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글을 봤다. '여자도 군대를 가야한다'라는 말을 해서 주변 여학우들에게 왕따를 당했다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말이다. 그 이야기를 전해주던 지인이 내게 말했다. '이 마케이누처럼 살아서 되겠냐?' 글을 쓰기 앞서 나는 '마케이누'라는 용어가 우리나라에서 쓰이고 있는 현 상황에 대해 적어보려고 한다. 이 글에는 그 어떤 대상에 대한 비난도, 비판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혹여 글의 의미를 왜곡되게 바라보지 않길 바란다. |
1. 負에 대해서
마케이누(負け犬)에 대해 알기 전 負라는 한자를 알아보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한자가 고사성어에서 주로 쓰이는데 그 외 일상적으로 쓸 때는 부담(負擔), 부상(負傷), 부채(負債), 승부(勝負) 등의 단어에서 쓰인다.
부(負)가 들어가는 단어들 보부상(褓負商), 부담(負擔), 부상(負傷), 부역(負役), 부채(負債), 부하(負荷), 승부(勝負), 자부(自負), 자부심(自負心), 청부(請負), 포부(抱負) ... |
負[부]는 '짐을 지다'라는 뜻으로 쓰이는 경우가 태반이며, 승부(勝負) 정도만 '지다(패하다)'라는 뜻으로 쓰인다. 그러나 사실 단어 뜻만 봐도 알겠지만 '짐을 지다'라는 뜻이 원뜻이고, '지다(패배하다)'는 거기서 확장된 의미라고 볼 수 있어 근본적으로는 같은 뜻이다.
일본어에서 이 한자는 어떻게 쓰일까?
음독 | 훈독 |
フ[후], ブ[부] | 負ける[まける/마케루] : 지다(패배하다) 負かす[まかす/마카스] : 지게하다(패배시키다) 負う[おう/오우] : 지다(짊어지다, (떠)맡다) |
살펴보면 우리와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 이제 원래 보려고 했던 단어를 살펴보자.
負け犬[마케이누]. 이 단어는 負け[마케]와 '개'를 뜻하는 犬[이누]가 합쳐진 것이다. 여기서 負け[마케]는 負ける[마케루]에서 왔다는 걸 단번에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러니까 負け犬[마케이누]는 '진 개(패배한 개)'라는 뜻이다.
2. 싸움에서 진 개, 負け犬[마케이누]
2-1. 비유로서의 마케이누
일본어 사전에서 이 負け犬[마케이누]를 다툼(喧嘩)에서 지고 꼬리(꽁무니)를 말고 도망가는 개라고 하면서 패배자를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고 정의한다. 이 단어는 패배자를 비유하는 말로서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다.
우선 일상적으로는 한국어의 '루저, 패배자'와 같은 어투로, 직접적으로 상대가 패배자임을 드러내는 말로서 사용한다.
그 외에 미국 메사추세츠주 보스턴에 설립된 미국의 대표적인 글로벌 경영 컨설팅 기업인 보스턴 컨설팅 그룹(Boston Consulting Group, BCG, 1963~)에서 기업 전략평가를 위해 만든 BCG 매트릭스(BCG matrix)에서, 성장성과 시장점유율이 모두 낮아 철수해야만 하는 사업을 개(Dogs)라고 표현했는데 이를 일본에선 사업이 기울어 시장판에서 진 개같다라는 뜻으로 負け犬[마케이누]이라고 표현했다. 이처럼 기업 분야에서도 패배자를 뜻하는 어투로 쓰이는 이 마케이누(負け犬)는 일본 사회에서 소설 한 편으로 크게 유명해지게 된다.
2-2. 개의 특성과 마케이누
본디 개(犬)는 사람처럼 무리를 지어 집단으로 생활하는 사회적 동물이다. 이 때문에 인간처럼 주종관계가 뚜렷하고, 개 자신이 강하다고 인정한 상대가 있다면 절대 거역하지 않으며, 배를 발랑 까거나, 작은 소리로 애교를 부리기도 한다. 또 싸우기 전부터 송곳니를 드러내지 않고 패배를 인정하는 경우도 있다. 이 때 일본에서 패배한 개의 먼울음(負け犬の遠吠え)이라는 관용구를 사용하는데, 이는 '약한 개는 혼자 멀리 떨어져 안전한 장소에 있을 때, 먼 하늘을 향해 크게 짖는다'라는 뜻으로 싸움에서 진 약한 개의 한탄을 표현한 문장이다.
2003년, 일본의 수필작가(에세이 작가) 사카이 진코(酒井順子, 1966~)는 에세이집 <마케이누의 절규(負け犬の遠吠え)>를 발표했다. 그녀는 이 책에서 30대 이상의 아이가 없는 미혼 여성을 '마케이누(負け犬)'라고 표현했는데, 기존의 '진 개(負け犬)'라는 표현을 쓰며 역설적으로 그들을 응원하는 이야기를 썼다.
어떠한 일을 잘하든, 미인이든, 30세 이상에 결혼하지 않은 여성(골드미스)은 '그렇다 해도 사랑받지 못했잖아'라는 말을 듣는 진 개(負け犬)
どんなに仕事が出来ようと、美人だろうと、30歳以上で結婚していない女性は『だって愛されていないじゃん』と言われる負け犬
- 마케이누의 절규(負け犬の遠吠え)
한국인 입장에서 봐도 충분히 논란거리가 될 수 있을 말로 보인다. 아마 글 내용을 어떤 내용이 들어갔다고 판단하고 해석했다면 '그러니까 30대인데 결혼안했으면 사랑도 못 받는 패배자라는 소리야?'라고 까지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작가는 분명히 말했다. '그들을 응원하고 있다'고 말이다. 이 응원은 어줍잖은 위로가 아니고 그 당시 '30세 이상의 비혼 여성을 패배자로 봤던 일본의 사회 분위기 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방향과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을 진심으로 응원한다'라는 뜻이었다.
오래전부터 일본에서는 결혼과 육아가 여자 자신을 해복하게 해주는 것이라는 가치관이 뿌리 깊었지만, 1980년대 이후 일과 가정보다는 자기 만족과 보람을 찾아 직업을 갖는 여성이 점점 증가하고 있었다. 그 때 자신의 꿈을 쫓던 여성들은 어느새 결혼적령기의 마지노선이라고 여겨지던 30대가 되어 버렸고, 이미 직장에서 자신에게 걸맞는 지위를 얻으면서도 결혼을 할 수 없다는 딜레마에 많이들 빠졌다고 한다.
그러는 한편, 사회적으로는 남자 전업주부가 증가하고, 사회적 역할에 있어서의 성별의 기준이 점차 희미해지고 있고, 또 결혼을 굳이 하지 않아도 사회적 지위를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 증가하면서 이런 여성들이 자신들을 반자조적으로 마케이누(負け犬)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물론 이런 용어를 싫어했던 사람도 있었고, 승패라는 말이 논란이 된 적도 있었지만 말이다.) 여기서 핵심은 자신들을 가리켜 반자조적으로 부른다는 것! 흑인들이 흑인 친구를 장난식으로 니거(Nigger)라고 부른다던가, 오타쿠가 같은 코믹월드에 같이 간 친구에게 장난으로 씹덕이라고 말하는 듯한 어투라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정말 오해가 없길 바란다.
골드미스들이 결혼하지 않을거냐는 현실의 압박을 이겨내며 자조적으로 웃으며 말하던 마케이누(負け犬)라는 말은 한국으로 넘어오면서 뭔가 페미니즘이나 금융 버블 붕괴로 인해 상황이 힘들어져 30대가 넘어서도 결혼하지 못한 여성을 비하할 목적으로 가끔 사용되는 것이 현실이다...
페미니즘이든 인종주의든 어떤 경우에서라도 용어가 특정 을 향한 비하의 목적으로 사용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이번엔 원래 인본주의적으로 쓰인 일본의 용어가 한국에 들어와 페미니즘이라는 운동, 사상을 비난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는 현실을 직접 마주쳤고, 이런 오해를 더 일으키지 않게 하기 위해 마케이누(負け犬)라는 용어의 정의를 바로 잡고자 이 글을 쓰게 된 것이다.
조금 민감할 수도 있고, 자칫 이상한 내용이라고 여겨지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글의 내용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읽히지 않을 것을 염려해 이 '마케이누'라는 용어를 바로 잡고자 쓴 이 글을 쓸 지 말 지를 3주간이나 고민했다. 그럼에도 이 글을 쓴 이유는 앞서 밝힌데로 '용어의 정의를 바로 잡아 그 용어가 특정 집단을 미혹시키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다.
분명 이 글을 읽고 '아 그 사람이 썼던 말은 사실 모르고 쓴 말이었구나'라거나 '아 이 용어는 원래 이런 용어였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게 하는 큰 그릇을 가지게 된다면, 타인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자신이 몸담고 있는 곳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할 수 있게 되길 바라며 글을 마치겠다.
'언어 > 일본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어가 출세어가 아니라구요? 출세어는 또 뭔데요? (0) | 2022.10.04 |
---|---|
일본어의 장음기호, 장음부(ー)에 대해 알아보자 (0) | 2022.10.01 |
일본의 작은 행정단위 쵸메(丁目), 반(番), 고(号)와 주거표시제도 (0) | 2022.08.07 |
쿨링시트 휴족시간으로 배우는 일본어 (0) | 2022.07.27 |
산마씨에게 감사를, 오오츠군이 바친 감동적인 노래 (0) | 2022.07.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