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1일 아침 6시 30분. 나는 모든 병역의 의무를 다 마치고 미복귀 휴가를 명받고 부대 정문을 통과했다. 곧 아버지와 동생이 차를 끌고 오셨고 들고 있던 짐을 싣고 나는 뒷자석에 타고 부대를 완전히 벗어났다. 수고했다며 군인 덕분에 잠을 푹잤다는 말을 전한 아버지와 재밌었냐고 장난치며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든 동생과 함께 말이다. 그렇게 나는 지급으로 돌아왔다. 돌아와서 은행, 대학 복학 등의 잡무와 짐정리를 하다보니 이제야 일기를 쓰고 제대로 쉴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그동안 귀찮아서 밍기적밍기적거리기도 했다....
요즘은 간간히 온천천에 산책가서 이런 저런 생각을 정리하기도 하고, 군대 생활을 되돌아보기도 한다. 생각해보면 난 최악의 선후임이자 최고의 선후임이 아니었나 싶다. 최악인 이유는 사회성이 부족하고 개인적인 성향이 강해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고, 그에 반해 최고인 이유는 남들에게 피해주지 않으려고 내가 할 수 있는 공부, 연습을 자체적으로 했기 때문이다.
군대에서 나는 많은 것들을 배웠고 그것들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신체, 건강]
1. 줄넘기 2단 10개 연속 성공
2. 런닝머신 쉬지 않고 60분 달리기 성공
3. 달리기 쉬지 않고 4km 완주 성공
4. 살 입대전보다 5kg 빠짐
5. 과자를 안 먹게 됨
6. 라면을 잘 안 먹게 됨
7. 배고프지 않아도 먹는 습관이 거의 없어짐
8. 소화시키려고 자주 걸음
9. 오래 앉아있으면 종종 일어나거나 허리 펴서 스트레칭함
10. 걷기가 취미가 됨
[느끼고 깨달은 것들]
1. '고런갑다'라는 생각으로 인생을 바라보자
2. 내가 무엇을 싫어하고 무엇을 좋아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하자
3.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4. 사람들은 생각보다 남들에게 관심이 없다
5. 자신이 남들보다 우월하다고 여기고 받기만 하지 마라.
6. 인내하고 인내하다가 안되면 차근차근 말하라
7. 애기같은 어른들이 생각보다 많다.
8. 사람들을 너무 무서워하지 않아도 된다.
9. '예의를 차려야지'라고 하면서 사람들에게 도망가는 것은 정말 바보같은 짓이었다. 예의는 예의 차리는 곳에서만 하면 된다.
10. 무엇이든 자신이 책임질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일을 해결하고, 그렇지 않으면 더 배워야 한다.
11. 아무리 ㅈ같은 사람이라도 배울 점이 있다.
12.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은 부분에서 귀찮아한다.
[나의 능력 업그레이드]
1. 일본어 신문을 읽을 수 있게 됨
2. 간단한 일본어 회화를 할 수 있게 됨
3. 한자 이해력이 높아짐
4. 글쓰기 실력이 늘게 됨
5. 자기 객관화를 잘 할 수 있게 됨
6. 러시아어 [р]발음을 약간 할 줄 알게 됨
7. 경제 개념, 돈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짐
8. 뉴스 이해도가 높아짐
9. 법률 읽는 능력이 높아짐
10. 과학 지식이 넓어짐
11. 몸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짐
12. 사회생활 능력이 올라감
13. 타로 리딩 스킬이 올라감
14. 전동드릴 사용법을 익힘
15. 음식물 쓰레기 처리 방법을 다시 배움
16. 패션에 관심이 생김
17. 기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짐
18. 주식, 펀드, ETF를 시작함
군대를 오기전에는 항상 사람들로부터 도망만 다녔었다. '왜 저 사람이 나를 좋아하지?', '왜 저 사람은 나에게 다가오는거지?', '난 저 사람이랑 친해지고 싶은데 다가가면 뭐라하겠지?' 지금보면 정말 쓸데 없는 생각들을 하며 사람들로부터 도망치기 바빴다. 군대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잃어버렸던 나의 사회성이 조금씩 나타났다. 진심으로 예의를 갖추고 상대를 대하고, 할 말은 하는 습관이 생기고, 배려하는 마음도 나타났다. 이제 다시 복학하면 사람들을 진심으로 동등한 위치에서 대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조금 불편한 마음이 드는데ㅜ 다들 처음엔 이런 생각이 든다고 하니 조금 안심은 된다ㅠ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나 자신은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나지 못하다는 것을 일찍 깨닫고 사람들을 만날 때면 그 사람에게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를 먼저 생각하며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그렇게 나는 내가 모르는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그 이야기들은 나를 즐겁게 했다. 원래 사람들이랑 어울리고 노는 걸 좋아하진 않지만 그 순간 만큼은 정말 재밌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사람들을 만나는 것 같기도 하다.
군대 오기 전엔 무리에 끼려고 수많은 노력을 했지만 결국 잘 되지 못했다. 그러면 더더욱 나는 나를 갈고닦고 더 많이 공부하고 노력했다. 이러던 삶은 사실 남을 위한 삶이었다. 군대에서 얻은 또 다른 하나는 '나를 위한 삶을 살자'라는 교훈을 얻은 것이다. 1년 8개월간, 해를 군대에서 2번 넘기는 동안, 나는 조금 더 성장했다. 혼자 있는 것이 더욱 괜찮아졌다. 처음 들어가면 업무 특성 상 조금 무리에서 떨어진 곳에 배정된다. 이건 어쩔 수 없었던 거다. 장비 배치가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밖에서 한 공부들이 무리에 끼기 위한 공부였다면 군대에 와서 하게 된 공부들은 순전히 나를 위한 공부였다. 그래서 난 무리에 들어가려고 애쓰지 않게 되었고, 어느새 사람들은 나를 인정해주고 있었다. 정치를 하지 않고, 무리 속에서 나의 위치에 고민하지 않고, 나 자체로 당당하게 혼자 살아남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 남들 신경을 덜 쓰고, 나 스스로 멋진 사람이 되기 위해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판단하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다. 내가 진짜 원했던 '어른'이 되어가는 것을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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