭公運殉義碑)'라고 쓰여 있습니다. 앞선 설명에서 읽으셨다시피 이 비석은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의 옆에서 부산포해전에 참전해서 조선군에 큰 전승을 가져다줬으나, 끝내 선봉에서 죽게 된 '정운'을 기리기 위해 후손 다대첨사 정혁(鄭爀)이 1798년 몰운대에 세운 비석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비의 뒷편(음기)에는 녹도만호 정운이 몰운대 아래에서 왜적을 만났을 때 몰운의 ‘운(雲)’자가 이름인 ‘운(運)’과 음이 같음을 알고, 이곳에서 전투 중에 죽을 것이라 생각하고 "내가 죽더라도 적이 알지 못하도록 하라."고 지시하고 분전하다 순절하였다고 기록'하였다고 합니다.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그가 폭탄을 온몸으로 막고 사망했다고 묘사했다 (출처 : 불멸의 이순신)

임진왜란이 시작되고 약 5개월이 지나갈 무렵인 1592년 10월 5일(음력 1592년 9월 1일), 경상도 부산포(현 동구 부산항)에서 정운은 우부장(右部將)으로 선봉에서 싸우다가 일본군의 대조총(大鳥銃)에 맞아 사망하게 되었습니다. 이순신이 정말 아끼고 믿었던 군관 중 한 명이었다고 전하는 그의 희생으로 곧 전라좌수군은 더 결속했으며, 그렇게 부산포 해전은 승리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제1회 부산시민의 날 알림 현수막 (출처 : 부산박물관)

그렇게 부산포의 일본군을 크게 물리쳐 일본군의 해상작전을 완전히 막고, 보급난을 심화시킨 이 부산포 해전으로 일본군은 큰 충격을 받아 한반도 북쪽으로 한 발 앞으로도 나가길 두려워 했으며, 이 날의 승전과 조선군의 대반격에 대한 이야기는 1980년부터 '부산시민의 날'로 기념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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