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구 중구 동산동의 청라언덕에 1989년에 기공하고 1994년에 준공해 지금까지 쓰이는 대구제일교회의 신본당입니다. 조선시대인 1896년부터 (구)본당((현) 대구제일교회 대구기독교역사관)을 세워 대구 기독교의 역사를 써 내려가다가 1994년에 이곳으로 이전했습니다. 구본당은 현재 대구제일교회 대구기독교역사관으로 민간에 알려져 있습니다.
| 대구제일교회(1893.04.22.-) |
| 본 교회는 대구경북지역 최초의 개신교 교회로서, 조선말 부산선교부에 주재하던 미국북장로교 선교사 윌리엄 M. 베어드(배위량, William M. Baird, 1862-1931) 목사가 경상도 북부지역 순회전도여행 중 1893년(고종 30년) 4월 22일 대구읍성에 첫 발을 디딤으로써 시작되었다. 1896년 1월 남성로(약전골목) (구)대구제일교회((현)선교관) 터에 있던 건물을 구입한 후 수리하여서 교회와 선교기지를 마련하였으며, 1897년 봄 초대목사인 제임스 E. 아담스(안의와, James E. Adams) 선교사가 부임하여 이 지역의 초기 선교활동에 크나 큰 공헌을 하였다. 본 교회는 남성로의 교회 구내에 이 지역의 최초 신교육기관인 희도학교(1900-?, (현)대구종로초등학교), 계성학교(1906-1945, (현)계성중학교+계성고등학교)를 개교하였고, 신명학교(1902-1944, (현)신명여자중학교+대구남산고등학교+성명여자중하교+신명고등학교) 설립을 주도하였으며, 의료선교사업으로 1898년에 지역 최초의 서양의술의원인 제중원((현)동산의료원)을 교회 구내에 개설하였다. 본 교회에서 지금까지 분립한 교회는 1908년 사월교회를 시작으로, 범어교회, 서문교회, 남산교회, 중앙교회 등 22개 교회이다. 대구경북의 기독교 성지인 이 터에는 1913년에 개교한 대구성경학교(1969년 영남신학교와 합병)가 있었으나, 본 교회가 영남신학교로부터 구입한 후 1989년 10월 교회 건물을 착공, 1994년 4월 준공하여 새 성전 시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또한 종탑(높이 57m)을 2002년 2월에 완공함으로써 네 번째 성전 건축이 마무리 되었다. 본 교회는 지하 2층, 지상 5층(종탑 8층)의 철근콘크리트구조 건물로 연면적 7130㎡(560평)에 좌석수 3100석이며, 스테인드글라스 창 18면과 화강석(용담석) 외벽으로 마감되어 있어서 외관이 웅장하고 아름다운 고딕양식 건축물이다. |



한 때 이 자리에는 동산성경학교와 영남신학대학교가 있었다고 합니다.
| 만민의 빛으로 세우리라 대구(동산)고등성경학교 영남신학대학교 옛터 기념비 |
대구경북의 기독교 성지인 이 터에 1893년 창립된 대구제일교회가 우뚝 서기까지 1913년부터 동산성경학교가, 1969년부터 영남신학대학교가 역사의 공간을 승계한 성지 동산! 대구(동산)고등성경학교는 개교 이래 대구만세운동(3.1운동)에 앞장섰을 뿐만 아니라 70여년간 이 선지동산에서 수학한 지도자들이 이문주, 이상근 목사등 각계에 5000여 명에 이른다. 또한, 1954년 개교한 영남신학대학교는 1989년 경북 경산으로 캠퍼스를 이전하기까지 30여년간 이곳 동산캠퍼스에서 소명의 불꽃을 태웠다. 대구경북 선교 122주년! 대구(동산)고등성경학교 개교 102주년! 영남신학대학교 개교 61주년을 맞아 약속의 땅 성지 동산. 이곳 성지동산에 돌비를 세우다. |
| 2015년 5월 15일 | |
| 대구(동산)고등성경학교·영남신학대학교 교지기념비 건립위원회 |


이 웅장한 고딕양식의 건물이 바로 대구제일교회의 신본당입니다.


| 그가 상함은... |
| 헌납자 이현석 성도 |
| 본 작품은 <이사야> 53장 5절을 주제로 못박힌 손 가시면류관, 세마포, 고난받는 얼굴 등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생동감있게 표현하여 제작한 것으로 1994년도 대한민국 기독교 미술대전에서 <그가 상함은...>이란 제목으로 대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이현석 성도는 본 작품을 어머니 류명자 권사의 권유와 본인의 뜻에 따라 출석 교회인 대구제일교회에 헌납하였다. |
| 1994년 11월 |


현석(玄石) 현제명(玄濟明, 1903-1960)은 대구 출신으로 종로초등학교를 졸업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음악가로 소년시절 대구제일교회에서 성가활동을 하면서 음악적 재능을 키웠을 뿐만 아니라 평생을 연주자로, 작곡가로, 음악교육가로 활동하면서 대구를 빛냈으며, 오페라 <춘향전>, <왕자호동>과 <고향생각>, <희망의 나라로>, <그 짚암>, <산들바람> 등 가곡을 남겼습니다. 그가 한창 감수성이 예민하던 청소년기인 계성학교를 다닐 때 등하교 길목 언덕에 있던 수령이 200여년 정도 된 이 이팝나무 아래에서 다듬은 악상들이 나중에 훌륭한 작품으로 태어난 것이 아닌가 하여 그가 자주 앉아 생각에 잠겼을 이 나무를 지금은 '현제명(玄濟明) 나무'라고 부르고 보호수로 지정했습니다.

2007년 1월에 완공된 7층 규모의 대구제일교회 100주년기념관이 동쪽으로 보이네요. 이 바로 뒤쪽에 본당 정문이 있습니다.


그 옆에 주후 1907년경(서기 1907년) 이 청라언덕에서 내려다본 달구벌의 모습을 담은 사진과 그 풍경을 볼 수 있는 작은 전망대가 보입니다. 정말 바로 앞에 계산성당이 보이더라고요. 그 외에도 한 때 이곳 언덕에선 남성정 예배당((구) 대구제일교회), 일본헌병대 및 수비대, 오봉산 주변(일인거주지 및 사격장), 금호강, 측후소 등의 건물이 보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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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하고 웅장한 교회의 모습을 보십시오. 바닥의 타일부터 십자가를 두어 신성한 장로교회의 모습을 안내하고 있습니다. 그 위에 지어진 양쪽의 하늘로 솟은 탑과 함께 거대한 모습의 본당이 드러납니다.


안에 들어가도 되는지 허락을 받고 들어갔습니다. 방문객은 본당 내 줄이 쳐진 곳까지만 갈 수 있다고 하더군요. 본당에 처음 들어가면 거대한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 있습니다. 그 뒤로 거대한 문이 또 신자들을 맞이합니다. 열려 있는 오른쪽 문으로 들어갑니다.


입구로 들어가면 조금 낮은 천장이 이어지다가 위로 천장이 뻥 뚫리면서 엄청 넓고 긴 본당이 나타나는 구조입니다. 시각적으로 엄청 신성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사진으로 다 담을 수 없지만, 그 전체를 본 순간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대구 최초의 크리스트교의 역사를 지어낸 이 교회는 이렇게 대구의 중심의 청라언덕에서 그 하늘로의 영광을 드러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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