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기장 죽성리 황학대에서 읽는 <영계>, 간신을 풍자한 윤선도의 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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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기장 죽성리 황학대에서 읽는 <영계>, 간신을 풍자한 윤선도의 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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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기장군 기장읍 죽성리의죽성드림세트장에서 북쪽으로 조금 가다 보면 저 멀리두호 할매제당(죽성리 두호 골매기할매제당) 황학대 보입니다.

지도 출처 : 카카오맵

황학대(黃鶴臺, Hwanghakdae)로 걸어갑니다. '대'라는 이름 치고는 낮아보입니다.

황학대 입구에서 남쪽을 바라봤습니다. 저 멀리 죽성드림세트장도 보이네요.

황학대(黃鶴臺, Hwanghakdae)는 바다에서 보면 누런 학[黃鶴]이 날개를 펴고 있는 모습이며, 18세기 고지도와 <차성가(車城歌)>에 기록되어 있다. 또한 옛날 선비들이 이곳을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 우창구 사산(蛇山) 위에 양자강을 굽어보는 황학루(黃鶴樓)의 경치에 견주어 황학대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황학대로 올라가는 나무계단길로 올라가봅니다.

황학대 위에는 조그마한 쉼터와 함께 두 팔을 모은 고산 윤선도의 동상과 그가 쓴 <영계>라는 시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정철, 박인로와 함께 3대 가인으로 시조문학의 최고봉을 이룬 고산 윤선도(尹善道, 1587-1671)는 1616년, 광해군(1575-1641)에게 나랏일을 전횡하던 집권세력들의 잘못을 밝히는 병진소(丙辰疏)를 올린 것이 화가 되어 함경도 경원으로 유배되었다가 1617년 경상남도 기장으로 이배 되어 6년간 유배 생활을 했는데, 그동안 그는 이 황학대에 자주 올랐으며, 마을 뒤의 남산(봉대산)에 올라 약초를 캐어 병마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보살피곤 헀다고 합니다. 그래서 당시 이곳 사람들은 그를 서울에서 온 의원님이라고 불렀다고 전합니다.

윤선도가 귀양와서 지은 시들 중 하나인 <영계>라는 시비입니다. 닭의 울음소리를 맹상군 고사와 합쳐서 임금의 눈을 가리는 조선 간신들의 목소리를 풍자하고 있습니다.

詠鷄 [영계] 닭을 노래하다
物性雖偏塞 [물성수편새]
稟賦有明處 [품부유명처]
吾人固最靈 [오인고최령]
時夜誰及汝 [시야수급여]
氣至自咿喔 [기지자이악]
灰管應呂 [약회관응려]
鳴應扶桑鷄 [명응부상계]
實惟無稽語 [실유무계어]
矧肯聽人假 [신긍청인가]
雷同失常敍 [뢰동실상서]
乃知孟嘗客 [내지맹상객]
適與汝同擧 [적여여동거]
客能欺田文 [객능기전문]
非文欺秦去 [비문기진거]
물성이 치우치고 막혔다 하더라도
품부받은 것 중에 밝은 면도 있나니
우리 사람이 물론 가장 영명하다지만
시야야 어떻게 너에게 미치리오
새벽 기운이 이르면 절로 꼬끼오 울며
대롱 속의 재가 율려에 응하듯 하나니
부상의 닭에 호응하여 운다는 것도
실로 황당무계한 말이라 할 것인데
더구나 사람의 가짜 닭 소리를 듣고서
뇌동하여 상도를 잃을 리가 있겠는가
이에 알겠도다 맹상군(?~-279)의 식객이
때마침 너와 거조를 같이 헀음을
식객이 전문(맹상군)을 잘도 속인 것이요
전문이 진(秦, -900~-221)을 속이고 떠난 것이 아니로다

그 주변으로 작은 쉼터가 있고 멀리 바다와 일광읍 학리쪽이 보이네요.

이 넓은 기장 바다를 보면서 연산군을 잘못된 길로 이끌었던 간신들을 풍자하는 시를 지었던 고산 윤선도의 이야기를 잠시 들어볼 수 있는 중요한 기장 유적지인 황학대를 이렇게 둘러보고 내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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